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선교사는 선교적 신념으로 살다간 순교자” < 교단 < 기사본문





총신대 선교대학원과 109회기 총회기념사업특별위원회(위원장:배만석 목사)는 4월 14일 총신대 사당캠퍼스 주기철기념홀에서 토마스 선교사 복음 전래 160주년 기념 포럼을 개최했다. ‘토마스 선교사와 한국교회’를 주제로 한 이날 포럼은 1866년 대동강변에서 순교한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1839∼1866)의 생애와 선교적 유산을 조망했다. 포럼에는 목회자와 성도, 대학원생 등 15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성욱 교수(총신대 명예)는 ‘한국 선교 140주년의 의미와 회고:초기선교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토마스 선교사를 비롯한 초창기 선교사들의 사역과 이를 통한 한국교회 선교 확장을 설명했다. 김 교수는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 입국 이후 한국선교는 존 네비우스 선교사의 삼자원리 선교정책에 나타나 있는대로 자립하고, 자전하며, 자치하는 교회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초창기 한국선교의 특징으로는 공식적인 선교사들의 입국 이전에 중국과 일본을 통한 선교 접촉을 통해 이미 기존 신자가 존재했던 점, 선교 초창기부터 다양한 교파 중심의 선교였다는 점, 그리고 외국 선교사들의 입국에 걸맞춰 한국 교인들의 적극적인 수용이 있었던 점을 꼽았다. 김 교수는 또 한국교회가 독노회 설립 이후 이기풍 선교사를 제주도로 파송한 것을 시작으로 초창기부터 선교 사역에 헌신했다고 설명하고, “한국교회는 선교 140주년을 기념해 선교에 더욱 진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식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는 ‘토마스 선교사 순교 관련 서지학적 연구’를 발표했다. 이 교수는 ‘고종실록’ ‘일성록’ ‘패강록’ 등 토마스 선교사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국내 1차 문헌과 그를 다룬 영문 2차 문헌, 그리고 국내 학자들의 연구문헌을 통해 토마스 선교사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평가를 소개했다. 특별히 이 교수는 토마스 선교사와 무장 상선인 제너럴 셔먼호를 하나로 보는 관점에 대해, “분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 측 자료와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토마스 선교사를 마치 셔먼호의 대장처럼 서술한 것과 달리, 그는 선교사이자 한 사람의 승객, 혹은 통역자로서 승선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토마스 선교사가 셔먼호를 이끌고 온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전파하려는 그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승선해 입국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총신대 선교대학원과 총회기념사업특별위원회가 4월 14일 토마스 선교사 복음 전래 160주년을 기념하는 포럼을 공동개최했다. 토마스 선교사에 대한 방대한 사료를 수집한 유해석 교수가 토마스 선교사의 생애와 선교적 유산을 설명하고 있다.
총신대 선교대학원과 총회기념사업특별위원회가 4월 14일 토마스 선교사 복음 전래 160주년을 기념하는 포럼을 공동개최했다. 토마스 선교사에 대한 방대한 사료를 수집한 유해석 교수가 토마스 선교사의 생애와 선교적 유산을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해석 교수(총신대 선교대학원 주임)는 ‘토마스 선교사의 생애와 그의 선교적 유산’을 조망했다. 토마스 선교사 연구로 영국 웨일즈대학에서 철학석사 학위를 받기도 한 유 교수는 토마스 선교사의 자손들로부터 직접 입수한 자료 등 방대한 자료들에 근거해 토마스 선교사의 생애를 총체적으로 설명했다. 유 교수는 “사무엘 마펫이 1865년 조선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입국한 토마스 선교사로부터 한국 기독교가 시작했다고 평가한 것을 비롯, 초기 한국 개신교는 토마스의 죽음을 순교로 보았다. 그러나 근현대사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정치적 상황에 다라 그의 죽음은 제각기 다르게 인식돼 왔다”고 지적했다.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미국의 조선 침략 시도이며, 토마스를 조선의 적이라고 주장한 것을 비롯 북한이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과정에서 김일성의 증조부인 김응우를 제너럴 셔먼호를 물리친 열렬한 투자로 선전하고, 반대로 토마스를 미제국주의 첩보원이라 주장한 것 등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토마스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들은 대부분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집중하고 있다. 제너럴 셔먼호가 한국 내륙인 주영포에 도착한 것은 8월 16일이었고, 그때부터 토마스가 순교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17일이었다”며 “따라서 제너럴 셔먼호 사건만으로 토마스를 평가하는 것은 지엽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사람의 선교사를 평가할 때는 그의 신학과 사상, 생애를 총체적이며 균형적으로 조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발제에서 어린 시절부터 1866년 9월 2일 순교하기까지의 전 생애를 사료에 근거해 설명하고, 토마스 선교사가 한국교회에 끼친 소중한 선교적 유산들을 설명했다. 토마스가 나눠준 성경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훗날 기독교인이 생기고, 토마스의 순교에 영향을 받은 존 로스가 최초의 한국어 성경 번역에 나선 것, 또 토마스의 순교적 신앙이 후대 선교사들의 모델이 된 점 등을 대표적인 유산으로 꼽았다. 유 교수는 또 “토마스 선교사는 19세기 제국주의적 선교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의 무역전쟁에 희생당했다. 토마스에 대한 모든 기록들을 면밀히 분석했으나 토마스가 식민주의를 옹호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가 조선에 온 이유는 한국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선교적 신념 때문이었다”며 그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불식시키고, “토마스의 순교자 지위와 그의 선교에 대한 열정은 한국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고 강조했다.


포럼에 앞서 열린 예배는 김영민 교수(총신대 선교대학원)가 인도했으며, 부총회장 장봉생 목사가 설교했다. 장 목사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자기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조선 땅에 토마스 선교사는 하나님의 도가 담긴 성경을 들고 찾아왔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섭리와 은혜를 바라보게 된다”며 “토마스 선교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시간과 사역의 현장 속에서도 동일한 여정으로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총회기념사업특별위원장 배만석 목사는 “선교하는 민족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선교가 교회의 소망이고 대안”이라며 포럼을 준비한 관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총신대 박성규 총장은 “27살에 대동강가에서 피를 뿌렸던 토마스 선교사의 헌신을 통해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다. 토마스 선교사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복이 될 줄 믿는다”며 “한국교회 안에 토마스 선교사 같은 유능한 인재들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축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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