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증언집 『60+ Voices – 북한에서의 일상을 돌아보다』 일부 내용.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북한인권 증언집 『60+ Voices – 북한에서의 일상을 돌아보다』(이하 『60+ Voices』, 한글 표기: 식스티 플러스 보이시스) 국·영문판을 24일 공개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019년 10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약 3년 9개월간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 90여 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가지며 최근 북한인권 실태와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왔다.
『60+ Voices』는 작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발간한 『50+ Voices』의 개정증보판이자 공개용 책자로, 『60+ Voices』는 전작의 내용 보완과 함께 기존에 다룬 54명의 탈북민 증언에 7명의 증언이 추가되어 총 61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탈북민 대다수는 면접 시점을 기준으로 2년 내 북한을 이탈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최근의 북한인권 실태를 경험하고 목격한 이들로, 최근 북한 상황, 인권 실태 및 주민의 삶에 대해 상세히 증언했다.
신민정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은 “기존 북한으로의 정보 접근 제한에 더해 코로나19로 계속된 북한의 국경 봉쇄 방침으로 북한 내부 상황을 파악하기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이라며 “『60+ Voices』는 국문뿐만 아니라 영문으로도 제작되었기에 그동안 국내외 대중이 가지고 있던 최근 북한인권 실태에 대한 궁금증을 상당 부분 해소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재훈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북한인권 담당관은 “북한의 인권 상황은 느리지만 계속 변화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최신의 북한인권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들의 이야기는 최근 북한 사회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도리 수 있다”고 했다.
또 “『60+ Voices』를 통해 독자는 북한인권의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구금시설 내 처우나 주민들의 외부 정보에 대한 욕구와 같은 여러 변화는 눈여겨볼 만하다“며 “이 책이 북한인권 문제가 대중에게 잊혀지지 않고 계속 공론화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2018년 북한을 떠나 2019년 한국에 도착한 2000년대생 함경북도 출신인 탈북민 김모 씨는 “북한 학교생활에서 뇌물은 보통 흔하게 있는 일”이라고 증언했다. 김 씨의 증언에 따르면 대부분의 가정이 노트북을 가지고 있고, ‘삼국무쌍’, ‘구타’ 등 한국과 미국에서 들여온 액션 게임이 북한 내에 인기가 있다고 했다. 또 미국 영화를 비롯한 해외의 영화를 USB로 구해 서로 돌려보는 문화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한국에 도착한 함경남도 출신의 이모 씨는 “북한이라는 나라 자체가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며 “북한에서는 암호를 풀고 해킹하는 방법을 많이 배운다. 컴퓨터는 북한에서 제일 인기 많은 학문이다. 제 친구의 형이 컴퓨러틑 잘하고 똑똑했는데, 학교 졸업할 때쯤 보위부인지 군대인지 모르겠지만 까만 차가 오더니 그 형을 태워 갔다. 나중에 학교 공개선언문에서 ‘영웅 칭호를 받고 몇 명의 동지를 구원하고 희생했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그 사람에 대한 기록을 공식적으로 없애 버린 다음, 국가에서 그 사람을 사용한다”고 했다. 또 그는 “북한의 학교는 애들이 먹을 게 없어 학교를 많이 못 나온다. 한국은 일을 하면 돈을 주는데 북한을 일한다고 돈을 주지 않는다. 나라에서 배치해 준 직장에서 일해 봤자 그것은 그냥 봉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2011년 탈북해 한국에 도착한 황해남도 출신의 강모 씨는 “제가 살던 지역은 먹고 사는 데 큰 문제가 없었지만, 제 또래 애들은 다 일을 했다. 집안 사정 좋지 않은 아이들은 학교 대신 탄광에 나가 일을 했다. 저도 10살 정도였는데 친구와 같이 탄광에 가서 탄을 주워 팔곤 했다. 저는 굳이 일을 안해도 먹고 살 수 있긴 했지만, 친구들은 그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2018년에 탈북해 2019년 한국에 도착한 평안남도 출신의 손모 씨는 “요즘 북한에서 10대 20대는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본다. 하지만 백공구 상무에서 단속하기 때문에 조심해서 봐야 했다. 걸려도 돈이 있는 집은 그 자리에서 놔 준다. 뇌물을 줄 여력이 없으면 TV를 빼앗아 가거나 끌려가 처벌을 받는다”며 “옛날에는 ‘수령결사옹위’ 같은 정신이 투철했는데, 지금 10대는 그런 생각이 없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 그렇지만 북한 정부에 대항하거나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한다. 북한 사람들은 김씨 일가를 훌륭하다 생각하고, 어떤 사건, 사고가 나도 신고를 안 하고 개인적으로 끝낸다. 재판소를 누가 쓰는지 모르겠다. 북한에서 인권에 대해서 들어보긴 했지만, 인권에 대해 생각 못해봤다”고 했다.
2019년 탈북해 한국에 온 황해북도 출신의 조모 씨는 “제가 살던 지역엔 아편농장이 많았다. 학생들은 공부가 끝나면 도급제로 일했다. 아이들이 하기 힘든 일이었는데, 2-3시간은 해야 끝났다. 제일 충격적이었던 기억은 밭에 인분 말린 것을 손으로 줘야 했던 것이다. 산에서 통나무 끌어내리는 일도 했다”며 “북한은 당원이 아니면 사회적 차별을 받는다. 직업도 제한이 많다”고 했다.
공개처형과 종교의 자유 침해,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조 씨는 “북한에서 공개처형은 의무적으로 보러 가야 한다. 산골에 있을 때는 공개처형을 잘 몰랐는데, 함경북도에 와서 미신을 믿었다고 70대 할머니를 처형한 일에 대해 들었다. 북한에서는 기독교, 천주교도 다 미신으로 본다”며 “정치범수용소에 대해선 많이 들어 봤다. 거기 가는 순간부터는 사람이 아니다. 탈북하다 잡히는 정치범수용소에 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잡힐 경우를 대비해 독약이랑 면도칼을 갖고 탈북했다. 정치범수용소에 가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거기 들어갔다 나온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고, 온 가족이 하루 아침에 없어진다”고 했다.
2016년 탈북해 한국에 들어온 량강도 출신의 장모 씨는 “어머니가 먼저 한국에 가 계셨고, 보위부는 우리 가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보위부에 불려갈 때마다 뇌물을 줘야 했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다”며 “보위부, 보안서, 구금시설 같은 곳에 잡혀 들어가면 두드려 맞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짐승 같은 취급을 받는다.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직접 이를 목격한다면 한국사람들은 엄청나게 놀랄 것”이라고 했다. 장 씨는 “북한에서는 뇌물을 쓰면 대학교에 입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부를 한국만큼 하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계급을 따라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 원하는 일을 하려면 당 간부에 뇌물을 바쳐야 한다. 장마당 장사도 보안원이 수시로 단속해 뇌물을 줘야 하고, 30세 이하가 장사하면 어리다는 이유로 벌금이라는 명목 하에 돈을 요구한다”고 했다. 또 “학교에서는 학생에게 생산물을 나눠준다 말하면서 거의 준 적이 없다. 먹을 거 하나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북한은 대학교 학비가 무료인데 교수에게 돈을 줘야 성적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어서 사실상 돈이 없으면 다닐 수 없다”고 했다.
2019년 탈북한 함경북도 출신의 강모 씨는 “제가 코로나 터지기 직전에 탈북했다. 저 이후로 북한을 나온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거의 마지막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강 씨는 “탈북하게 된 계기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먹고 잘 살려면 간부를 해야 하는데, 간부도 점점 삶이 힘들어지니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회주의 국가는 학교 관리 운영을 모두 국가 자금으로 하게끔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국가가 돈이 없으니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다. 비공식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많다”고 했다.
강씨는 또 “체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부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나라의 경제 시스템이 잘못되어 그런 결과가 초래된 것이고, 교육 부문에도 그런 악순환이 반복된다 생각한다. 학생들 중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본다”며 “그러나 북한 정치 체제에 세뇌가 많이 당해 있다 보니 학생들이 사회를 다른 각도로 성찰하거나 그러지 않는다. 사회를 바꾸겠다는 생각은 안 하고 생존에 대해 고민한다. 김정은은 항상 자기 정치 체제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세뇌 교육을 예전보다 더 많이 시키려 하고, 한국 드라마도 더 철저하게 단속한다. 사람의 생각이 바뀌는 것을 더 예민하게 보고 처벌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교화소에 수감됐던 경험에 대한 증언도 있었다. 중국 공안에 3번 잡힌 적이 있다는 함경북도 출신의 이모 씨는 “공안에서 조사 받을 때는 구타가 없었는데, 변방대에 보내진 후에는 군인이 엄청 때렸다. 보이는 부위는 때리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부위를 엄청 세게 때렸다. 두달 동안 제대로 걷지 못했다. 이런 게 일상적이다. 진술이 진실되지 못하다 생각하면 진실을 말하라며 막 때린다”고 했다. 이씨는 “보위부에서 조사해서 한국행이 증명되면 관리소로 보내진다. 관리소로 간 사람은 살아나오지 못한다고 들었다. 한국과 관련된게 없다고 되면 보안서에 넘겨진다. 제가 보안서로 보내졌을 때는 대기실에 200명 정도 있었다. 거기서 조사 받은 후 단련대, 교화소로 보내진다. 이 기간에 가족이 뇌물을 보내면 단련형 같은 낮은 형을 받을 수도 있다. 저는 친척들에게 연락을 했지만 도와주지 않았고, 구류장에 구금됐다가 교화소 3년형을 받게ㄷ 됐다”고 했다.
이 씨는 “여자 교화소에서 허약이나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있었다. 3년 동안 한 10명 정도가 죽었다. 남자 교화소에서는 수감자들끼리 맞아 죽는 일이 있다고 한다. 여자 교화소는 먹는 것을 가지고 처벌하고, 육체적 노동을 시키기도 한다”며 “감옥에 들어가 보니 살아나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전에는 감옥에 갔다 온 사람이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가 보니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생존을 위해 먹고 살기 위해 가족을 위해 노력하다 죄가 아닌 죄로 잡혀온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량강도에 살다 2019년 탈북해 한국에 온 이모 씨는 량강도 도 보위부 구류장에 있던 경험을 증언했다. 이 씨는 “예전에는 한쪽만 뇌물을 주면 됐는데, 이제는 보위부, 보안서 양쪽에 뇌물을 주어야 한다”며 “구류장 안에서의 사형 방식은 총살이 아니다. 때려서 죽인다. 전문적 계호들이 있다. 맑은 정신으로 못하니 술을 먹인 다음 사형 대상자를 때려 죽이게 한다”며 “한국은 불만이 있으면 시위하는데 북한은 항상 인민반장, 통보원 감시 속에 있고, 공개된 감시, 아무도 모르게 하는 감시, 스파이도 있다. 아무도 믿지 못한다”고 했다. 이 씨는 “북한은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화 됐다. 거기는 돈이 있어야 한다. 한국으로 전화하다 잡히면 중국 돈 1만 위안, 중국으로 전화하다 잡히면 5천 위안을 그 자리에서 줘야 한다. 북한은 철장 없는 감옥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신매매를 통하든 그저 그 땅을 떠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이밖에도 다양한 증언자들이 간호 교육과 의료 환경, 땅집과 아파트, 휴대 전화의 확산, 합영회사와 지역 경제, 송금의 흐름, 중국에서의 돈벌이, 결혼과 이혼 출산에 대한 인식, 대북 접근법에 대한 생각, 탈북 원인에 대한 고찰, 돌격대 복무, 부정부패의 사회, 변화와 통제 속 움직임, 북송 경험과 감시, 날로 강화되는 통제, 비밀 정보원 활동, 장기간의 중국 생활, 반대가 불가능한 북한, 여성이 마주한 어려움, 아동 권리에 소홀한 북한, 문화예술 검열과 통제, 군 생활과 감정제대, 북한에서의 코로나19 초기 방역, 단속과 통제 박해 등 60명이 넘는 이들의 대한 다양한 증언이 담겼다.
한편, 북한인권 증언집 『60+ Voices – 북한에서의 일상을 돌아보다』는 실물 책자로도 제작돼 국내외 국제앰네스티 회원 및 지지자를 대상으로 연내 배포될 예정이다.
『60+ Voices』는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도록 디지털 파일(PDF) 형태로 한국지부 홈페이지를 통해 국문판과 영문판이 함께 공개된다. 자세한 내용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