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목사. ⓒ크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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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고,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됐고, 하나님께 종이 됐다’고 선언했다.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6-7, 18, 22)”.
이 말씀들에 대한 곡해가 많다. 먼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한다’에 대한 것이다. 흔히 이것을 ‘죄의 인자(factor, 因子)가 우리 몸에서 다 소멸 돼 어떤 죄에도 굴복할 가능성이 성도에게서 없어졌다’는 말로 곡해한다. 이들의 주장을 들으면 이미 성도가 영화로운 몸을 입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말은 ‘성화적(聖化的) 용어’라기보단 ‘법적(法的) 용어’이다.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이 죄가 되는 운명에서(율법 아래서) 벗어났다’는 말이다. 율법 아래 있는 인류가 행하는 모든 것, 곧 악(惡)은 물론 선(善)까지 다 ‘율법의 정죄’를 받았는데, 이제 ‘율법’에서 해방돼 죄에게 종노릇하는 운명에서 벗어났다’는 말이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 4:15)”.
그리고 이렇게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게 된 것’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롬 6:6)’ 때문이다. ‘우리 옛사람이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하여(그의 죽음이 내 죽음이 되어) 하나님께 ‘죄삯 사망’을 지불하므로 더 이상 우리에게 ‘정죄’받을 일이 벗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범하는 죄
‘구원받은 성도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완전주의자들(Perfectionists)이다. 그들은 자신이 성도라면서 죄를 범하는 사람은 무늬만 성도이지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참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죄에게서 해방됐기에 전혀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의 근거로 그들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는 말씀 같은 것을 인용한다.
그러나 그 주장도, 그 인용구도 모두 잘못됐다. 성경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도 죄를 범한다고 가르친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 7:20).” 물론 이는 ‘고의적이고 반복적’인 소위 ‘고범죄(willful sins, 시 19:13)’가 아닌 ‘육신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은 죄’이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5-20)”.
그들이 인용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요일 3:9)’는 ‘중생한 영(regenerat spirit)’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이지 ‘그 사람이 전혀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중생한 영(regenerat spirit)’ 혹은, ‘중생한 속사람(the inward man, 고후 4:16)’을 말한다.
‘중생한 영’과 관련된 말씀은 에베소서 2:5-6절, 골로새서 1:13절에도 나온다. 이들 본문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금생에서 천국으로 옮겨졌다’고 한 말은 ‘중생한 영의 이동(the migration of regenerat spirit)’을 뜻한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5-6)”.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이렇게 천국으로 옮겨진 ‘중생한 영’은 당연히 ‘죄의 오염’에서 보호되어 범죄치 아니한다.
우리는 ‘거듭나지 못한 불신자’가 ‘죄의 종(the servant of sin)’으로서 죄를 범하는 것과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육신의 연약성’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는 것은 ‘그가 구원받지 못했다’는 증거도, ‘그가 죄의 종’이라는 증거도 아니다.
그는 자신을 정죄하는 ‘율법’에선 해방됐지만 그의 ‘부패한 죄성’에서 해방된 것은 아직 아니다. 루터(Martin Luther)가 성도를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이라고 한 것도 ‘의인의 범죄 가능성’을 시사한 말이다.
그들이 범한 죄는 ‘율법의 정죄에 이르는 죄’가 아닌, ‘회개해야 할 죄’, ‘용서받아야 할 죄’이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그를 변호해 주실 그리스도가 있으니 극단적인 절망(extreme despair)에 빠지지 말라고 권면한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일 2:1).”
나아가 그는 ‘회개(repentance, 悔改)’를 ‘그리스도인의 일상적인 일’로까지 말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9-10).”
다시 말하지만, 둘의 차이라면 ‘율법 아래서 범하는 불신자의 죄’는 ‘죄의 종으로서 범하는 죄’이고, ‘율법에서 해방된 그리스도인의 죄’는 ‘자유자(아들)로서 범하는 죄’이다.
◈‘의의 종’도 죄를 범하는가?
성도가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8)”는 말씀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는 듯하다. 그것은 ‘그가 죄(罪)하곤 완전히 절연되어 오직 의(義)만 행한다’는 뜻이 아니다.
앞서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한다’가 ‘그의 몸에서 죄를 범할 모든 인자(因子)가 다 소멸 돼 다신 어떤 죄도 범할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뜻이 아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말씀 역시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법적(法的)인 개념’이지 ‘죄는 전혀 안 짓고 오직 의만 행한다’는 ‘성화적(聖化的)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그가 죄를 범한다고 ‘의의 종(the servants of righteousness)이 아니다’거나, ‘죄의 종(the servant of sin)으로 전락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죄를 범함에도 여전히 ‘의인(the righteous)’이고, ‘의의 종(the servants of righteousness)’이다.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었지만 술에 취해 실수를 하므로, 아들 ‘함’을 시험에 들게 하여 저주에 빠트렸다(창 9:21-25). 그렇다고 그의 ‘의인 됨’이 취소되지 않았다. 중죄(重罪)를 범한 다윗, 베드로 역시 그들의 죄로 ‘의인(the righteous) 됨’이나 ‘의의 종(the servants of righteousness) 됨’이 취소되지 않았으며, 회개하며 다시 열심을 내어(계 3:19) 여전히 ‘의인’과 ‘의의 종’으로 살았다.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됐다’는 말도 ‘죄는 하나도 안 범하고 오직 하나님의 종으로만 사는 사람이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종종’ 잘못을 범하고 ‘종종’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하지만 ‘회개하여 다시 열심을 내어(계 3:19)’ 여전히 ‘죄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종’으로 산다.
다시 말하지만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됐다’는 말은 근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하나님의 소유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정의한 것이다. 할렐루야!
※‘성도’와 ‘그리스도인’은 동일한 의미로 그때그때 문맥에 맞게 혼용했음을 밝혀 둔다.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학술고문,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