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칼럼-크리스천 랩소디] 차안대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경기장을 찾거나 TV 중계로 즐기는 경마가 있다. 경주마들의 질주는 매우 역동적이어서 매력적이다. 다만 경마를 단지 도박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스럽기도 하다.


경마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말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경주마들은 눈 옆에 가리개를 한다. 바로 ‘차안대’(遮眼帶)라는 것으로 영어로는 ‘blinker’라고 한다. 컵 모양의 가죽 또는 고무 재질로 만든 이것은 경주마의 좌우 시야를 차단해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효과가 있다.


사람의 눈은 얼굴 전면에 앞을 향해 붙어있어서 시야가 많이 제한된다. 그러나 말의 눈은 얼굴의 양옆에 달려있어서 시야가 매우 넓다. 350도 정도를 본다고 하니 사람과는 큰 차이다. 그러나 그 넓은 시야로 인해 혼란스럽기도 한 모양이다. 말은 달리는 동안에도 앞이나 옆뿐 아니라, 뒤에서 접근하는 말까지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선이 흐트러져 앞으로 빠르게 달리는 데 장애가 된다. 말이란 동물은 체구에 비해 겁이 많아 주변 환경에 의해 흥분하거나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경주마에게는 차안대가 꼭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사용하면 말의 시야를 100도 정도로 제한해줘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다. 즉 목적지만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경기장의 모래가 튀어 시야를 가리는 것도 방지해주기도 한다.


바울 사도는 우리를 경기장에서 질주하는 선수에 비유했다. 그런 우리도 인생의 건강한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할 텐데, 여기저기 시선을 빼앗기면서 방해받는다. 내게도 차안대가 필요한 것 같다. 주님만 바라보고 달려야 할 내게 방해물을 제거해 주니 효과적일 것 같다.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잡다한 것들에 눈을 빼앗기고 그래서 마음마저 흔들리며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다. 그렇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내 눈을 어느 정도 가려야만 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온갖 어지러운 것들에 나의 눈을 뺏기곤 하니 가야 할 곳을 잃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차안대를 할 수 없는 내게, 성령께서 적절히 눈을 가려주시기를 기대한다. 앞을 바르게 보고, 방향이 흐트러지지 않아서, 봐야 할 것에만 집중한다면 난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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