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전술 핵무기를 벨라루스 영토에 배치하는 합의문에 양국 국방장관이 25일 서명했습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빅토르 크레닌 벨라루스 국방장관은 이날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회담을 통해 벨라루스에 러시아 핵무기를 보관하는 절차를 확정한 뒤 관련 합의문에 서명해 교환했습니다.
쇼이구 장관은 이번 합의가 “기존의 모든 국제법적 의무를 준수한다”며 핵확산을 금지한 국제적 약속에 어긋나는 바가 전혀 없다고 말했습니다.
주요 핵탄두와 운반 시설을 벨라루스에 두지만, 통제권은 러시아가 유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쇼이구 장관은 그러면서 “서방이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상대로 ‘선포되지 않은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양국 국방장관 회담은 옛소련권 국가들의 군사∙안보 협력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국방장관회의 현장에서 별도로 진행됐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전날(24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포럼에서 회동했습니다.
■ 러시아 핵무기, 나토 경계 ‘코앞’으로
이번 합의문 서명에 따라, 러시아의 핵무기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부 최전방 경계 가까이로 이동하게 됩니다.
벨라루스는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전술핵을 국외에 배치하는 것은 약 30년 만입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은 최근 서방의 지원으로 우크라이나군 조종사들의 F-16 전투기 조종 훈련이 시작되는데 반발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핵 종말’이라고 불리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미국과 유럽연합(EU), 나토 동맹을 향해 경고했습니다.
■ 푸틴 결정 이행
이번 합의문 서명은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할 것이라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개월여 전 발표한 내용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지난 3월 푸틴 대통령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오랫동안 전술 핵무기 배치를 러시아에 요청해왔다”며 “핵비확산 약속을 어기지 않으면서 (전술핵 배치를) 진행하기로 벨라루스와 합의했다”고 국영 ‘로씨야 24’ 방송에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같은 합의는 미국의 행위를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은 수십 년간 전술 핵무기를 동맹국에 둬왔다”면서 “미국과 똑같이 하기로 (벨라루스와 합의)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또한, 핵무기 운반체계인 이스칸데르 미사일 여러 발을 이미 벨라루스에 배치했으며 항공기 10대를 개조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오는 7월 1일까지 벨라루스 요지에 전술 핵무기 저장고를 완공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관련 훈련까지 마쳐
벨라루스에 배치될 전술 핵무기는 도시와 일정 지역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전략 핵무기와는 다릅니다.
전투 지역 등 제한된 영역에 쓰는 저위력 핵무기에 해당하는데, 전쟁 전체의 방향을 바꿀만한 능력은 충분합니다.
아울러 전술핵의 배치 지점이 움직이는 것 만으로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에 경고 메시지로 무게가 큽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전술 핵무기를 이동 배치하는 계획에 따라, 벨라루스 공군 조종사들이 관련 훈련을 마쳤다고 지난달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당시 러시아 국방부는 핵무기 장착과 운반, 투하 등에 관한 전과정을 벨라루스 조종사들이 숙지했다고 밝히고, 모든 과정이 러시아에서 진행됐다고 설명했습니다.
25일 양국 국방장관의 합의문 서명 직후, 벨라루스인들은 “우리도 이제 핵강대국이 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소셜미디어에 잇따라 올리고 있습니다.
■ 회수했던 핵 재배치
벨라루스 측은 자국 영토에 러시아 핵무기를 유치하는 것이 미국과 서방의 위협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벨라루스 외무부는 지난 3월 성명을 통해,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미국과 나토의 공격적인 행동 때문에 러시아 전술 핵무기를 영토에 수용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옛 소련 시절 벨라루스에는 핵탄두가 탑재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배치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립 이후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를 통해 주권과 영토 보전을 약속받고 핵무기를 포기했습니다.
러시아는 1996년까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 옛 소련 3개국에 배치됐던 핵무기를 철수한 뒤 자국 영토에만 핵무기를 두고 있습니다.
이제 벨라루스에 다시 러시아의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입니다.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당국자들은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와 나토 등을 상대로 꾸준히 핵 사용을 위협해왔습니다.
■ 벨라루스, 러시아군 활동 공간 제공
러시아의 전술핵을 유치하는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 북부에 접한 나라입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동맹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는 1990년대 말부터 연합국가(Union State) 개념을 추구하며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벨라루스는 러시아군에 기지를 제공하고 우크라이나 북부 진입 경로를 열어줌으로써,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이후 벨라루스군의 참전설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벨라루스는 또한 나토 동부 최전방 국가들인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과도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해당 국가들은 러시아 전술핵이 벨라루스로 진출하면 직접 위협을 받게 됩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