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기후 온난화로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와 북극의 만년빙하가 급속히 녹아내린다. 그 연장선상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해 1800만명이 사망했다.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터에서는 매일 같이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6·25전쟁의 전야와 유사하다고 진단한다. 지난달 푸틴의 방북과 북러 간 조약체결은 한반도의 불안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이 민감한 시기에 방북한 배경은 무엇이었는가? 우군이 필요했다. 미국이 608억달러 예산과 러시아 해외 동결 자산 수익금을 지원함으로써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임박한 상황이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에 러시아산 농축우라늄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고 러시아는 대체 시장을 찾아야 했다. 북한 김정은 총비서도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폐쇄와 서방 제재의 고통에서 벗어나 안보와 경제를 모두 살려야 하는 절박한 입장이다. 무엇보다도 핵미사일 개발의 완성을 위해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러시아는 대북 핵 개발 지원국으로서, 핵비확산체제(NPT) 관리국으로서 그리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쉽게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양국 정상은 공식 회담을 통해 애매모호한 수식어로 포장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했다. 2000년 2월 서명한 ‘친선, 선린 및 협조 조약’(2조)의 위기 시 ‘즉각 접촉’을 ‘군사 접촉’(4조)으로 구체화했다. 서방에서는 4조에 대한 해석을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옛 소련 동맹조약의 ‘자동 군사개입’을 의미하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하다. 바로 이것이 주변국을 긴장시키는 ‘전략적 모호성’이다.
중요한 합의는 당연히 비공식 회담을 통해 조율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노동력 송출과 러시아의 농축우라늄 수출이 대표적이다. 두 나라는 서방의 제재로부터 벗어나야 할 동병상련의 운명공동체다. 전쟁 중인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를 극복하지 못하면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서는 패한다’라는 위기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이번 평양 정상회담은 바로 대북 제재, 그 다음으로 대러 제재를 단계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액션플랜의 시작이다.
북한은 12만명의 노동력 송출을 강력히 희망해왔다. 1인당 연간 3만달러로 잡아도 36억달러의 외화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다. 게다가 무기공장이나 전선에 투입될 경우에는 첨단군사기술과 실전경험까지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한국의 월남전 파병과 동일하다. 러시아로서도 2차 동원령 없이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선택이다. 북한 청년들만큼 양질의 노동력도 없다. 특히 보위부의 자체 감시 체제로 통제가 용이하다.
비공식 회담에서 두 번째로 합의했을 경제 현안은 농축우라늄 수출이다. 미국은 1993년부터 93개 상업용 원자로에서 사용하는 러시아산 농축우라늄을 수입(연간 10억달러, 20%)해 왔다. 러시아는 미국의 수입 중단에 따른 대체 시장을 서둘러 찾아야 했다. 매년 전력난에 허덕이는 북한으로서는 우라늄광 개발보다는 러시아산을 싸게 수입하고 그 대신 실탄이나 미사일·드론으로 상계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압박 수단도 될 수 있다.
푸틴의 방북은 한국에게 적지 않은 외교·안보적 부담을 안겨줬다. 24년 전에는 러시아의 대북 관계 개선을 오히려 환영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다. 러시아는 불과 2년 전까지 남북한 등거리 입장을 취했다. 북러 간 밀착은 전적으로 한러 간 적대관계의 반작용이다. 현대자동차는 15만원에 공장을 매각한 후 철수했다. 안타깝게도 한미동맹을 외칠수록 북러 관계는 견고해지는 제로섬적 대결 구도가 됐다. 더 나아가 북한은 한러 관계 복원을 결사반대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 정세는 예측불가능한 시계제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은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선진국으로 공식 등극했다.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한 나라다. 그럼에도 한국은 해륙국·통상국·분단국이라는 지정학적·지경학적·지전략적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글로벌 중추국으로서 우선 과제는 주변국 간 갈등을 화해로 반전시키는 것이다. 내년 광복 80주년에는 한반도를 평화로 가득 채우는 하나님의 뜻이 임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