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래 칼럼] 은혜와 선물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

필자는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을 받았습니다. 은혜와 선물에 대해 예화를 드려 보겠습니다. 어느 날 힘들게 사는 여자 집사님에게서 뵙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약속 장소(커피숍)에서 만난 집사님은 탁자 위에 흰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목사님 좋은 자동차 값은 아니지만 제 성의입니다. 이 돈으로 자동차를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이 돈은 받을 수 없습니다. 세 번을 거절했습니다. 집사님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만약 목사님께서 이 돈을 받지 않으시면 저는 죽을 것 같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 봉투를 받고 눈물로 축복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봉투를 열어 보니까 당시 카니발 정도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필자는 이 집사님을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선물은 이렇게 가치가 있습니다.

몇 년 전 스리랑카에서 공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어느 젊은 부부가 참석했습니다. 강의 중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의 간증을 했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지병이 있습니다. 심장도 안 좋은 사람입니다.” 오후 시간에 젊은 목사님께서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해서 마이크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는 모든 목사님들 앞에서 “목사님께 제 심장을 떼어 드리겠습니다. 젊은 제 심장을 달고 스리랑카를 살려 주세요.” 눈물로 고백을 하였습니다. 필자를 비롯해 참석한 모든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눈물 바다가 되었습니다. 세미나가 중단되었습니다. 필자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물었습니다. “목사님 혼자의 결정입니까? 아니면 사모님과 협의를 했습니까?” 사모님과 함께 결정한 일이라고 부부가 대답했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신혼부부였습니다. 필자는 이분들의 마음의 선물을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3년 전 이분들에게 교회 건축 지원을 해 드렸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선물도 값진 것입니다.

필자가 이 땅에 태어나 제일 값진 은혜는 믿음이 좋은 부모님 집안에서 태어난 일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값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으며,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은혜를 보답하기도 전에 부모님은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입니다. 살아생전에 부모님은 필자에게 늘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삯꾼 목사가 되지 말고, 참 목사가 돼라.” 필자는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모르는 신앙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가 있습니까?”

오래 전 친구의 권유로 어느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강사님은 요한복음 1장 1절을 읽고 “말씀은 곧 하나님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몇 번을 반복했습니다. 그 말씀이 불(레마)이 되었습니다. 그 말씀 때문에 일주일 동안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로 취했습니다. 그때부터 필자는 성경을 보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21년 동안 말씀을 많이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수없이 성경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서재에는 설교 원고와 녹음 테이프, 연구 자료가 많았습니다. 1주일 동안 모든 자료를 아궁이에 다 태웠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연구한다” 했던 것이 얼마나 자세가 잘못되었던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믿고 지키라고 준 것이지 연구하라고 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주변과 삶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온 가족이 천국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입니다”라고 가르쳐 준 강사님과 친구의 은혜는 평생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후 깊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누가 나를 전도(복음)해 지옥 갈 사람을 천국 백성(생명)이 되게 해 주었다면, 그 은혜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구원의 참 가치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제자가 있습니까?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과 교육을 받는 관계를 말합니다. 목사와 선교사, 교수는 교인들과 제자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고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으로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빌 3:17)”란 삶이 필요합니다. 이런 가르침과 교육이 생명 있는 삶에 신앙과 믿음의 가르침입니다. 복음은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처럼 삶으로 본을 보이면서 교육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 가르침 때문에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롬 16:4)” 복음의 값진 선물 즉 생명의 선물을 받았다면 브라스가와 아굴라처럼 스승을 대신해서 죽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참 복음을 깨달은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결론

구원의 은혜(선물)를 받았습니까.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구원은 지옥 갈 사람이 천국을 가게 된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헤와 선물입니다. 영원히 멸망을 받아야 할 사람이 생명의 복, 자녀의 복을 받았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입니다. 이런 복을 깨닫는 것이 구원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십일조가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에 구조를 드려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요일 3:8~9). 구원의 은혜와 선물을 깨달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가 있습니다.

요즈음 인터넷과 유튜브를 보면 교회와 진리의 반대 세력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성경의 본질도 모르는 사람들이 구원이 어떻고, 십일조와 주일 성수, 봉사 등을 비판합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주와 및 복음을 위해서 각종 핍박과 고난, 때로는 순교를 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마 10:34~39). 지금도 이슬람과 불교국가, 공산주의에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의 선물을 받은 사람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리게(요일 2:15~16) 됩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어린아이 신앙”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마세요.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순간에 깨닫고 알게 됩니다. 그런 은혜를 깨닫게 되면 다메섹 도상의 사울이 바울로 삶과 본질이 변한 것처럼 변하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국제국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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