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진리가 무엇인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진리이다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투 DB

아마 세상에서 가장 무게감 있고 가장 빈번히 말해지는 단어가 ‘진리(truth, 眞理)’ 아닌가 싶다. 그만큼 사람들이 진리를 중시하고 그것에 목말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학을 ‘상아탑(ivory tower, 象牙塔)’이라는 것은 그곳이 ‘진리를 추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진리’의 영역도 ‘학문, 철학, 종교, 과학’ 등 다양하다. 그런 진리의 추구가 그들 분야에서 나름대로 대단한 업적을 이뤘고, 인류 역사를 진보시켰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다 ‘피조물에 관한 것들’이고, 영원하지도 죄인을 구원하지도 못한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것들의 추구는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는 진리’만큼 그리 의미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피곤하게 할 뿐이다(전 12:12-13). 그것들은 세상이 멸망할 때 다 함께 소멸된다(요일 2:17).

그런데 없어지지 아니하는 ‘진리’가 있다. 곧 ‘영원하신 삼위일체(Trinity, 三位一體) 진리’이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듯 ‘삼위일체 진리’도 영원하다. 성경이 ‘진리’를 말할 때는 언제나 이 ‘삼위일체 하나님(the Trinity God)’을 지향한다. 사실 ‘진리’라고 명명할 만한 것은 이 외엔 없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시편 31:5), 예수님(14:6), 성령님(16:13)’ 각 위(位)를 ‘진리’라 했고, 또 ‘각 위(位)께서 동등일체로 존재하심’이 ‘진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삼위일체’ 중심에 계시면서, 그것을 계시하신 분이 ‘사람의 육체를 입으신 성자 그리스도’시다. 그가 성육신하여 우리 죄를 구속하심으로서 ‘삼위일체’를 계시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이는 ‘말씀이 육신이 되심(죽으심)으로 삼위일체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히 계시됐다’는 뜻이다. 만일 성자 그리스도가 사람 되어 와 죽지 않으셨다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진리’도, ‘그로 말미암은 은혜’도 우리에게 알려질 수 없었다.

이는 이 ‘삼위일체 계시’가 오직 ‘하나님의 자증(God’s own evidence)’으로만 되며, ‘세상의 지혜(고전 1:21)’나 ‘사람의 마음(고전 2:9)’으론 이해불가하다는 말이다. 찬 240장의 가사처럼 그것은 땅에 속하지 않은 ‘하늘의 지혜’이다. “참 사람되신 말씀 하늘의 지혜요 변하지 않는 진리 온 세상 빛이라 그 말씀 성경에서 영원히 비치어 내 길에 등불되니 늘 찬송하리라.”

그리스도의 교회가 ‘전도에 힘쓰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 ‘인간의 생득적인 지혜’로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죄인을 헌신케 하는 삼위일체 진리

죄인이 이 위대한 ‘삼위일체 하나님 진리’를 발견하게 되면 다른 ‘피조물의 진리’에 대해선 심드렁해지고 그것들에 시간과 정력을 바치는 것이 아깝게 여겨진다. 그가 만일 전도자나 설교자라면 강단에서 이 위대한 ‘삼위일체 진리’만을 설파하고 다른 것들에 대해선 달리 시간을 쓰질 않게 된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이 사람 되어 와서 죄인을 위해 죽으셨다’는 이 ‘삼위일체 진리’를 알고 난 후, 이제껏 그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겼던 ‘할례’,‘베냐민 지파’,‘바리새인 됨’, ‘율법의 의’를 배설물로 여기고 그것을 전하는 일에 자신을 헌신했다. 이는 ‘그 진리의 고상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7-9).”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많은 지식을 가졌었지만 이후 자신이 알아야 할 ‘유일 지식’, 자신이 말해야 할 ‘유일 주제’를 ‘삼위일체 그리스도’로 제한했고, 그 외의 것들은 다 쓸데없는 것들로 치부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행 9:18-20).”

이처럼 ‘삼위일체의 영광스러운 진리’는 죄인을 한없이 겸비케 만들고 나아가 ‘그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바꾸어 놓는다.

◈삼위일체, 구원의 진리

이 ‘삼위일체 진리’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진리’나 ‘신학자들의 담론 주제’가 아닌 죄인을 죄와 사망에서 건지는 ‘구원의 진리’이다. 죄인이 이 진리를 앎으로 ‘구원’을 받고 몰라서 ‘멸망’을 당한다.

성경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고 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永生)’이라는 뜻이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는 말씀 역시 “너희의 신앙 대상이 ‘하나님’과 ‘예수’둘이나 되니 ‘두 분을 믿고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과 예수가 동등일체이심을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구원의 은혜(보호)아래서 근심할 일이 없을 것이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 2:13)”. 여기서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다’는 말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다’는 말이다.

반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라(살후 1:8)”고 했다. 여기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단지 ‘이방인들’만이 아닌,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진리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르는 유대인’까지를 염두에 둔 말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행벌을 주신다’는 뜻이다.

사도 바울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살후 2:10)’고 한 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곧,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학교나 어떤 종교 단체들에 가면 입구나 벽면에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씀이 적힌 것들을 종종 본다. 그것을 읽는 사람들의 견해에 따라 그 의미와 해석이 분분한 것 같다. 심지어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까지도 엉뚱한 해석을 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지식인이나 학자들은 ‘소크라테스’를 떠 올리며, ‘앎을 통해 무지의 감옥에서 벗어나면 자유케 되리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철학자들은 ‘명상을 통해 초월적 이데아(transcendental Idia)에 접촉하는 것’을, 불교인들은 ‘모든 얽매임의 번뇌’에서 벗어나는‘해탈’을, 도가인(道家人)들은 ‘노자 장자’를 떠 올리며 ‘모든 것을 내려놓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삼위일체 그리스도’를 앎으로 ‘죄와 사망에서 해방 된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 되신 ‘삼위일체 진리’가 ‘구원을 주는 복음’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사도 바울의 가르침도 그것을 말한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印)치심을 받았느니라(엡 1:13).” 하나님이 사람 되신 삼위일체 ‘진리의 말씀’이 곧 ‘구원의 복음’이고, 그 ‘삼위일체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성령의 인치심’으로 ‘구원의 보증을 받았다’는 뜻이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학술고문,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Read Previous

미국-인도 외교∙국방 장관 ‘2+2’ 회담…국제 도전과제 공조

Read Next

북한 “누가 뭐라든 북러 관계 강화발전…미국, 익숙해져야”|동아일보

Don`t copy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