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 기초해 사랑과 공의 균형 노력” 평가
제4차 로잔대회의 서울선언문 중 동성애자들에 대한 ‘무지·편견·차별·불의’를 언급한 부분이 한국교회에서 다소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동성애 반대 운동에 앞장서 온 길원평 석좌교수(한동대)가 “서울 선언의 대부분은 성경 말씀에 기초해서 올바른 내용이 기술되어 있으며, 사랑과 공의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였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24일 “로잔 대회의 서울 선언에 대한 부족한 제 의견”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물론 아쉬운 면이 있다. 그렇지만, 서울 선언이 모두 잘못된 것으로 보지 말고, 긍정적인 면은 칭찬하고, 아쉬운 면을 지적하면 좋겠다”며 “물론 앞으로 수정될 수 있다면,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정되기를 기대해 본다”고 했다.
또 논란이 됐던 부분이 “그러나 우리는 동성에게 끌리는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공동체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인식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우리의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의 부족을 회개한다”고 수정된 데 대해서도 “위 내용은 그동안 동성애 확산을 반대하여 온 교회들과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며, 교회 안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성애자들이 더 사랑하자는 내용이기에, 공의와 사랑이 균형되도록 언급한 내용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존의 내용에 비하면 너무 많이 좋게 바뀌었기에, 로잔 대회 안에서 올바른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분들에게 격려와 칭찬을 하고 싶다. 한국에서 로잔 대회를 함으로써,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옹호하는 악한 이 시대에 올바른 세계 선언이 발표되는 것 같아 너무 기쁘다”고 했다. 다음은 길 교수의 글 전문.
로잔 대회의 서울 선언에 대한 부족한 제 의견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의 섹슈얼리티
성 정체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56.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인간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명확하게 식별 가능한 신체적 특징과 남성과 여성이라는 관계적 특징을 가진 성적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다루고 있다. 개인의 ‘성'(sex)은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는 생물학적 특성을 언급하며, ‘젠더(gender, 성별)’는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연관성을 언급한다. 성경은 남성과 여성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보는 창조주를 대표한다는 사실을 확언한다(창 1:26-28; 2:22-23).
57. 우리는 섹슈얼리티(sexuality, 성적 지향성)에 대한 왜곡을 탄식한다. 우리는 개인이 우리의 창조성과 무관하게 젠더을 결정할 수 있다는 개념을 거부한다. 생물학적 성(sex)과 성별(gender)은 구별될 수 있지만, 분리할 수 없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인간 창조의 고유한 사실로서, 문화권에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할 때 표현하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성별 유동성(gender fluidity, 상황과 경험에 따라 성 정체성이나 성별 표현이 유동적이라는 주장)이라는 개념도 거부한다.
58.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태어날 때 성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오늘날에는 광범위하게 인터섹스[intersex individuals]로 지칭됨)은 중대한 심리적이며 사회적인 어려움에 처해 왔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소외와 고통을 경험하는 내시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현하고, 존엄성의 회복을 약속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들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은 오늘날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향해 긍휼과 존중으로 응답하도록 부름 받았다(사 56:4-5).
서울 선언의 ‘56번’은 하나님께서 남녀로 창조하였음을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57번’은 섹슈얼리티(sexuality, 성적 지향성)에 대한 왜곡을 반대하고 있다. 특히, 젠더가 결정할 수 있다는 개념을 거부한다고 하였고, 성별 유동성(gender fluidity, 상황과 경험에 따라 성 정체성이나 성별 표현이 유동적이라는 주장)이라는 개념도 거부한다고 하였다. 분명하게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반대하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58번’은 성이 명확하지 않은 인터섹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인터섹스는 LGBT와는 달리 생물학적인 결함을 가진 분이며, 본인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기에, 당연히 인터섹스에 대한 긍휼을 가져야 한다. 이 부분도 큰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없다. LGBT들이 인터섹스를 자기 편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인터섹스의 책임은 아니다. ‘성 정체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의 부분은 잘 만들어졌다고 평가하고 싶다.
결혼과 독신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59. 성경에서 결혼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결혼이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이며,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배타적인 결합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성경이 ‘한 몸’(one flesh)으로 언급하는 새로운 존재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설계에 따라, 결혼이 평생 서로 사랑과 나눔의 육체적이고 정서적인 결합에 헌신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독특하고 배타적인 언약 관계임을 확언한다(창 2:24; 마 19:4-6).
60. 더욱이, 성경은 언약적 결혼이 성관계의 유일한 합법적인 상황이라고 일관되게 가르친다. 결혼의 범위를 벗어난 성관계는 창조주의 설계와 의도를 위반하는 죄악이라고 선언한다.
61. 우리는 동성 파트너십을 성경적으로 유효한 결혼으로 정의하려는 교회 내 모든 시도를 애통해한다. 우리는 일부 기독교 교단과 지역 교회가 문화의 요구에 굴복하여 그러한 관계를 결혼으로 성별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슬퍼한다.
63. 결혼에 대한 성경적 비전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주의 명령을 이행하는 동시에 부부에게 동반자 관계와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개인적, 사회적 선으로 인식되는 성적 자유의 추구가 결혼 내 성관계의 출산적 측면(procreational aspect)을 경시하여 전 세계적으로 자녀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종종 급격한 낙태의 증가로 이어진 것에 대해 슬픔을 금할 수 없다(창 1:28; 2:18-25).
62, 64-66의 부분은 큰 문제가 없어서 생략한다.
서울 선언의 ‘59번’은 결혼은 남녀 결합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60번’은 결혼의 범위를 벗어난 성관계는 죄악이라고 선언한다. 또한, ‘61번’은 동성 파트너십을 성경적으로 유효한 결혼으로 정의하려는 교회 내 모든 시도를 반대하고 있다. 일부 기독교 교단과 지역 교회가 문화의 요구에 굴복하여 그러한 관계를 결혼으로 성별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슬퍼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선언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일부 교단에 의해 진행하고 있는 동성결혼을 명백하게 반대하고 있는 점으로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63번’은 성적 자유의 추구를 반대하며, 낙태의 증가를 반대하고 있기에, 서울 선언은 성윤리와 생명윤리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고 본다. ‘결혼과 독신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의 부분도 아주 잘 만들어졌다고 평가한다.
동성 성관계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67. 동성 간의 성적 친밀감은 인류 문명만큼이나 오래된 현상으로, 신·구약 성경은 이러한 관행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성경에서 동성 간 성행위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여섯 차례나 발견된다. 오늘날 사회와 교회에서 이 주제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성경에서 동성 간 성적 친밀감에 대한 모든 언급과 문맥상 그 의미를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창 19:1-3; 레 18:20; 20:13; 롬 1:24-27; 고전 6:9-11; 딤전 1:9-11).
· 구약 성경은 창세기 19:1-3에서 동성 간 성행위가 언급되며, 이는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의 삶이 하나님께서 심히 악하다고 선언하신 소돔의 문화와 교차하는 장면이다. 소돔의 악명은 여러 형태의 사회악에서 비롯되었으며, 모든 마을 사람들이 롯의 손님들을 강간하려 한 사건이 이 이야기에서 그 도시의 지독한 도덕적 상태를 보여주는 증거로 강조되었다(겔 16:49-50; 창 18:20-21; 19:1-13; 유 7).
· 신약 성경의 사도적 증언에서 동성 간 성행위는 그리스와 로마 문화를 배경으로 로마서 1:18-27, 고린도전서 6:9-11, 그리고 디모데전서 1:9-11에 언급되어 있다. 역사적 기록은 동성 간의 성관계가 이 시기에 잘 알려진 관행이었으며, 특히 사회 상류층에서 정상적인 관행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이 동성 간의 성관계를 음행과 간음 같은 성적인 죄의 범주에 포함하고 도둑질, 탐욕, 술 취함, 비방, 사기를 포함한 더 광범위한 죄 목록에 포함한 것은 놀랍다. 디모데전서 1:9-11에는 동성애 행위를 금지하는 목록에 부친 살해(patricide), 살인, 음행, 노예 거래, 그리고 위증을 포함한다. 이러한 행위를 하는 모든 사람을 범법자, 반역자, 불경건하고 죄가 많으며 무종교적인 사람이라고 부른다.
· 고린도전서 6:9에서 바울은 레위기 18:20과 20:13의 두 가지 언급에서 남성 간의 성관계를 설명하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이 본문들은 동성 간의 성관계가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표준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진술한다.
· 바울이 로마서 1:24-27에서 동성 간의 성관계를 언급할 때, 그는 하나님을 향한 인류의 반역이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부하게 되었는지를 표현하기 위해 그렇게 묘사한다. 인류가 도덕적으로 완전히 파산했다는 증거로 바울은 우상 숭배와 성적 부도덕의 만연한 관행을 언급한다. 성적 불순결과 관련하여 바울은 특히 여성 간의 성관계와 남성 간의 성관계를 정죄하는데, 이는 당시 세련된 문화로 여겨졌던 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관행이었다.
68. 동성 간의 성관계에 대한 성경의 모든 언급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행위를 성에 대한 자신의 의도를 위반하고 창조주의 선한 설계를 왜곡하는 것으로 간주하므로 그것이 죄악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무지로든 의식적으로든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한 자들도 고백하고 회개하며 그리스도를 신뢰하므로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음을 확신시켜 준다.
69. 우리는 교회 안팎에서 많은 사람이 동성 간의 매력을 경험하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유일하거나 지배적인 매력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기독교인은 유혹에 저항하고 욕망과 행동 모두에서 성적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성경의 주장은 동성애적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성애적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우리는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기독교인들이 무지와 편견으로 인해 많은 지역 교회에서 도전에 직면하며, 그 결과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차별과 불의를 겪어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실패를 회개하며,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몸 된 형제 자매들에게 끼친 해악을 애통해한다.
70. 우리는 기독교 지도자들과 지역 교회들이 공동체 안에서 동성애적 매력을 경험하는 교인들이 존재함을 인지하며, 목회적 돌봄과 건강한 사랑과 우정의 공동체를 발전시킴으로써 그들의 제자 훈련을 지원할 것을 촉구한다.[2]
서울 선언의 ‘67번’은 동성 간 성행위에 대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구약의 소돔 사건을 언급하였다. 그리고는, 동성 간 성행위는 사회 상류층에서 정상적인 관행이었음에도, 바울이 동성 간의 성관계를 음행과 간음 같은 성적인 죄의 범주에 포함하고 도둑질, 탐욕, 술 취함, 비방, 사기를 포함한 더 광범위한 죄 목록에 포함한 것은 놀랍다고 하였다. 위 문구가 논란을 일으키는데, 위 내용은 동성 간 성행위가 정상이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고, 그 당시에 동성 간 성행위를 정상적인 관행이라고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과감하게 죄의 목록에 포함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디모데전서에서도 동성애 행위를 부친 살해(patricide), 살인, 음행, 노예 거래, 위증과 같이 취급하고, 이러한 행위를 하는 모든 사람을 범법자, 반역자, 불경건하고 죄가 많으며 무종교적인 사람이라고 부른다. 위의 내용에서도, 성경 말씀이 동성 간 성행위를 분명하게 죄라고 보고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동성애 행위를 옹호하는 내용이 아니다. 고린도전서와 레위기의 말씀에 의해, 동성 간의 성관계가 하나님의 표준을 위반하는 죄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또한, 서울 선언은 로마서에서 바울은 특히 여성 간의 성관계와 남성 간의 성관계를 정죄하는데, 이는 당시 세련된 문화로 여겨졌던 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관행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위의 내용도 동성 간 성행위가 그 시대의 관행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관행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정죄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서울 선언은 동성 간의 성관계를 전혀 정당화하지 않으며, ‘67번’은 여러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분명하게 죄악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68번’은 동성 간의 성관계에 대한 성경의 모든 언급은 그것이 죄악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고 다시 한번 단언하고 있다. 서울 선언이 동성 간의 성관계를 옹호하거나, 죄가 아니라고 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동성애자들도 회개하면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언급을 덧붙인 이유는, 동성 간 성행위는 분명한 죄이지만, 동성애자도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음을 기술한 것이다. 서울 선언이 세심하게 공의와 사랑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였다고 보고 싶다.
‘69번’은 교회 안팎에서 동성애자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유혹에 저항하고 욕망과 행동 모두에서 성적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성경의 주장은 동성애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하였다. 즉, 동성애자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고 성적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기독교인들이 무지와 편견으로 인해 많은 지역 교회에서 도전에 직면하며, 그 결과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차별과 불의를 겪어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실패를 회개하며,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몸 된 형제 자매들에게 끼친 해악을 애통해한다.’라는 문구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일부 지역 교회 또는 기독교 공동체가 동성애자들에게 잘못했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 지역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가 있음에도, 많은 지역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가 잘못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 부분은 정말 아쉬운 부분이며, 먼저 지역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가 동성애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한 점을 높이 평가한 후에, 그래도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렇게 하였다면, 동성애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한 교회들에게 섭섭함이 적었을 것이다.
‘70번’은 기독교 지도자들과 지역 교회들이 공동체 안에서 동성애자들이 존재함을 인지하며, 목회적 돌봄과 건강한 사랑과 우정의 공동체를 발전시킴으로써 그들의 제자 훈련을 지원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내용도, 서울 선언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고, 그들을 제자 훈련을 해서 탈동성애 하도록 도와주라는 것으로 보고 싶다. 이 부분은 확실하게 잘못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서울 선언의 대부분 내용은 성경 말씀에 기초해서 올바른 내용이 기술되어 있으며, 사랑과 공의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였다고 본다. 물론 아쉬운 면이 있다. 그렇지만, 서울 선언이 모두 잘못된 것으로 보지 말고, 긍정적인 면은 칭찬하고, 아쉬운 면을 지적하면 좋겠다. 물론 앞으로 수정될 수 있다면,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정되기를 기대해 본다. 수정 내용에 대해 제안하면, “우리는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대다수 교회는 사랑과 공의로 균형이 있게 행하였지만, 무지와 편견으로 인해 일부 지역 교회에서 도전에 직면하며, 그 결과 일부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차별과 불의를 겪어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일부 교회의 실패를 회개하며,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몸 된 형제 자매들에게 끼친 해악을 애통해한다.”라고 하면 조금 나아질 것 같다. 그래도, 전 세계의 ‘소위’ 선진국들과 일부 교단들에 의해 동성 간 성행위와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이만한 선언문이 나온 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순수한 믿음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에서 로잔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얻은 성과라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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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히 서울 선언의 수정된 버전을 소개합니다.
69. We recognise that a number of people, both within and outside the church, experience same-sex attraction, and that for some, this is the only or dominant attraction. The biblical insistence that Christians must resist temptation and so maintain sexual holiness, in both desire and behaviour, applies equally to heterosexually attracted individuals as it does to same-sex attracted persons. We acknowledge, however, that Christians who are same-sex attracted face challenges even in Christian communities. We repent of our lack of love towards our brothers and sisters in the body of Christ.
69. 우리는 교회 안팎에서 많은 사람이 동성에게 끌림을 경험하며,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또는 지배적인 끌림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기독교인은 유혹에 저항하고 욕망과 행위 모두에서 성적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성경의 주장은 동성에게 끌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성에 끌리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우리는 동성에게 끌리는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공동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인식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우리의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의 부족을 회개한다.
70. We urge Christian leaders and local churches to recognise within our communities the presence of believers who experience same-sex attraction, and to support them in their discipleship by pastoral care and by developing healthy communities of love and friendship.[2]
70. 우리는 기독교 지도자들과 지역 교회들이 우리 공동체 안에 동성에게 끌림을 경험하는 교인들이 존재함을 인지하며, 목회적 돌봄과 건강한 사랑과 우정의 공동체를 발전시킴으로써 제자 훈련을 지원할 것을 촉구한다.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 다음과 같이 대폭 수정되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동성에게 끌리는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공동체에서도(영어 번역 참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인식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우리의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의 부족을 회개한다.” 위 내용은 그동안 동성애 확산을 반대하여 온 교회들과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며, 교회 안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성애자들이 더 사랑하자는 내용이기에, 공의와 사랑이 균형되도록 언급한 내용이라고 본다. 기존의 내용에 비하면 너무 많이 좋게 바뀌었기에, 로잔 대회 안에서 올바른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분들에게 격려와 칭찬을 하고 싶다. 한국에서 로잔 대회를 함으로써,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옹호하는 악한 이 시대에 올바른 세계 선언이 발표되는 것 같아 너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