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문 창간 60주년 특집] 기독신문 60년을 증언하다-(2)영원한 주필 한명수 목사 < 기획/해설 < 기사본문



“기독신문은 교단지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신문이다”


기독신문은 1965년 설립 후 20년 동안 4개면으로 발행했다. 1986년부터 지면을 8개면으로 늘렸고, 이후 1997년 한국교회 언론사 중 처음으로 가로쓰기 체계를 도입하고 24면으로 증면했다. 불과 10년 사이에 교단 뉴스를 전하는 신문에서 교계 최고의 언론사로 발돋움했다. 기독신문의 발전에 많은 이들이 기여했지만, 누구보다 주필 한명수 목사의 영향이 컸다. 기독신문 60년 역사에서 최장 기간 주필로 사역하며, 기독신문을 한국교회 대표언론으로 성장하도록 이끈 ‘영원한 주필’ 한명수 목사를 조명한다.<편집자 주>


1985년 9월부터 기독신문(당시 기독신보) 주필 한명수 목사.
1985년 9월부터 기독신문(당시 기독신보) 주필 한명수 목사.


한명수 목사는 1985년 9월 기독신문(당시 기독신보) 주필로 임명받았다. 1985년 9월은 총회 역사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화총회’로 역사에 기록된 제70회 총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당시 한명수 목사는 총회에서 막강한 정치력을 갖고 있던 이영수 목사에 맞서 교단을 개혁하는 선봉에 섰다. <기독신보> 9월 28일자(제618호) 1면은 ‘총회 새 도약대 구축, 제70회 총회 진정한 공화정치로 새 출발’ 제목 아래, 총회와 유지재단과 총신대 등 교단 전반에 갱신이 일어났음(사진 아래)을 보도하고 있다.




총회를 개혁하는 일과 함께 한명수 목사는 기독신문 주필 직을 맡았다. 하지만 정화총회 이후 교단은 여전히 혼란했고, 한 목사는 1년 만에 주필을 내려놓았다. 그는 총회 정화와 갱신을 멈추지 않았고, 1987년 9월 제72회 총회를 파회 한 후 10월부터 다시 주필을 맡았다. 이후 한 목사는 2000년 12월 27일(제1326호)까지 13년 3개월 동안 주필로서 사역했다.


주필로서 마지막으로 쓴 ‘한명수칼럼’ 제목은 ‘꿩 잡는 것이 매로 시작했는데…’였다. 이 제목은 한명수 목사가 14년 3개월 동안 ‘꿩 잡는 매’처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칼럼을 썼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총 14년 3개월의 주필 직을 내려놓으며 ‘마지막 할 말은 안녕! 평안을 빌 뿐이다’라고 담백하게 인사했다.(사진 아래) 이듬해인 2001년 9월 18일 한 목사는 제86회 총회에 부총회장 후보로 출마해 제비뽑기로 선출됐다.




주필 한명수 목사가 기독신문에 미친 영향은 막대했다. 그 영향은 한 목사가 가진 신앙과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 제70회 ‘정화총회’에서 보듯 한 목사는 불의에 저항하고 교단과 교회를 갱신하기 위해 노력한 ‘개혁자’였다. 또한 성경의 진리와 초대교회 신앙전통을 수호했지만 한국교회의 연합과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 ‘열린 보수’였다. 교회는 늘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고 복음을 흘려보내야 한다는 목회철학을 갖고 있었으며, 북한군에게 부모를 잃었지만 대북지원과 한반도 평화통일(사진 아래)을 위해 노력했다.






열린 보수신앙, 개혁의지,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민족을 향한 의식 등 한 목사의 신앙과 철학은 기독신문의 정체성이 됐다.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기독신문은 놀라운 양적 질적 성장을 이뤄냈다.


지금도 기독신문에게 ‘한국교회 대표언론’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이 말 역시 한명수 목사에게 부여받았다. 총회장 직무를 마치며 한 목사는 기독신문에 <전국 교회에 드리는 특별편지-개혁전통은 계속돼야 합니다>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기독신문에게 당부했다.


“총회기관지인 기독신문사도 교단성을 유지해야 되는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지만, 그럼에도 교단의 벽을 훨씬 넘어서 한국교회의 대표적 신문이 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하여 정필과 시대적 소명의식과 책임이 동시에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한명수 목사의 명문  


어느 노회 임원과 증경노회장 몇 사람이 모여서 요즘 총회의 각 이사 선임에 불공정성을 지적하면서 한 사람이 두세 군데 점유하고 있으니 전공성을 고려하여 한 직임만 하도록 성명을 광고로까지 내겠다는 말은 정말 말이 되는 소리다. 십 수 년 전부터 한 사람이 열 이상의 직임을 갖고 있는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닐테고 … 정화의 바람이 불기는 확실히 부는 모양이다. (1985년 10월 26일자 기독신보(제621호) 방패 ‘말이 되는 소리’에서)


한명수 목사
한명수 목사


우리는 장애인을 ‘돕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자선이 아니라 의무가 있다. 도움의 시혜가 아니라 ‘더불어 삶’의 권리를 장애인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장애자든 그렇지 않은 사람으든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명령이다.…장애인에게 할당된 특별한 날, 그렇게 우리는 구별하여 그들을 ‘돕는다.’ 더불어 살지 않았다. (1997년 4월 16일자 기독신문(1153호) 한명수칼럼 ‘어느 임산부의 기도’에서)


한명수 목사= 북한 가정교회에 비디오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총회와 신문사에서 지원을 준비하고 있는데, 가정교회 이름이나 주소를 알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강영섭 목사= (500개의) 가정교회는 각 지역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남쪽에서 도와주겠다니까 이것을 도와달라 그랬지, 우리가 꼭 필요해서 요구한 것도 아니니까. 무리하지 마시고 재미있게 할 수 있으면 하십시오. 가정교회 이름은 모두 드릴 수 있습니다. (1998년 10월 조국평화 통일을 위한 제6차 일본 오사카 회의에서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위원장 강영섭 목사 단독 인터뷰 중)


한국교회가 놀랄만한 양적 성장은 이루었으나 질적으로는 교회답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작은 자와 소외된 자, 그늘에 앉아 있는 자와 빼앗긴 자들의 존재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이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냉철히 살피고 이런 일을 복음전파 차원에서 한국교회와 사회 앞에 주도적으로 해 나가기를 바라며 이에 헌신하고자 하는 것이다. (2001년 8월 총회 부총회장 출마 소견발표문)


기독신문은 언론이다. 그리고 교단지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교단지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되지만, 우선은 언론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단순히 교단을 옹호하는 기능이라면 신문이 아니어도 된다. 기독신문은 한국교회의 신문이다. 마땅히 써야 할 것을 쓰지 않는다면, 그건 이미 언론이 아니다. (2004년 5월 목사 은퇴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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