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삶, 목수의 삶 모두 성심 다합니다”
성탄절의 가장 큰 방점은 경배에 있고, 그 다음은 나눔에 있다. 사실 이 두 가치는 그리스도인이 성탄절 뿐 아니라 일상에서 추구해야 할 것이기도 하다. 여기 목사의 삶에다 목수의 삶을 더해가며 두 개의 가치를 균형 있게 잡아내는 인물이 있다. 매일을 성탄절처럼 살아가는 그 복된 인생을 들여다보자. <편집자 주>
새벽예배를 마치고 아침 식사까지 끝내면 곽승호 목사(함평대동교회)는 조용히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사택 위층의 목공실로 향한다. 10여 개의 작업대와 온갖 장비들이 고루 갖춰진 작업실에는 이런저런 목재들이 곽 목사의 손길을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볼품없던 나뭇조각들의 모양이 조금씩 변한다. 거친 표면이 말끔해지고, 반짝반짝 윤이 나기 시작한다 싶더니 어느새 잘 단장된 모습으로 완성된다. 어쩌면 어느 집 땔감으로 생을 마쳤을지도 모르는 이 목재들이 자그마한 교패로, 한 아름되는 봉헌함으로, 덩치 큰 필경대나 책상으로 쓸모 있게 다시 태어나는 광경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느끼는 기쁨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당신의 손길을 통해서 생명들이 새로워지고, 혼돈스러운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지켜보시면서 ‘참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마음을 저는 목공실 안에서 조금씩 짐작해 보곤 합니다.”
목사의 삶, 목수의 삶. 이름조차 비슷한 두 개의 삶을 함께 살아가면서 곽 목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더 헤아릴 수 있게 됐다. 어쩌면 그것은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이전 목수의 길을 먼저 가셨던 그리스도의 길을 뒤따라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곽 목사가 목공에 처음 손을 댄 것은 8년 전의 일이다. 오로지 목양일념으로 밤낮없이 사역에 몰두하면서 함평대동교회를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로 잘 세워왔다. 그렇게 교회는 탄탄해졌지만, 정작 목회자 본인에게는 떨쳐내지 못한 스트레스의 무게가 쌓였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느끼긴 했지만 계속해서 직진만 하던 삶은 기어이 심근경색으로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구급차에 올라 응급실로 실려 가면서 곽 목사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돌봐온 영혼들처럼, 목회자인 본인 역시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존재인 것을.
수술 후 자신만을 위해 필요한 시간을 무엇으로 보낼까 궁리하던 곽 목사에게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목공이라는 세계가 다가왔다. 마침 함평대동교회에 서각에 달란트를 가진 성도가 있어 전혀 낯설지는 않은 분야였고, 곽 목사 본인도 평소 이런저런 손재주가 뛰어나다는 평판을 받았기에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자연스레 이 세계와 가까워지게 됐다.
처음에는 톱과 망치 정도만 있으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목공작업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스스로에게 힐링의 효과가 크다는 사실과, 이 시간이 결과적으로 목회사역에도 적잖은 활력을 가져다주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목수로의 변신에 착수했다.
텅 비어있던 사택 옥상 공간에 목공실을 설치하고, 성령을 뜻하는 히브리어 ‘루아흐’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중고장비들을 하나씩 들여놓으니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규모의 공방이 완성됐다.
감사하게도 성도들 역시 곽 목사의 변신을 잘 이해했다. 담임목사의 평소 어질고 착한 성품을 익히 잘 알고 있는 터라, 목수의 길을 선택한 데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고 지지를 보내준 것이다. 당초에는 공방이 자꾸 커지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던 아내 김희경 사모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공방의 동역자로 합류했다.
김희경 사모는 외관 작업을 마친 물품들을 산뜻하게 마감하고 장식하는 작업을 맡거나, 남편이 열심히 만들어 놓은 목판 위에 인두화(woodburning)를 그리는 일을 한다.
두 사람이 솜씨 좋게 완성한 소품들은 연말이나 성탄절 부활절 혹은 전도행사 같은 때 성도들과 이웃들에게 선물한다. 덕분에 함평대동교회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상당수는 부부가 만들어 준 도마로 음식을 조리하고, 선물 받은 나무상자에 의약품을 보관하며, 성구와 예쁜 그림이 새겨진 목공예품들로 집안을 장식한다.
예배당 안에도 루아흐 공방에서 탄생한 독서대가 새벽예배 시간 성경을 읽는 성도들 눈앞에 놓이며, 쉼터는 재활용한 목재로 만든 의자와 탁자로 채워져 있다.
“어딘가에 버려진 가구나 나무들이 있으면 허투루 보고 넘기지를 못해요. 공방으로 가져와 조금만 손질해도 금세 쓸모 있는 물건들로 바뀌니까요. 허물 많고 약점 많은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도 그러하지 않을까요?”
곽 목사의 목공 실력이 보통 아니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요즘 루아흐 공방에는 이런저런 주문이 많이 들어온다. 처음에는 가까운 이웃 교회들을 위한 소품을 무료로 제작해 주는 정도였는데, 요즘에는 꽤 큰 규모의 성구들을 부탁하는 요청이 전국에서 들어와 가능한 한 실비 수준에서 제작해 주는 중이다.
이달 안에 완성해 보내주기로 한 헌금봉투꽂이 등을 제작하고, 성탄절에 이웃들과 나눌 선물들을 준비하느라 공방은 연일 바쁘게 돌아간다. 그중에도 심방이나 교회 안팎의 각종 행사들까지 챙기느라 몸은 더욱 분주해졌지만, 예전처럼 건강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는다.
기회가 닿는다면 동료 목회자들이 쉼을 얻고 목공기술도 배울 수 있는 ‘공방카페’을 열어 자신의 재능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게 곽 목사의 꿈이다. 김희경 사모는 이미 교우들을 위해 인두화 교실을 열어, 함께 배우고 익히는 일에 한창이다. 교우들의 실력이 더 늘어나면 함평대동교회 예배당은 더 멋진 작품들로 채워질 것이다.
“나무는 거짓말하지 않아요. 매만진 만큼 광택이 나고, 손을 대는 만큼 품격이 스며듭니다. 그래서 나무를 만지는 일이 꼭 목회와 비슷하다고 여길 때가 많습니다. 성심을 다 바쳐야만 좋은 완성품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목사의 길, 목수의 길 모두 잘 감당하며 더 건강한 사역을 하고 더 건강한 교회를 세워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