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 유은성 부부. ⓒ다니엘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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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정화와 CCM 가수 유은성 전도사가 16일 오륜교회 다니엘기도회에서 ‘신의 한 수’라는 제목으로 간증하고 찬양했다.
이날 기도회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나는 믿네’를 찬양한 유은성 전도사는 아내 김정화에 대해 “17살 때 명동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받아 모델이 돼 유명 잡지에 실리게 됐고, 이승환 뮤직비디오 여주인공에 발탁돼, 이후 논스톱으로 섭외된 후 수많은 드라마와 CF를 찍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이어 “저는 그렇지 못했다. 찬양 사역 24년 중 7년을 무명 생활을 했고, 김정화 씨가 부러웠다. 그러다 우연히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아내의 옛날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우울하다’, ‘죽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의아했다. 잘나가던 때에 왜 그랬는지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우울증 약을 먹으며 병원을 다녔고 심한 생각까지 했다고 했다”고 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정화는 “전 소심한 성격으로, 연예인이 될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가족들도 제가 연예인을 한다는 것을 의아해할 정도였다. 연예인 사이에서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제가 잘난 게 없고 못생겼다고 생각하며 활동했다”며 “10대의 예민한 사춘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처음엔 신기한 마음으로 활동했지만, 점점 바빠지면서 하루에 2-3시간 잠을 자게 됐고, 당시 부모님이 이혼을 하는 아픔을 겪었다”고 했다.
김정화는 “저는 모태신앙이다. 어머니는 사실 제사 문제로 시집살이를 고되게 하시면서도 열심히 교회를 다니셨다. 저는 주일에 교회에 있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연예인이 되니 제게 교회 갈 시간을 주지 않았다. 당시 자기 전 기도한 게 신앙생활의 전부였다. 기도하면 늘 ‘왜 저를 연예인으로 만드셨는지’ 묻기만 했고, 불평 불만이 많았다”며 “결국 우울증을 심각하게 겪었고, 몰래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그러다 회사에 이야기하고 과감하게 활동을 중단했다. 그리고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부끄러웠다. 20대 중반이 돼서야 예배 시간 외에 성경책을 제대로 처음 봤다. 그때 나만의 하나님을 처음 만나게 됐다”고 했다.
이후 김정화는 친한 탤런트였던 정태우의 권유로 MBC 프로그램을 통해 아프리카에 방문하게 됐고, 2009년에 아그네스라는 아이를 만나게 됐다고 밝혔다. 김정화는 “당시 아그네스는 에이즈로 엄마 아빠를 다 잃었고, 본인도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이모에게 발견돼 이모 집에 얹혀 살게 된 상황이었다. 이모와 이모부도,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 7명도 다 에이즈에 걸려 있었다. 이러한 정보를 받고 그 아이가 저를 받아 줄 수만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며 “아이에게 줄 선물을 잔뜩 들고 2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8시간 넘게 차를 타 아이를 만나러 갔다. 찢어진 옷을 입고 신도 신지 않은 왜소한 아이가 달려와 저를 와락 안았다. 저도 모르게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김정화는 “엄마가 되어 주러 간 거니까 엄마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었다. 아이와 4일간 함께 있으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같이 있었다. 수업도 참관하고, 병원도 데리고 가고, 옷도 사 주고, 속옷을 입혀 주고, 신발을 신겨 주고, 빨래도 해 주고, 밥도 만들어 줬다. ‘앞으로 네 엄마가 되어 너를 위해 기도해 줄게’라고 했다. 단답으로만 하던 아이가 마지막 날에는 통역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 많아졌다. 제가 한국에 돌아가야 할 시간에, 씩씩하게 헤어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피붙이를 놓고 가는 것 같이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했다.
이어 “아그네스에게 ‘엄마한테 할 이야기 없냐’고 묻는데 제가 우는 2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선교사님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냐’ 물었더니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나중에 엄마가 돌아와서 내가 없으면 어떡하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겨우 6살 아이 입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게 충격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제 평생 처음으로 아그네스와 아프리카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며 “저는 그 땅에 무언가 주려고 갔는데, 오히려 제가 받은 게 너무 많았다. 아그네스를 만나고 삶에 감사가 넘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저를 배우로 만드신 것은 이 아이들을 위함인 것 같았다. 삶의 목적과 비전이 생기니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배우 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 김정화는 가장 큰 선물이 남편이라고 말했고, 이어 유은성 전도사는 김정화와의 교제와 결혼 일화를 전했다. 유은성 전도사는 “이 사람이 외로운 사람인데, 제 아버지는 굉장히 훌륭하고 좋은 분이셨고, 저와 결혼해 가족이 되면 좋겠다 생각했다. 3개월 동안 정화 씨 마음과 아버님, 그리고 기획사 대표를 위해 기도를 했다”며 그 과정을 통해 김정화의 평생 기도제목이었던 아버지가 전도된 일을 전했다.
유 전도사는 “신의 한 수, 하나님의 한 수가 여기에 있었다. 결혼을 통해서 아내의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됐다. 장인어른께선 예수님 믿으신 지 11년 되셨다. 믿음 생활 너무 예쁘게 하신다. 또 저희 아들 둘의 최대 관심사가 예수님이다. 저희 장모님 시집살이시킨 할머니는 권사님이 되셨다. 4대가 예수를 믿는 가정이 됐다. 저는 이보다 더 큰 복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예전보다 연예인으로서 덜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돈도 덜 벌 수 있다. 그러나 괜찮다. 돈이 많다고, 영향력 있다고, 권력 있다고 다 행복하진 않다. 행복을 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으시다”고 했다.
김정화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을 요즘 많이 묵상하고 있다. 신앙 생활하면서 꼭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고난도 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있다. 세상 사람들과 우리의 다른 점은, 그 시절을 어떻게 견디고 이겨내느냐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부족함 없이 그 고난, 광야의 시간을 걸어갈 수 있다”고 했다.
또 뇌종양 투병 근황을 전한 유 전도사는 “저희 가정이 좋은 일만 있지 않다. 사탄은 어떻게든 흔들려 한다. 힘들었다. 그러나 저희 가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참 신기한 신의 한 수, 하나님의 한 수가 또 있다”며 “아이가 아파서 소아과를 갔는데, 원장님 크리스천이셨다. 제가 수술 후 장애를 얻을 확률이 92%라고 기도를 부탁드렸더니, 원장님이 뇌 신경과 최고 권위자 분이 계신 병원과 협력병원이라며 전화를 하셨다. 제가 대학병원 검진을 2개월 후에 겨우 잡았는데, 원장님 덕분에 6일 뒤 그 협력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사실 멋부리고 안 아픈 척하고 다녔다. 아픈 것 티 내고 싶지 않았다. 먼 산만 바라보고 울컥울컥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랑 아이랑 자는 모습을 보는데, 아이가 아니고 제가 뇌종양인 것이 너무 감사했다. ‘수술하게 돼서 혹시 기억을 잃더라도 어떻게든 아내와 아이들 기억해낼 테니,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내가 특별 새벽기도 중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내에게도 평안을 주셨다”고 했다.
이어 “또 하나님의 한 수가 있었다. 저희가 미국에 살다가 결혼하고 2015년에 한국 들어왔는데, 오자마자 둘 다 종합 검진을 했다. 그 병원에서 옵션으로 MRI를 두 군데 공짜로 찍어 준다고 그래서 당시 아프지도 않은데 뇌와 췌장을 찍었었다. 그 때 뇌신경과 가서 진찰 받아 보라고 했었다. 당시에는 피곤하면 이렇게 나올 수도 있다고 넘어갔었는데, 사실 그게 오진이었다. 이번에 2015년 MRI, 2022년 검진센터 MRI, 2023년 정밀검사 MRI 3개를 보시면서 ‘형태가 변했다. 형태 변하면 안 된다. 그런데 돌연변이인지 8년 동안 안 자랐다’면서 당장은 수술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수술하면 심각하다고 했다. 그래서 전 어떻게 살면 되느냐 했더니, 평상시처럼 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잡아주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갔는데 C코드라고 했다. 병원비를 걱정하고 있었다. C코드가 뭔지 몰랐는데, 암진료비가 거의 다 나왔다. 너무 온 세상이 감사했다”고 했다.
그는 “저는 절 위해 기도를 잘 못했다. 친구가 제게 ‘바울도 자기 가시를 위해 세 번이나 기도했는데 왜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느냐’고 해서, 처음으로 고린도서 12장 9절 말씀 보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기도를 거절하시는 내용이다. 은혜가 안 됐는데, 그 다음 말씀에 제가 무너졌다. 바울이 ‘이로 인해 내가 크게 기뻐하리니 이제는 내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겠다’고 했다. 저도 그 말씀 붙들고 제 연약함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싶었다. 그 후 곳곳에서 저희 부부를 초청하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특히 그는 “공중파에서는 원래 하나님 얘기 다 자른다. 그런데 (저희 부부가 출연한 공중파 방송에) 찬양이 다 나오고 예배 드리는 것 다 나오는 것을 보고 믿기지 않았다. 저희가 만나교회 다니는데, 김병삼 목사님이 밤 12시에 울먹이시면서 ‘유 전도사, 내가 열 편의 설교를 하는 것보다 방송에서 이렇게 하나님 드러내 주니까 너무 고마워. 너무 잘했어’라고 전화를 하셨다. 아내가 예수님 얘기 나와서 사람들이 욕할 것 같다고 댓글 보지 말라고 했는데, 저는 댓글을 봤다. 그런데 예수님 모른다면서도 응원해 주시고, 인생의 비전을 찾았다고, 저희처럼 살고 싶다고, 감동받았다고 해 주셨다. 그때 하나님은 공중파를 들어서도 일하시는 분이시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저는 시한부 인생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언제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데 이 땅에서 어떻게 사시겠나. 우리 다 연약함이 있다. 사도 바울처럼 내 연약한 것 당당하게 하나님께 내놓으시고, ‘하나님, 이것도 써 주세요’ 하시면 하나님은 그것도 써 주시는 분이시고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라며 감사를 주제로 한 찬양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