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료 원료인 암모니아를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수송관 일부가 최근 파괴됐습니다. 카호우카 댐 붕괴로 광범위한 농경지가 침수된 데 이어 이같은 일이 벌어지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곡물·비료 수출 차질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7일 러시아 서부 톨리야티에서 우크라이나 흑해 연안으로 연결되는 암모니아 수송관 중 일부를 우크라이나 공작원들이 폭파시켰다고 발표했습니다.
국방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 5일 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주의 마시우티우카 지역에서 수송관이 파괴됐다”고 설명하면서 “우크라이나 파괴·정찰 집단의 소행”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수송관은 세계 최대 암모니아 수송 설비입니다.
■ 우크라이나 “러시아 공습 때문”
우크라이나 측에서도 수송관 파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저지른 일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올레흐 시네후보우 하르키우 주지사는 7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수송관이 파괴된 것은 러시아의 공습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수송관이 파괴된 하르키우 지역은 우크라이나를 돕는 러시아인 무장조직들이 러시아군을 상대로 교전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 본토 벨고로드 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이 일대에서는 야포와 무인항공기(드론) 등을 동원한 공격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해당 수송관은 러시아 톨리야티에서 우크라이나의 흑해 연안 항구 도시 오데사 지역의 유즈네까지 이어지는 2천470km 길이 시설입니다.
러시아는 이 수송관을 통해 암모니아를 유즈네의 피우데니 항구까지 보낸 뒤 배로 전세계에 수출해왔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수송관 가동을 중단시켰고, 이 때문에 러시아의 비료 원료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세계 1위 질소 비료 수출국입니다.
■ 흑해 곡물 협정 위기
수송관 파괴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맺은 흑해 곡물 협정을 연장·확대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러시아는 수송관 재가동을 요구하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지난달에 2개월 연장한 흑해 곡물 협정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자, 유엔은 지난달 말 러시아산 암모니아 수출 허용과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합의안을 두 나라에 제안했습니다.
■ 9일 협상 예정
러시아와 유엔은 오는 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흑해 곡물협정 연장 협상을 벌일 예정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 이후 흑해 봉쇄로 세계 식량난 위기가 고조되자, 지난해 7월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흑해에서 곡물 수출선의 안전을 보장하는 협정을 맺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밀과 옥수수의 주요 수출국입니다.
협정은 지난달까지 세 차례 연장됐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협정의 일부인 러시아산 곡물과 비료 수출 허용 등에 대한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탈퇴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산 암모니아 수송관 가동을 재개해 비료 수출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게 러시아 측의 주요 요구사항입니다.
9일 협상장에서는 수송관 파괴 사건이 주요 현안이 될 전망입니다.
새 합의안 논의를 앞두고 새로운 변수가 떠오른 것입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7일 브리핑에서 “우리는 (수송관 폭파의)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수송관을 재가동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던 유일한 나라가 우크라이나라는 점은 말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이 수송관은 흑해 곡물 협정 이행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하면서, 수송관을 수리하는 데 적어도 1~3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해당 수송관이 그동안 비료 생산에 필요한 원료를 매년 200만t씩 운송해왔다고 밝히고 “전세계 식량 안보에 결정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WFP, 식량 위기 경고
수송관 파괴 논란으로 흑해 곡물 협정 연장이 어려워질 경우, 우크라이나 헤르손주의 카호우카댐 파괴에 따른 곡물 생산 차질과 맞물리면서 전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다시 고조될 전망입니다.
지난 6일 새벽,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노바 카호우카 시에 있는 카호우카 댐 주요 구간이 원인을 알수 없는 폭발로 붕괴된 데 따른 것입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7일 성명을 통해 “수천 hr(헥타르)의 농경지가 침수돼 최근에 심은 농작물이 파괴됐기 때문에 댐 파괴가 식량 안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카호우카댐 붕괴에 따른 홍수가 전세계 식량 공급을 위협할 것이라고 7일 경고했습니다.
마르틴 프리크 WFP 독일 베를린 사무소장은 “댐 붕괴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새로 심은 곡물들이 훼손됐다”고 dpa통신에 밝히고 “우크라이나 곡물에 의존하는 세계 3억4천500만명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국제 곡물 가격도 급등하기 시작했습니다.
댐 붕괴 사실이 처음 알려진 6일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CME)에서 개장 초기 밀 가격은 부셸(27.2kg) 당 6.39달러로 2.4% 오른 값에 거래됐습니다.
옥수수 가격은 1% 이상 오른 6달러에 거래됐습니다. 귀리 가격 또한 부셸당 3.46달러 상승했습니다.
■ 젤렌스키, 댐 파괴 수몰지 방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8일, 카호우카 댐 파괴로 물에 잠긴 헤르손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현지 당국자들을 만나 브리핑을 받고 의료시설을 찾아 침수로 인한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위로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헤르손 현지에서 “많은 중요한 문제를 논의했다”고 텔레그램에 적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재난으로 인한 지역의 운영 상황, 잠재적인 홍수 지역에서 주민 대피, 댐 폭발로 인한 비상사태 해제, 침수 지역에 대한 생활 지원 조직화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한 이 지역 생태계 복원과 인공 재해 지역의 군사 작전 상황에 대한 전망도 논의된 이슈였다”고 덧붙였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7일) 영상 연설에서 침수 피해 지역 구조 활동과 주민 지원을 위한 국제사회의 신속한 대응을 호소했습니다.
“헤르손 일대가 구조 없이, 마실 물 없이, 음식 없이, 의료 보호 없이 죽을 수 있다”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강조했습니다.
■ 침수 지역 피해 확대
카호우카 댐 붕괴 이후 주변 지역 피해는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남부 핵심 수원인 드니프로강 인근의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 농경지에 물을 대는 관개 시스템이 파괴된 것이 사태를 악화하는 중입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7일 성명을 통해 “수천 hr(헥타르)의 농경지가 침수돼 최근에 심은 농작물이 파괴됐기 때문에 댐 파괴가 식량 안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농림부는 드니프로강 인근의 자국 통제 지역에서만 농경지 약 1만 hr가 침수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계은행은 댐 파괴의 피해 규모를 신속히 평가해 우크라이나 정부를 지원할 것이라고 이날 밝혔습니다.
같은 날(7일) 우크라이나 주재 유엔 산하 관계 기구 대표들은 피해 규모를 평가하고 인도주의적 대응을 조율하기 위해 헤르손에 모였습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등 5개 기구 대표와 몇몇 비정부기구 대표들이 현지에서 평가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 “수백만 명 식수 영향”
수십만 명이 카호우카 저수 시설에 식수를 의존하고 있었는데 댐 붕괴로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는 것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아울러, 물고기 집단 폐사뿐만 아니라 화학 물질과 병원균이 침수 지역 식수에 유입 돼 식중독 확산이 우려된다고 우크라이나 보건부는 7일 밝혔습니다.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재난 규모를 볼 때 다가오는 여름철부터 수백만명에 대한 식수와 농업용수 공급에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이날(7일) 평가했습니다.
침수지역 일대 수만 명이 거주지를 잃고 피란한 가운데, 고립된 사람들이 구조대를 기다리는 모습이 현지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현지 매체들은 침수 지역에서 최소 3명이 사망했다고 전했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