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마다 시험 당일 예배 자리 마련
아침 일찍부터 저녁이 다되도록 이어진 수능시험을 치르고 교문을 나선 수험생들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교회였다.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광장에 벌써부터 환하게 불을 밝힌 성탄 트리가 수험생들을 맞이했고, 양옆으로 마련된 푸드존엔 하루 종일 문제를 푸느라 지쳐있을 학생들을 위한 핫바와 닭꼬치, 소떡소떡 등이 준비돼 있었다. 광장을 가득 메운 학생들은 간식을 하나씩 입에 물고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삼삼오오 모여 웃음기를 띤 얼굴로 자유를 만끽했다.
이날 자리는 사랑의교회의 다음세대 건초더미 기도운동인 ‘더 라이트’와 학교기도불씨운동 ‘더 웨이브’를 비롯해 스탠드그라운드, 더드림, 엔젠, 인천검단 연합 등이 함께 마련한 ‘제3차 학교 & 캠퍼스 기도불씨운동’이었다. 수능 당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이어진 이날 집회에는 무려 7200여 명의 청소년·청년들이 참석해 예배당을 빼곡히 채웠다. 이중엔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도 상당수였다. 이들은 아이자야씩스티원과 제이어스가 인도하는 찬양에 함께 몸을 맡기고, 김상인 목사(움직이는교회)가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늦은 밤까지 자리를 지켰다. 3년째 수능 당일 집회를 이어오고 있는 이들은 “이 자리를 통해 수험생들이 세상의 가치관인 점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라고 하는 자기 정체성을 다시 깨닫고 회복해, 이후에 있을 모든 대입 과정에서도 하나님께 의탁하고 담대히 나아가기를 소망한다”라고 밝혔다.
이날 역시 수능을 마치자마자 교회로 향했던 이다애, 장하영 양(사랑의교회)은 들어서자마자 박수로 자신들을 반기는 고3·수험생부 선생님들의 모습에 울컥했다. 이 양은 “시험의 결과와 관계없이 지난 1년간, 길게는 초등학교 때부터 12년 동안 공부를 해온 것들이 수능이라는 한 번의 시험에 다 끝났다는 게 조금은 허무한 생각이 든다”라면서 “그 공허한 마음을 예배의 감격으로 채우기 위해 교회로 달려왔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가 있어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장 양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이끄신 덕분이었다. 수능 볼 때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오는 동안 모든 생각이나 손을 주관하신 주님께 감사해 예배하러 왔다”라면서 “오늘 하나님을 선택해 예배의 자리로 나아온 것처럼, 대학생이 돼서도 지금의 마음을 잃지 않고 순간마다 하나님을 선택할 것”이라고 다짐해 보였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주요 도시마다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을 위한 연합집회가 잇따랐다. 대전에서는 수능 당일 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 주최로 새로남체육관에서 수험생과 청소년들을 위한 찬양집회 ‘유스페스티벌’이 진행됐고, 대구도 같은 날 다음세대를 위한 연합집회 ‘RUN 2024’가 대구동신교회(문대원 목사)에서 열려 수험생들에게 비전을 심었다. 수능 후 첫 주말인 16일엔 부산과 광주에서 집회가 이어진다. 부산·울산·경남 지역 청년 네트워크 더원미니스트리는 수영로교회(이규현 목사)에서 아이자야식스티원과 함께하는 연합예배를 드린다. 부울경 지역 청년들을 일으키고 세우는 더원예배가 이번에는 특별히 곧 청년이 될 고3 청소년 및 청년 수험생들을 초청, 그들이 영적 성장과 하나님나라를 위한 도약의 시간을 갖길 기대하며 마련했다. 학원복음화인큐베이팅이 전국을 돌며 개최하는 연합집회 ‘웨이크업’은 광주동명교회(이상복 목사)에서 광주·전남 지역의 수험생들을 포함한 청소년들을 초대한다. 리바이츠(레위지파)가 예배를 인도한다.
신앙 교육, 마음 돌봄, 이단 예방 등 나서
이처럼 각 지역에서 수험생들을 위해, 그것도 수능을 마치자마자 예배의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위로와 격려의 이유도 있겠지만, 시험 이후 흔들리기 쉬운 신앙을 잘 붙잡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까닭도 있다. 앞서 인터뷰한 두 학생이 고백했듯, 수능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온 수험생들은 시험 이후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과 동시에 찾아오는 허무함에 삶의 목적과 방향성을 잃기 쉽다. 그동안 억누르고 참아온 시간에 더해 갑작스레 찾아온 자유는 그들을 방황과 일탈의 길로 몰고 가기도 한다. 물론 이 경우 신앙을 잃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수능 이후 수험생들이 마음과 신앙을 바로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매년 이맘때면 극단적 선택을 한 수험생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조성돈 대표는 “태어나서 20년이라는 시간을 수능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온 수험생들은 여기에 모든 걸 건 만큼, 만약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평생의 기대가 깨지는 듯한 큰 충격을 받는다”라며, 인생의 첫 큰 시련을 마주하고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좌절감을 맛보게 되는 이때, 가장 먼저는 자녀가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부모의 역할을 요청했다.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끝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주길 당부한 것. 조 대표는 “주위에서도 잘 된 학생들을 축하해 주는 것과 더불어 어려운 학생들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역설하며, 특히 결과에 따라 좌절하고 낙담한 학생들을 품을 수 있는 교회의 자세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분당우리교회는 수능 이후 고3 학생들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따로 운영하며, 고등부에서 대학부로 넘어가는 시기 이탈하는 청소년들이 많은 현실을 보완하기 위해 기도회와 졸업 여행 등 졸업 전 상급 부서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도 다수 진행하고 있다. 교육디렉터를 맡고 있는 허현 목사는 “대학에 들어가서 아이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다 보니까 다음세대를 더 집중해서 양육하고 잘 목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라며 “학생들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선명한 부르심과 분명한 뜻이 나타날 테니까 너무 이 시점에만 몰입되지 말고 여유를 갖고 당당하게 이 시간을 지나가자’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수능을 치른 학생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 책임감, 어른이 됐다는 흥분감 등 복합적인 심리 변화가 일어난다. 부모의 보호를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학생으로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한 학생들이 어른으로서 활동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이 시기 ‘일시적 자유’에 노출된 고3들을 이단들이 노린다. 특히 다시 한번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 학생들은 건강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 이단의 직접적인 표적이 된다. 구리이단상담소 상담사 김강림 목사는 “실제로 신천지 탈퇴 청년들을 조사해 보니 두 명 중 한 명은 수능 이후 3개월 사이에 포교 당한 경우였다”라며 “교회는 독립성이 강한 학생, 부모에게서 떨어져 자취하려는 학생 등 이성적 판단에 취약한 이들의 활동에 주목하고 주위를 살필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