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일한다고 자녀들 돌보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다 키워 주셨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목회자 자녀들 중 신앙을 잃어버린 분들이 많아요.” 목사의 아들로 자라 목회자의 길을 걸어온 나는 목회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수시로 이런 말을 한다.
과연 신앙적으로, 가정적으로 어려워진 자들을 향해 개인의 책임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교회는 마땅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기관은 가정과 교회다. 창조 기사에서 가장 집중하는 부분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어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다. 엄밀히 말해 하나님은 교회보다 가정을 먼저 세우셨다. 성경은 교회와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 ‘가정’을 원형으로 제시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들이라 부르셨고(출 4:22, 호 11:1) 하나님의 참 아들이신 예수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마 5:45, 6:9, 막 14:36, 롬 8:15, 갈 4:6) 또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결혼 관계로 비유하시며 우리를 주님의 신부로 묘사하셨고(호 2:19~20, 막 2:19~20) 신자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영적간음이라고 하셨다. 부부관계를 말씀하실 때에도 남편은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해 목숨을 내어놓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고, 아내는 교회가 예수님을 사랑해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처럼 남편을 주님 사랑하듯 사랑하라고 하셨다.(엡 5:22~23)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은 포도주가 떨어져 망가져 가던 혼인 잔치를 회복시킨 것이었다.(요 2:1~11) 사역에 집중하던 중 가족들이 찾아왔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누가 내 가족이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가족이다’(마 12:46~50)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직전, 예수님은 제자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다”라고 하시며 모친 마리아를 부탁하셨다.(요 19:27) 혈통을 넘어선 새로운 가족관계를 설정하신 것이다. 그리고 종말에 우리가 참여하게 될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어린양의 혼인 잔치’라고 하셨다.(계 19:9) 이렇듯 인류의 역사는 결혼으로 시작해 결혼 잔치로 끝이 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해 가정을 희생시켜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성경을 오해한 것이다. 교회가 부흥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성도의 가정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진정한 부흥이라 할 수 없다. 교회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가정을 세워야 한다. 가정의 달에만이 아니라 평소 모든 교회 사역에, 특히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 속에 가정을 귀히 여기는 마음과 내용이 담겨있어야 한다. 부부가 함께 예배하고 섬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데 방해되는 요소들을 과감히 제거하고, 가정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교회는 부흥하는데 우리 가정은 힘들다’고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는 가정의 부흥과 함께 부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와 교회 직분자가 이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또 한 가지 오해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은 교회 주일학교가 맡는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생각은 부모가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약화시켰다. 교회는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을 돕는 기관도, 신앙교육을 책임지는 기관도 아니다. 교회는 부모가 직접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신 6:6~7)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얀 바터링크 등 신칼빈주의자라 할 수 있는 화란 개혁신학자들이 했던 기독교학교 운동의 역사를 평가한 자료에 의하면 ‘교회는 지원하는 역할을 했고, 부모들이 주체적 역할을 했다’고 기술한다. 교회가 각성해야 할 일이 있다면, 부모가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감당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교회의 사명 선언은 가정의 사명 선언과 같아야 한다. 교회도, 가정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현장, 주님의 제자로 양육되는 훈련장, 복음을 증거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가정을 세우는 교회, 교회를 이루는 가정을 이루어 가는 것이 이 시대 교회 지도자들의 소명이 되어 다음세대를 바르게 세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