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때려죽여’…中 홍위병 상징 쑹빈빈, 미국서 사망|동아일보



홍위병의 아이콘이던 쑹빈빈(왼쪽 사진 오른쪽)이 문화대혁명 시절 마오쩌둥 주석을 만나 그의 팔에 홍위병의 상징인 붉은 완장을 채워 주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쑹빈빈의 생전 모습. 사진 출처 신징보

홍위병의 아이콘이던 쑹빈빈(왼쪽 사진 오른쪽)이 문화대혁명 시절 마오쩌둥 주석을 만나 그의 팔에 홍위병의 상징인 붉은 완장을 채워 주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쑹빈빈의 생전 모습. 사진 출처 신징보

중국 문화대혁명(1966~1976년) 당시 100만 홍위병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쑹빈빈(宋彬彬·77)이 16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쑹빈빈은 신중국 혁명 원로인 쑹런충(宋任窮) 상장(上將·중국군 대장)의 딸이었다.
그는 19세에 베이징사범대부속여중 학생 신분으로 ‘교사를 공격하자’는 내용의 대자보를 처음으로 퍼뜨렸다. 이후 쑹빈빈은 1966년 8월 18일 열린 접견 행사에서 홍위병 대표로 톈안먼(天安門) 성루에 올라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접견을 받았다.

이 때 마오 주석이 쑹빈빈에게 “이름 ‘빈’이 논어 속 문질빈빈(文質彬彬)의 빈인가“라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마오 주석이 “무력이 필요하지 않나(要武嘛)”라고 말했고, 이 때부터 쑹빈빈은 이름을 쑹야오우(宋要武)로 바꿨다. 쑹빈빈은 이 행사 직후 쑹야오우 이름으로 언론에 “위대한 뜻의 이름을 얻었다”며 “우리에게는 폭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을 싣기도 했다.

그렇게 쑹빈빈은 전국 무장 투쟁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문혁 초기인 1966년 8월 5일,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쑹빈빈은 모교 교사들을 집단 구타했고 볜중윈(卞仲耘) 교감 등을 숨지게 했다. 세계적으로 흥행한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三體)’ 초반에는 한 여자 홍위병이 교사를 구타해 사망하게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본 중국인은 대부분 쑹빈빈을 떠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쑹빈빈도 문혁으로 수난을 당하며 중국을 떠나게 됐다. 1967년 8월 동북국 제1서기였던 쑹빈빈의 부친이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박해를 받았던 것. 쑹빈빈과 그의 모친도 이에 연루됐다. 그렇게 1980년 쑹빈빈은 유학을 이유로 미국으로 향했다. 이름도 쑹옌(宋巖)으로 바꿨다.

그러던 지난 2014년 1월, 쑹빈빈은 중국 베이징사범대부속여중을 방문해 80, 90대 은사들 앞에서 약 1500자 분량의 ‘나의 사죄와 감사’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당시 그는 “40여 년 동안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아는 ‘쑹빈빈’과 문혁 폭력의 상징이 된 ‘쑹야오우’라는 2개의 내가 있었다”며 학교 질서를 앞장서 파괴하고 선생님들을 괴롭혔다”고 잘못을 빌었다. 하지만 쑹빈빈은 유가족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

인민일보 등 관영 매체도 그의 사망 소식을 싣지 않고 있다. 지난 17일 당 역사 전문 매체인 홍선(紅船)만이 소셜미디어(SNS)에 쑹빈빈의 부고를 실었다.



이예지 동아닷컴 기자 lee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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