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순교한 원창권 목사를 기리다 < 교단일반 < 교단 < 기사본문



6·25 당시 순교자 원창권 목사의 기념비가 건립됐다.


영광대교회(김용대 목사)는 제9대 담임목사였던 고 원창권 목사의 순교기념비를 영광군 불갑면 소재 교회묘역인 부활의동산에 건립하고 5월 5일 제막식을 가졌다.


원창권 목사는 1897년 나주 남평 출신으로 광주 숭일학교 재학 시절 광주3·1운동에 앞장섰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이후 미국남장로교 선교사인 요한 탈마지(한국명 타마자)의 조사로 사역하다, 담양 순담성경학교에서 수학하며 1939년 목사가 되었다.


영광대교회 부활의동산에 건립된 원창권 목사와 일가의 순교기념비.
영광대교회 부활의동산에 건립된 원창권 목사와 일가의 순교기념비.


이후 완도 해남 진도 장흥 등에서 순회목사로 활동하다 1946년 영광읍교회(현 영광대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해 시무했다. 이후 염산교회로 임지를 옮겨 사역하던 중, 전남노회 파송을 받아 포천교회 백수교회 등을 순회하는 전도목사로 활동하다가 6·25 전쟁을 맞았다.


당시 인민군과 좌익들에 의해 전남 영광 일대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학살되던 와중에 원창연 목사도 1950년 10월 20일 영광군 묘량면 연암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원 목사와 함께 당시 임신 7개월이던 아내 조이성 사모와 3남 4녀의 자녀가 함께 순교의 길을 걷기도 했다. 군복무 중이던 고인의 장남과 이미 결혼으로 출가했던 두 딸이 살아남아 유족이 되었다.


원 목사와 가족들 시신은 당초 맏사위 허현 장로의 담양군 소재 가족묘지에 안장되었다가, 최근 영광대교회 부활의동산으로 이장한 바 있다. 6·25 발발 무렵 원 목사의 가족들은 영광대교회에 출석 중이었으며, 훗날 제대한 장남 원효섭씨도 영광대교회에 출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순교기념비 제막식에는 영광대교회 교우들과 순교자 유가족 그리고 전라노회와 광신대학교 관계자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전라노회장 고상석 목사는 ‘순교자’라는 제목으로 “한 알의 밀알이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원리”라면서 “순교자 원창권 목사님이 남긴 밀알의 신앙을 본받아 우리 삶을 주님과 복음을 위해 바치자”고 설교했다.


제막식 후에는 영광대교회로 자리를 옮겨 감사예배가 진행되기도 했다. 감사예배에서 광신대학교 김호욱 교수는 ‘영광대교회와 원창권 목사’라는 제목을 가지고 고인의 생애와 순교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순교자의 신앙을 본받고, 우리 신앙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자”고 강조했다.


영광대교회 김정중 원로목사, 광신대학교 김경윤 총장, 전주대학교 차종순 이사장, 총회순교자기념사업부장 하정민 목사 등도 축사를 통해 원창권 목사 일가의 순교행적을 기리고, 영광대교회의 수고를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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