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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목사(전 총신대·대신대 총장)
정성구 목사(전 총신대·대신대 총장)


나는 목사로서 56년 동안 한 번도 총회총대가 되어본 일이 없다. 그렇지만 1977년부터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주강사로 24차례 섰으며, 기타 모임과 총회장 이취임식에도 여러 번 초대되고 1970년대부터 여러 총회장들과 총무들, 그리고 임원들을 가장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나는 62년 동안 총신에서 배우고 가르치며 학장, 총장, 대학원장으로 총회의 흐름을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보게 됐다.


그동안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는 풍파도 많았고, 환란도 많았다. 한국 장로교회 장자교단으로 면모를 갖추고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파수하려는 몸부림이 있었다. 이제 우리 교단은 명실공히 세계 장로교회, 곧 개혁교회의 견인차로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제109회 총회에 임하는 총대 목사들과 장로들에게 축하를 드리면서, 1901년에 칼빈주의 목회자이자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이끌었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박사가 전국의 목사, 장로들 앞에서 강연했던 ‘세 마리 작은 여우들’(Drie kleine Vossen)이라는 메시지를 생각했다.


첫째, ‘지성주의’라는 여우이다. 19세기 말 유럽을 휘몰아친 사상은 ‘과학주의’ ‘현대주의’ ‘사회주의’ ‘성경 비평주의’였다. 이런 사조들 가운데 설교자들도 덩달아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기보다 지성주의자들이 됐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문서와 같은 존재로 하락시키고 당시에 유행하고 있던 학문적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여겼다. 카이퍼 박사는 이러한 비복음적 운동을 ‘여우’들이라고 했다. 여우는 속임수의 대명사이다. 카이퍼 박사는 흔들리는 개혁교회의 강단에 쐐기를 박고 목사, 장로들에게 ‘본질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둘째, 카이퍼 박사는 ‘신비주의’를 또 다른 여우라고 지적했다. 칼빈은 “개혁교회의 핵심은 ‘말씀’과 ‘성령’이 더불어 역사할 때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19세기 초에도 그랬고 오늘날 한국의 신비주의도 성경의 진리에는 관심이 없다. 여기저기서 ‘직통 계시를 받았다’ ‘들었다’ ‘보았다’는 식의 감성을 주도하는 운동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또 다른 ‘작은 여우’이다. 신비주의에는 기준이 없다. 저마다 주관적으로 자기가 느낀 것이 옳다고 외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명확한 잣대가 있다. 그것은 성경 말씀이다. 우리가 논의하는 바는 제 소견에 옳은대로 외칠 것이 아니라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가가 돼야 한다. 그런 자세를 견지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신비주의자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셋째, 카이퍼 박사는 ‘실용주의’를 작은 여우로 경계했다. 실용주의는 미국에서 건너왔다. 오늘날 이른바 번영주의 신학과 신앙이 한국교회 안에 들어와 잠식하고 있다. 교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으로 오로지 숫자에만 집착하고 있다. 교회 성장학파는 이것을 ‘거룩한 실용주의’로 칭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자연스럽게 상업적 마케팅, 연예인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마케팅이 등장하고 숫자 늘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다보니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바울의 메시지가 없어졌다. 교인들이 말씀에서 떠나있는데도, 십자가의 길을 외면해도 위기를 느끼지 않는다.


언뜻 보면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말하는 지표들이 적지 않고 모두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위기라는 것은 예배 출석 숫자에 깊이 연연하는 듯하다. 예배에 출석하는 규모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머무를 뿐이라면 바른 신학과 신앙을 도외시하고 실용주의에 빠진 결과이다. 우리가 느껴야 할 위기는 신학의 회복이요, 참다운 부흥에서 멀어져 있다는 현실이다.


총대들에게 120년 전 카이퍼 목사가 총회 때 했던 연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지성주의 신비주의 실용주의적인 생각이 논의와 결의의 핵심이 된다면 단견일 뿐이다. 총회의 부흥과 변화를 위해서 이해관계를 떠나 신앙의 본질과 말씀, 그리고 원칙에 부합하고자 기도하고 토론하고 결의해 주기를 바란다. 목사와 장로 총대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하며, 말 그대로 성(聖) 총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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