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증(비자)을 허위로 발급받아 입국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란 국적 난민에게 형을 면제해야 한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불법 입국을 이유로 형벌을 과하게 부과해선 안된다는 난민협약을 직접 적용한 판결이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위계공무집행방해, 출입국관리법 위반(허위사증 발급) 혐의로 기소된 이란인 A씨의 상고심에서 형을 면제하는 판결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브로커와 공모해 이란 주재 한국 대사관 사증 담당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위계로써 방해하고 거짓으로 사증을 신청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한국에 입국해 취업과 난민신청을 할 계획이었으면서도 브로커에게 사증 발급을 부탁했으며 브로커는 서울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안모씨에게 “구입할 원단을 보러 갈텐데 사증을 받을 수 있도록 초청장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결국 브로커에게서 받은 안씨 초청장으로 단기상용비자(C-3)를 발급받았다.
1심은 A씨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수법이 불량하긴 하지만 범행을 자백하고 전과가 없는 점을 감경사유로 고려했다.
그런데 2심은 유죄가 인정되긴 하지만 형 면제를 선고해야 한다며 1심 판결을 파기했다.
A씨는 2016년 3월 입국한 뒤 난민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행정소송을 냈다. A씨는 2심 재판을 받던 중 행정법원 판결에 따라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행정법원은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A씨는 이란으로 돌아갈 경우 박해받을 것이라는 근거 있는 공포를 가진 외국인으로 난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이 ‘형벌이 과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것은 형을 면제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한국이 가입하고 비준한 난민협약 31조1호는 해석에 따라 공무집행방해죄와 허위사증 신청죄를 포함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출입국관리법은 일부 출입국관리법 위반 범죄를 저지른 난민에게 형 면제를 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대상 범죄에 위계공무집행방해죄와 허위사증 신청죄는 포함돼 있지 않다. 다만 난민협약 31조1호는 ‘난민이 불법으로 입국하거나 불법으로 체류한다는 이유로 형벌이 과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의 쟁점도 A씨가 받는 혐의들이 출입국관리법이 정한 형 면제 규정의 대상범죄가 아닌데도 난민협약을 직접 적용해 형 면제 판결을 선고할 수 있는지였다.
대법원은 형 면제를 선고한 2심 결정이 옳다고 봤다. 대법원은 난민협약은 국회 동의를 얻어 체결된 조약이므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고 개별 규정의 구체적 내용과 성질에 따라 직접적인 재판규범이 될 수 있다고 전제했다.
대법원은 “난민협약 조항은 한국 형사재판에서 형 면제 근거조항이 된다”며 “형 면제 대상이 되는 ‘불법으로 입국하는 것’에 출입국관리법 위반죄를 구성하는 행위는 물론 이를 구성요건으로 하는 형법상 범죄행위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그간 국제인권조약 등은 국내에서 직접적 재판규범으로 활용되지 못했고 재판규범으로 직접 적용될 수 있는지에 관한 대법원의 명시적 판시도 없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회 동의를 얻어 체결된 조약은 법률과 동일한 효력이 있음을 재확인했다”며 “조약의 재판규범성을 인정하는 명시적인 판시를 했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