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an Perdana/ Unsplash
|
미국의 기독교 변증가 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박사가 쓴 ‘하나님에 관해 가장 많이 검색되는 7가지 질문’이 최근 크리스천포스트(CP)에 소개됐다. 다음은 해당 칼럼의 요약.
#1 –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당신과 내가 여기 있는 이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2. 아무것도 아니면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다. 3. 따라서 필요하고 영원한 것이 존재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해 더 나은 설명을 할 수 없는 한, 그 “필요하고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이 뒤따른다.
역사를 통틀어 사상가들은 네 가지 기본 가능성을 생각해 냈다. 첫째, 현실은 단지 환상일 뿐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일종의 매트릭스(Matrix)와 같다. 문제는 그 환상 뒤에는 반드시 현실과 구체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므로 이 명제는 제외된다.
두 번째는 현실은 스스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이 제안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그 자체보다 선행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이론은 분석적으로 거짓이다.
그럼 영원한 우주나 영원한 창조주가 남게 된다. 그리고 과학의 모든 단서는 우주에 시작이 있고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리키기 때문에, 영원한 창조주가 존재한다는 합리적인 입장만이 남는다.
#2 – 하나님은 왜 고통과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많은 회의론자들은 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려고 한다. 그러나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말했듯이 그것은 결함이 있는 생각이다. “나에게 있어 악의 문제는 실제로 문제가 되지 않는데, 그저 ‘악한 신이 있다’고 말하면 더 작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악은 하나님을 취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왜 그것을 허락하시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성경은 선하신 하나님과 악이 둘 다 실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예수님도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고 인정하셨다. 그분은 아셔야 한다. 그분은 그의 삶에서 많은 것을 경험했고, 이는 궁극적으로 그분을 역사상 최악의 형태의 죽음으로 이끌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왜 십자가를 허락하셨는지에 대한 답을 얻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때로는 우리가 겪는 고통을 이해하는 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며, 그 중 일부는 영원히 답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3 – 성경은 믿을 만한가?
믿을 만한 것이 역사적으로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라면, 성경이 바로 그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많은 책들이 쓰였다. 많은 회의론자들이 이를 맹렬히 비난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올바르게 관찰했듯이 성경은 모든 망치를 닳게 만드는 모루(anvil, 금속을 두들겨 단조할 때 밑에 받치는 기구)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을 만한”(reliable)이라는 용어를 “의존할 수 있는”(dependable)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질문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과 우리의 구원에 관해 알아야 할 것을 성경에 의존할 수 있는가? 성경은 요한의 질문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4 – 예수님은 하나님인가?
말 그대로, 예수님은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 이렇게 말씀함으로써 그분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여(출 3:14) 그분의 신성함을 분명하고 명백하게 주장하셨다(출 3:14).
하지만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일부 회의론자들은 요한복음만이 예수를 하나님으로 선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공관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언급하는 내용이 많이 있다.
그럼 바울은 어떨까? 바울은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빌 2:6)라고,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골 1:15)이라고 말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히 1:8)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맞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을 가장 잘 기록한 책에 따르면 하나님이시다.
#5 –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 수 있을까?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 14).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직접 찾아오셔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다른 종교의 신들과는 달리, 유일하신 참 하나님은 인격적이시며, 예배와 기도를 통해 그분께 손을 내밀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6 – 기독교는 너무 편협한가?
이 질문이 기독교가 교회를 단단히 통제된 컨트리클럽 형태의 시설로, 사람들을 배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 대답은 ‘아니요’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그러나 이 질문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의 교리가 성경이 선포하는 것과 모순될 때 그것을 잘못된 것으로 가르친다는 데 대한 불평이라면 그 말은 타당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2+2에 대한 답이 매우 한정적인 것처럼, 삶과 구원의 큰 질문에 대한 답도 궁극적으로 단일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4)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7 – 인생에는 목적이 있는가?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없다.
그 이유는 무언가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시간 + 물질 + 우연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비인격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무의미하고, 목적이 없는 우주가 의미나 목적이 없는, 비인격적이고 비도덕적인 존재만을 만들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대신에, 우리는 의미와 목적에 집착하는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존재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고 말씀하셨다면, 그분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심을 믿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