부활절 달걀의 유래와 토끼 : 라이프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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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부활절에는 색칠한 달걀을 교환하거나 아이들에게 선물해 왔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첫째 이야기

그리스도의 고난을 추모하는 고난절 기간에는 금식이나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고난절이 끝나고 부활의 아침을 맞이할 때는 그동안 먹지 않던 고기나 달걀을 먹는다. 부활절 아침식사로 오랜만에 식탁에서 맞는 달걀은 얼마나 아름답고 맛있는 것인지!

둘째 이야기

죽음을 깨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위대함과 놀라움은 바로 굳은 달걀 껍데기를 깨치고 태어나는 병아리와 같다 해서 달걀을 선물한다.

셋째 이야기

옛날 한곳에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벽에, “하나님의 보호를 믿으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을 도와주시느니라”고 가훈을 써 붙이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때 마침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 남편은 저 멀고 먼 예루살렘에 전쟁을 하러 떠났는데, 몇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음씨 나쁜 사람들은 부인이 혼자 살고 있는 집을 빼앗았다. 마음씨 착한 부인은 싸우지 않고 남편이 돌아올 길목이라고 생각하는 곳으로 이사를 가, 거기서 방을 얻어 살았다. 그 부인의 이름은 ‘로잘린’이었다. 로잘린 부인은 날마다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어 꼬마 친구가 많았다.

부활절이 다가왔다. 아이들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생각하다가, 마침 이 동네는 닭이 없으므로 달걀을 무엇보다 좋아하리라 생각되었다. “여러분, 숲 속에 들어가 각자 새 집을 지어놓고 그 자리를 잘 봐두고 오세요.”

상냥한 로잘린이 어린이들에게 당부했다. 어린이들은 그의 말대로 새 집을 하나씩 만들어 놓았고, 로잘린은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그들에게 먹인 후 그들 몰래 색을 들인 아름다운 달걀을 숲에 있는 새 집에 하나씩 넣고 와서는 말했다. “자! 여러분, 이제는 동산에 가서 자기가 만든 새 집에서 무엇인가 찾아보세요.”

어린이들이 가보니 아름답게 색을 들인 달걀이 하나씩 있었다. 얼마나 기뻤을까! 그런데 그중 한 아이가 그것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다 지쳐 쓰러진 십자군 패잔병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아이는 그 병정이 불쌍해 “아저씨 이 달걀을 잡수세요.” 하고 주었다.

이 십자군 병정은 그 달걀을 받아보고 거기에 자기 집의 가훈인 “하나님의 보호를 믿으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일은 하는 사람을 도와주시느니라”는 글귀를 발견하고, 달걀의 출처를 물어 마침내 아내 로잘린을 찾아 행복하게 살게 됐다. 이후 계속 로잘린은 색달걀을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그 후 오늘까지 아름다운 풍습이 전해오고 있다.

부활절 계란 풍습

그렇다면, 부활절 계란을 주고받는 풍습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부활절 이전, 즉 이스터 축제일의 상징은 계란이 아니라 토끼였다. 이스터 여신의 상징이 토끼였기 때문이다. 이 부활절 토끼 풍습은 독일인들이 미국에 이민을 가면서 함께 들여갔다.

그러나 18세기 당시 미국 기독교는 청교도를 위시해서 엄격한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었기에, 부활절 토끼는 전혀 발붙일 수 없었다. 부활절 역시 미국에서 자리잡게 된 것은 남북전쟁 이후였다.

부활절을 축하하기 위해 계란을 사용하게 된 것은 “모든 생명은 알에서부터 나온다”는 로마의 속담은 차치하더라도, 어느 정도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까지 갈 때 잠시 십자가를 대신 메고 갔던 구레네 시몬의 직업이 계란장수였다고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뒤에 그가 집으로 돌아가 보니 암탉들이 낳은 계란이 모두 무지갯빛으로 변해 있었다. 이후 교회에서는 자연스럽게 계란을 부활의 상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김창환 위원장.

▲김창환 위원장.

김창환 목사
서울 강서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동성애·동성혼 반대 대책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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