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자녀(MK) 주거 문제 관심과 지원 필요하다 < 선교 < 기사본문



러시아에서 살다 온 A군은 방학이 두렵다. 방학에는 학교 기숙사를 비워줘야 하기 때문. 친척집에 갈 상황이 안돼, 지난 방학 때는 친구들 집을 돌아다니며 신세를 졌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한 달가량 지나니 눈치가 보여 집을 나와야 했다. 옷가지가 담긴 캐리어를 끌고 찜질방이나 공원에서 밤을 지샐 때면, “서울에 이렇게 집이 많은데 내가 누울 곳 하나가 없나” 하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와 한국선교연구원(KRIM) 발표에 따르면 2023년말 기준으로 한국인 장기선교사 자녀는 2만258명에 이른다. 이 중 대학생 이상 성인은 약 60%에 달하고, 대학 진학 시 국내 대학 진학률은 59.4%로 나타났다. 통계조사에 빠진 수치를 감안하면, 국내에는 대학생 이상 성인이 대략 1만명 가량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VMK 대표간사 오준혁 선교사(가장 오른쪽)가 학사관 대학생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VMK는 저렴한 주거비 외에도 후원을 받아 학사관에 정기적으로 쌀과 반찬을 공급하고, 매달 10만원씩 지원금도 지급하고 있다.
VMK 대표간사 오준혁 선교사(가장 오른쪽)가 학사관 대학생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VMK는 저렴한 주거비 외에도 후원을 받아 학사관에 정기적으로 쌀과 반찬을 공급하고, 매달 10만원씩 지원금도 지급하고 있다.


선교사 자녀(MK)를 차세대 선교 주자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데 비해, 정작 MK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부족한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부모를 따라 어린 시절을 선교지에서 보낸 MK들이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을 때 경험하는 고민은 크게 세 가지. ‘주거 문제’와 ‘생활비 마련’, ‘문화 적응’이다. 그중에서 당장 시급한 것은 주거 문제. 대학에 진학할 경우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지만, 그마저도 입소가 제한적이다. 어렵게 기숙사에 들어가더라도 방학 때면 또다시 고민에 빠진다.


청년·대학생MK들의 모임인 VMK(Vision MK)를 섬기고 있는 오준혁 선교사(GMS)는 “정 갈 곳이 없을 때 보통 조부모집이나 친척집을 가는데, 오랫동안 선교지에서 지내느라 교류가 적은 상황에서 친척집에서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자취방을 구하기도 어렵다. 서울 신림동에 고시원 크기만한 방 하나만 하더라도,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가 30만원 가량 한다”고 현황을 설명했다.


교단선교부나 선교단체, 교회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들이 있긴 하지만, MK들과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가 현직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따로 사는 MK들에게는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대학생MK들에게 그나마 숨통을 터주는 것이 지역 교회들이 운영하는 학사관이다. 그러나 학사관 역시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제한적이고, 자취방에 비해 생활비가 줄어들긴 하나 부담은 여전하다. 교회 학사관 가운데는 새벽기도회 참여부터 시작해, 토요일과 주일에 온전히 교회 봉사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MK들 가운데는 교회 학사관 입소를 꺼려하는 경우도 있다.


주거 문제는 대학을 졸업한 청년MK들에게는 더 심각하다. 대학 기숙사나 교회 학사관은 기본적으로 대학생들을 위한 거처로, 졸업생들은 더 이상 머물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선교사자녀교육개발원(KOMKED) 강평강 본부장은 “대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방을 구할 보증금도 없고, LH 임대주택 신청 등 부동산 관련 정보도 잘 모르는 경우들이 많다.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려 하다가도 주거가 불안하다보니 포기하고, 다시 선교지로 나가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주거 불안은 한국에서의 문화 적응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은 물론, MK 정체성 고민을 더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오준혁 선교사는 “MK로서 정체성이 뚜렷한 친구들은 한국에 와서 고생하는 것을 크게 어렵지 않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못한 친구들의 경우에는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선교지에서도 어렵고, 한국에 와서도 어렵고…’ 하며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고충을 설명했다. 


대학생과 청년MK들이 겪는 이런 고충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VMK는 서울시 내에 세 군데 학사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KOMKED는 청년MK들을 위한 원룸인 콤콤하우스를 수도권 내에 42군데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2016년 시작된 VMK 학사관은 한 곳에 각 5명씩 살고 있으며, 공과금과 관리금 등을 다 포함해 월 15만원의 생활비만 부담하도록 했다. 2021년 시작된 콤콤하우스는 1인 1실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침대와 가구, 냉장고, 세탁기 등이 구비돼 청년MK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VMK 학사관과 콤콤하우스의 공통된 목적은 MK들이 안정된 주거환경에서 신앙을 잃지 않고,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두 곳 모두 정기모임을 통해 서로 신앙을 격려하고, 예배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강평강 본부장은 “매주 화요일 밤에 전체 입주자들이 ‘프레인 워십’(PRAIN Worship) 모임을 통해 예배하고, 서로의 삶을 나눈다. 요즘같이 개인주의가 심한 사회에서 건강한 신앙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KWMA 강대흥 사무총장은 “청년MK들에게는 주거할 공간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앙적 케어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 건강한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주일에 꼭 교회에 나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MK들에게도 “주일에 교회에 나가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기독교 정체성을 가지고 교회 밖 한국인 친구들과도 어울리도록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대학생과 청년MK들의 주거 문제 해소를 위해서는 선교사를 파송한 교단선교부와 선교단체, 지역 교회들의 관심과 지원이 요청된다. 교단선교부와 선교단체는 MK 전용 주거시설을 확충하는 것으로, 지역 교회의 경우 교회에 출석하는 청년·대학생MK 현황을 파악해, 그들의 주거 고민을 청취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관심을 표할 수 있다. 오준혁 선교사는 “선교사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도 부족한 상황에서 MK들에게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선교가 한국교회의 사명이며, MK들이 다음세대 선교 주자임을 기억한다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그 관심 안에는 의식주 문제가 기본이다”며 “선교의 원석과도 같은 MK들이 한 손에 복음과 한 손에 전문성을 들고 선교지로 흩어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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