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둘째 주일‘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아쉽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제가 지난 12월 2일 저녁에 잠을 자다 오른쪽 발뒤꿈치가 전기장판에 저온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날 저는 저온화상인지도 모르고 주일 낮 예배와 5부 예배 성찬식까지 다 인도했습니다. 전기장판에 화상을 입을 줄이야 저도 몰랐고 주변 사람들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화상인 줄 알고 연고를 바르고 항생제와 소염제를 먹었습니다.
약간의 차도가 있는 듯했지만, 저는 계속해서 박순애 전도사님 초청 집회 시간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이후로 교역자 연말정책수련회와 루체비스타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고 이끌어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CBS 설립 70주년 및 여러 교계 행사 모임에도 다 참석을 했습니다. 집사람은 빨리 화상 전문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지만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아서 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만약 화상 전문병원에서 입원을 하라고 했더라면 교역자수련회나 루체비스타 성탄절을 이끌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성탄절예배와 송구영신예배도 이끌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신년축복성회도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중간중간 그 사이에도 나름 드레싱을 하고 연고를 바르고 약도 처방하여 먹었습니다.
그러다 모든 집회가 끝난 후 1월 5일, 첫 주일저녁예배를 마치고 이재훈 목사님을 오시게 해서 화상을 입은 뒤꿈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목사님께서 화상 전문시스템을 잘 갖춘 대학병원에 연락을 했고, 저는 다음 날 오전 11시 응급 처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강제 입원을 하고 말았습니다.
화상 전문 성형외과 선생님은 저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환자분, 큰 교회를 섬기고 목회하는 분으로 들었습니다. 이 발뒤꿈치를 앞으로도 10년 아니 20년 이상을 써야 할 텐데 왜 이렇게 방치하셨습니까?”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렸죠. “교수님, 나름 드레싱을 하고 연고도 바르고 약도 먹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다시 말씀하시는 거예요. “왜 이렇게 병을 키워 갖고 오셨어요? 처음에 바로 왔으면 간단하게 처치할 수 있는 것을 왜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왔습니까?” 그러자 또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죠. “어느 교회든지 연말연시는 다 바쁩니다. 특별히 저는 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화를 내시면서 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 해만 목회를 하시려고 하십니까? 앞으로 10년, 20년 일을 해야 하는데요? 조금만 늦게 왔으면 뒤꿈치를 절단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시급함을 모른단 말입니까?”
병실에 누워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하루가 긴지요. 아무리 기도를 하고 성경을 봐도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졌습니다.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염증 부분을 잘라내는 아픔, 억지로 피를 나오게 해서 생살이 돋아나게 하는 처치의 시간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가슴 저리기까지 하였습니다.
3일째가 되자 그토록 엄격하고 원칙적인 주치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피부 이식 수술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잘 치료하면 빨리 새살이 돋아날 것 같습니다.” 금요일 오후에는 국소 마취를 하여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염증을 제거하였습니다. 제가 휠체어를 타고 가서 설교를 하면 안 되냐고 했더니, 그분은 “절대로 안 됩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번 주를 잘 참아내면 다시 후회 없이 발바닥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만류를 하였습니다.
병실에 앉아서 생각해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일정을 다 취소하고 일찍 화상병원에 올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그때 당시로서 저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 병실에서 오직 하나님을 생각하고 성도 여러분을 생각하며 인생의 새롭고도 또 다른 페이지를 써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년집회가 끝나면 쉬고 치료를 받으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더 엄격하게 강제적으로 치료를 받게 하시네요. 성도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고 제가 더 새롭고 신선한 얼굴로 뵙겠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