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는 교과서에서 배웠기에 모르기 힘든 인물이다. 그러나 명성에 비해 모국어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슈바이처는 프랑스와 독일어를 똑같이 자유롭게 구사했다. 어려서 부모님께 불어로 편지를 썼지만 강의와 설교는 모국어인 독일어로 했다. 파이프 오르간 스승 샤를 마리 비도르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슈바이처는 불어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905)를 썼다.
3년 뒤에는 초판을 번역하지 않고 독일어로 새로 쓰면서 445쪽을 844쪽 분량으로 확장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었고 지금도 독일에서 쇄를 거듭하고 있다. 체코와 폴란드는 국가가 나서서 출간을 지원할 만큼 이 책의 가치와 인기는 조금도 빛이 바래지 않았다. 니콜라우스 포르켈이 1802년에 쓴 최초의 바흐 전기 이후 이제까지 출간된 책 중에 슈바이처가 최고다. 누구든 토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전문 음악학자가 아닌 자기의 시도가 무모했다고 썼다. 그의 목적은 바흐와 그 시대에 관한 새로운 역사 자료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음악가들에게 바흐의 모든 작품을 해설하고 실제 연주에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그 일만으로도 너무 어렵다는 걸 알았기에 학문의 본고장 독일이 아니라 “바흐의 예술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를 위해” 이 책을 썼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슈바이처는 소박하게 프랑스 음악 문헌의 빈틈을 메우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몸을 낮췄지만 독일 음악계도 그의 공헌을 인정했다.
슈바이처는 21살 때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이 책이 스테디셀러였기에 인세와 강연, 연주, 저술 등에서 거둔 수익으로 슈바이처는 봉사와 헌신의 삶을 계속할 수 있었다. 슈바이처 덕분에 바흐의 가치와 그 음악이 주는 위로를 세계인들이 경험했다. 30살까지는 자기 학문과 예술에, 그 이후 30년은 이웃을 위해 봉사의 삶을 살겠다던 슈바이처를 보다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음악도만 아니라 바흐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값진 선물이다. 아프리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음악으로 위로했던 슈바이처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특별히 목회자에게 추천한다. ‘벽돌 부피의 중압감에 쫄지 말고’ 언제든 필요한 부분을 꺼내 읽으시라. 그런 목적으로 슈바이처가 우리에게 건넨 책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