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과 지성을 갖춘 이종찬 목사(권선제일교회)가 4월 20일 원로목사로 추대받고 은퇴한다. 이 목사는 ‘성경 3000구절을 암송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말씀으로 집회를 인도하는 부흥사로 유명하다. 시인이자 수필가로 시집을 비롯해 13권의 저작을 출판했고, 기독신문사 주필로 사역했다. 무엇보다 수많은 청빙요청에도 27살에 개척한 권선제일교회와 성도들을 40년 동안 지킨 목회자다.
40년 목회도 드문 데 이종찬 목사는 아직 정년이 남았다. 청년기에 첫돌을 지난 아들을 안고 12㎡(3.5평) 예배당에서 교회를 개척한 덕분이다. 성도들에게 조기은퇴를 알리고 청빙위원회를 통해 신실한 후임 목사도 청빙했다. 방복음 목사가 부임한 후, 작년 1월부터 목회이양을 했다. 방 목사에게 당회와 협력해 주보부터 예배당까지 모든 것을 바꾸라고 했다. 그리고 매월 한 번만 교회를 찾았다. 이 목사는 자신의 흔적과 존재감까지 지워지길 원했다.
“개혁주의 신학은 개혁교회에게 끊임없이 개혁하라고 한다. 나는 총신신대원 77회다. 옛날 사람이다. 지금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교회를 이끌기에, 성도들을 인도하기에 한계가 있다. 새로운 목회자가 새로운 시대와 사회 속에서 지역과 열방 복음화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종찬 목사는 스스로 기꺼이 사라져야 할 이유가 분명했다. 자신과 성도들이 사재를 털고 피땀으로 세운 권선제일교회가 계속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길은 ‘끊임없이 교회를 개혁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그것이 “교회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개혁교회의 본질”이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방복음 목사는 “목사님과 당회 장로님들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거침없이 담대하게 교회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방 목사는 “시대가 변해도 ‘말씀이 중심이 되는 교회’는 변하지 않는다. 목사님께서 지난 40년 동안 교회를 말씀 중심으로 든든히 세워 오셨다. 그 바탕 위에서 양육과 제자훈련, 큐티학교와 가정을 살리는 사역을 펼치고 있다. 목사님의 목양 원칙과 철학은 본질이기에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평생을 함께 한 교회와 성도를 끊어낸다는 것, 말 그대로 결단이다. 목회이양 이후 어려움에 빠지는 많은 교회들을 보면 그 결단이 얼마나 어려운 지 짐작할 수 있다. 이종찬 목사는 교회의 본질에 대한 확고한 원칙, 그리고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되돌아보면 감사한 것뿐이다. 교회를 개척한 후 목회자가 큰 시각을 가져야 한다며 최규만 장로님과 성도들이 성지순례를 한 달 동안 보내주셨다. 성지순례를 통해 넓은 세계관과 역사관을 갖게 됐다. 이 경험으로 목회를 하면서 계속 공부할 수 있었고 기독신문 주필과 총회100년사 집필위원까지 할 수 있었다.”
이 목사는 최규만 송욱 임형배 장로와 성도들의 이름을 부르며 고마워했다. 성도들과 함께 행복한 교회로 세워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상식이 통하는 교회, 말씀으로 부흥하는 교회가 되도록 힘썼다고 했다.
그 진심을 아는 성도들의 지원 속에 이 목사는 한국교회를 넘어 미국 한인교회와 해외 선교지에서 수없이 집회를 인도할 수 있었다. 호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까지 공부하도록 격려해줘서 칼빈대 한국성서대 호서대 등에서 강의할 수 있었다. 기독신문사를 비롯해 총회에서 사역할 수 있었다.
조기 은퇴했지만 계획은 없다. 지난 40년처럼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으로 믿고 있다. 소망은 그동안 받은 사랑을 갚으며 사는 것이다. 은퇴한 후에도 이 목사는 교회들과 기도원과 연구소에서 요청하는 집회와 강의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이미 이 목사는 소망을 이뤄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회상(回想)
은파(恩波) 이종찬
지난 일을 돌이켜 보며 반추한다는 회상
회상 하니 어느 투자자의 회상이라는 제시 리버모어의 글이 생각난다
84년 3월 5일은
봄이 시작 되면서 권선제일이 시작되던 날
84년 3월 5일은
복음의 꽃을 피우기 원하시는 지존자의 소명으로 시작된 권선제일의 창립서정이구나
배 아파 낳아 배냇저고리를 입혀 은총의 포대기에 싸안은 권선제일을 등에 업고
앓을 싸 그릇될사 어미의 심정으로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애지중지 하며 걸어온 길
애비의 심정으로 돌보며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걸어온 길이
이제 오늘 은퇴(隱退) 라는 종점에서 그침의 자리에 서게 되었구나
지나온 담임목회 14645일은
전능자의 은택을 사모하며 성장판을 만들려고 몸부림치며 달려온 세월
소망의 빛을 찿아 성부께서 베푸시는 은택을 성령의 능력으로 연주하며 가던
때때로 불협화음 이라는 폭풍우가 몰아치던 교회의 언덕에서 고뇌의 길을 걸어야 했던
남루(襤樓)를 걸친 채 속앓이를 하며 길이 보이지 않아 숨죽이고 홀로 잠 못 이루는 밤
이제 45년 목양길을 원로추대로 정리하며
회로애락으로 가득했던 시절 톱밥난로의 온기가
추억의 편린(片鱗) 조각의 비늘이 되어 다가서는 2024년 4월20일 오늘
트레스를 얹어지은 단층 예배당에 앉아
믹스커피 한잔을 마시며 서러움을 달래던 목회일우의 회상이
이젠 역사가 되어 유허(遺墟) 옛 성터가 되는
추억의 방으로 발길을 옮기는 신망애(信望愛)의 날 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