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재 콘텐츠 잇따라 제작돼
2000년대 일본과 비슷한 분위기
사회구조와 개인 양자 모두 문제
강력한 단죄만이 정의구현 가능?
성경, 공의 위해 사형 찬성하지만
사적 제재는 공의 범주 안 들어가
▲사법 불신과 사적 제재, 국민투표라는 소재를 엮어 흉악 강력범죄에 대한 정의구현의 의미를 묻는 드라마 <국민사형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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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죄와 복수: 사적 제재 줄거리가 인기를 얻는 시대적 정황
SBS 목요드라마 <국민사형투표>는 사법 불신과 사적 제재에 관한 드라마로, 2015-2016년 다음에서 연재된 동명의 웹툰을 드라마로 옮긴 작품이다. 이와 유사한 소재와 설정을 가진 작품으로는 웹툰 <비질란테>(2018-2021 연재)가 존재한다.
드라마 <국민사형투표> 시청률은 현재 4%대로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작품의 화제성에 주목한다. <국민사형투표>는 묻지 마 살인을 비롯한 각종 강력 흉악범죄가 빈발하고 있는 현 대한민국 상황에 시의적절하게 들어맞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의 엄정한 처벌을 간교하게 피한 흉악범죄자들에 대한 조직적 사적 제재라는 소재는 사실 일본과 미국에서 먼저 미디어 콘텐츠로 적용됐다. 이미 2000년대에 일본의 <원한해결 사무소>, <데스노트>, 그리고 미국의 <덱스터>가 각각의 방식으로 악질적 범죄자들에 대한 사적 복수와 단죄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미국은 치안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고 총기 소지도 자유화돼 있어 상대적으로 흉악범죄 발생률이 높은 국가군에 속한다. 게다가 피해자 유족 측에서도 어렵지 않게 총기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가해자에 대한 복수도 쉽게 가능하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피해자 가족이 가해자를 찾아내 살해하는 복수극이 종종 발생한다.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자경단, 민병대 전통이 있었다.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범죄자나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에게 적절한 형벌을 가하지 않는 경우, 마을 주민들이 직접 처단에 나서는 일이 잦았다. 이런 전통은 미국 남부에서 흑인들에 대한 린치 살해의 명분으로 자주 악용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미국도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치안 및 사법 체계가 확고하게 정립돼 있어 사적 제재를 엄금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내에서는 복수를 위한 사적 단죄의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사적 제재와 관련된 미국의 이런 정서는 미국 미디어 업계에서 자주 소재로 활용됐다. 대표적으로 <배트맨> 시리즈의 브루스 웨인, <왓치맨> 시리즈의 로어셰크 등이 사적 제재를 어느 정도 용인하는 미국의 전통 정서를 대변하는 캐릭터라 볼 수 있다.
▲사적 제재에 대한 미국 사회의 정서를 대변하는 캐릭터, 로어셰크와 배트맨. ⓒscreenrant.com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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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미국과 달리 일본은 공권력이 대단히 강력하고 치안 수준 역시 높은 국가로 분류된다. 총기 소지가 금지돼 있고 공권력을 거스르는 사회적 일탈 행위를 크게 터부시하는 풍조가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연달아 터지는 흉악·강력범죄와 반사회적 범죄로 홍역을 앓은 바 있다.
1990년 헤이세이 버블 붕괴를 시작으로 일본의 전체 사회구조 및 가치관이 급변했고, 이 시기 청소년 및 청년층을 중심으로 일본 사회를 뒤흔드는 흉악범죄가 연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의 범죄율은 취업 빙하기 막바지였던 2003년경 절정에 달했고, 이후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본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경제성장과 풍요를 누릴 수 없게 되자, 호시절에 교육을 받고 성장한 당시 젊은 세대는 혼란과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이 시기 일본의 히키코모리 수는 최고점을 찍었고, 과거 볼 수 없었던 무차별 살상 범죄가 당시 청년층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일본 미디어 업계에서 사법 불신, 사적 제재, 촉법소년이라는 소재가 크게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시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원한해결사무소>(2000-2007년 연재), <데스노트>(2004-2006년 연재)가 대표적이고, 버블 붕괴 시기 촉법소년의 존속살해와 청년들의 범죄행각을 그려낸 드라마 <백야행>(2006년 방영) 역시 비슷한 류의 작품으로 지목할 수 있다.
◈흉악범죄와 정의: 흉악 강력범죄의 원인과 처벌을 둘러싼 고민
최근 한국에서도 일본의 2000년대 초반과 비슷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국가의 경제성장 전망은 비관적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고령화를 겪고 있으며, 생산가능 인구와 전체 인구 수 모두 감소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일본보다 훨씬 더 심한 남유럽 식의 장기 디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현재,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얻기 어려운 현실에 좌절하는 청년 세대 중 일부가 전에 거의 볼 수 없었던 무차별 살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그 외에도 인구 수 대비 강력·흉악범죄 비율 역시 전 세대에 걸쳐 증가 중이다.
가장 확연한 증가 추세에 있는 범죄 유형은 흉악범죄에 들어가지 않는 사기죄이지만, 일정 수준의 발생 건수를 유지하고 있는 살인이나 급증하고 있는 성폭력(강간) 같은 범죄가 더 잔혹하고 비열한 양상으로 극단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법계도 이러한 추세에 맞춰 이전보다 양형 수준을 높여가고 있지만, 아직 국민들의 기대치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사형제의 실질적 폐지는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경찰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은 증대되고, 사형제 부활을 외치는 목소리 또한 그에 비례해서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국민감정에 편승한 범죄, 사법 관련 소재의 작품들이 미디어 업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제대로 된 법의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풍자하며 픽션의 세계 안에서나마 흉악 강력범죄자를 단호하게 처벌하는 대리만족형 작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소년심판>(2022), <어게인 마이 라이프>(2022), <더 글로리>(2022-2023), <국민사형투표>(2023) 모두 이러한 사회적 정황과 미디어 업계의 조류를 타고 방영된 작품들이다.
▲악질적 범죄자들에 대한 강력한 심판과 형벌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드라마 <소년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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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죄와 그에 대한 법의 심판에 관하여 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물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첫째로 점차 빈발하는 지독하고 악질적인 양상의 범죄들이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가, 아니면 개인의 타락에 의한 문제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둘째로는 온전한 정의구현을 위해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형벌을 가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첫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지 않다. 2000년대 일본 사회, 그리고 2020년대 한국 사회가 맞이한 흉악·강력범죄 증가 사태는 사회 구조와 개인 양측 모두의 문제가 얽혀들어 초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가 과거 세대의 패러다임을 머릿속에 주입당한 채 이전보다 급격하게 악화된 삶의 정황을 맞이해야 하는 현실은 사회구조의 문제이고, 이 문제적 정황 속에서 도덕성을 지키려는 의지를 함부로 놓아버리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다. 이 두 요인이 맞물려 범죄 양태가 점점 더 악질적으로 변해가는 현재의 당혹스러운 상황이 도래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훨씬 대답하기 어렵다. 과연 어느 정도의 형량을 부여해야 정의구현이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특히 사형 집행은 꼭 필요한 것인가? 드라마 <국민사형투표>는 이 질문에 대해 아주 명쾌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사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물론 현재는 초반 줄거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더 그런 면이 없지 않다. 만일 드라마 줄거리가 웹툰과 유사하게 흘러간다면, 작중 사형투표의 본의는 변질될 것이고 그에 따라 드라마의 메시지는 사적 제재로 행해지는 살인 그 자체도 흉악·강력범죄의 하나라는 식으로 변경될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이들의 뇌리에 더 강하게 남는 메시지는 전자의 메시지이다. 사적 제재가 법질서를 위협하고 사회에 혼란을 조장하며 결국에는 피해자를 양산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보다, 사적으로 범죄자들을 단죄해서라도 선량한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자는 메시지, 즉 강력한 단죄만이 유일한 정의구현의 길이라는 메시지가 훨씬 더 강렬한 기억을 남긴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는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성경은 과연 이 사안에 대해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가?
기독교계 내부에서는 죄악에 대한 강력한 단죄, 특히 사형의 필요성이라는 논제를 두고 오랫동안 여러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언쟁을 벌였다. 하지만 성경의 단순하고 명료한 가르침과 사려 깊은 신학자들의 의견 전반은 대체적으로 다음의 견해로 수렴된다.
사형은 흉악 강력범죄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을 위해 반드시 시행돼야 하지만, 사적 제재를 통한 살인은 적법하고 공의로운 사형의 범주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속>
▲<국민사형투표>에 등장하는 사적 제재에 의한 살인은 기독교적 관점으로는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살인 시행의 필요성에 대해 성경은 명료하게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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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