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이틀전인 11일 만나 연기 요청
법무부, 무시하고 다음날 개별통보
이원석 검찰총장이 13일 단행된 대규모 검찰 인사 발표 이틀 전 박성재 법무부 장관을 만나 “인사 시기를 늦춰 달라”는 뜻을 밝혔지만 묵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 총장은 법무부 인사 발표 이틀 전인 11일 박 장관을 만나 검찰 인사를 협의하는 자리에서 “주요 수사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만큼 인사 시기를 미뤄 달라”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본인이 2일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전담수사팀 구성과 ‘신속·엄정 수사’를 지시한 지 9일밖에 안 된 만큼, 서울중앙지검 지휘부 등에 대한 인사 시점을 늦춰 달라는 취지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 총장의 의견을 묵살한 채 12일 일부 검사장 및 고검장들에게 전화를 돌려 사실상 사직하라는 뜻을 통보한 뒤 13일 검찰 고위직 인사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 총장은 1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찰 인사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이 총장은 사전에 인사를 조율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5초간 뜸을 들이다 “어제 단행된 검사장 인사는”이라고 했다. 이후 다시 7초간 침묵하더니 “더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답했다. 또 ‘인사 규모와 시점에 대해 예상 못 했나’라는 질문에는 “인사에 대해 더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총장 말 한마디에 준비된 인사를 안 할 수 있냐”며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 인사 협의를 거쳤고, 주요 대상자들이 승진하는 등 정상적으로 단행된 인사”라고 밝혔다.
이원석, 金여사 수사 ‘직진’ 시사… 이창수 ‘대면조사 제동’ 주목
檢 인사연기 요청 묵살 당해… 李총장 “소명 다할것” 사퇴 선그어
수사팀도 이달중 출석 통보 방침
법무부, 檢간부 후속 인사도 속도
“金여사 수사팀 부장검사도 교체땐… 李총장 사실상 사퇴하라는 메시지”
이 총장이 이처럼 불만을 드러낸 것은 검찰 고위직 39명을 교체하는 대규모 인사에서 법무부가 자신과 협의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사 시점과 내용 모두 자신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실제 법무부는 이번 인사를 전광석화처럼 진행했다. 11일 박 장관이 이 총장과 만났고, 일요일인 12일 오후 법무부는 일부 고위직들에게 사실상 사표를 내라는 취지의 전화를 돌렸다. 이어 13일 오전엔 사법연수원 25∼28기 고검장·검사장 7명이 줄사표를 낸 사실이 알려졌고, 13일 오후 이 총장이 지방 일정을 소화하는 사이 법무부는 인사안을 발표했다. 이 총장이 ‘충분한 협의 시간’이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사가 이처럼 속전속결로 진행됐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 차장·부장검사 인사도 속전속결
특히 법무부는 차장·부장검사(고검 검사) 인사도 속전속결로 진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검찰국은 14일 검찰 내부망에 고검 검사급 공모직과 파견 검사를 17일까지 공모한다는 글을 올렸다. 또 차장검사 승진 대상인 사법연수원 34기에게 이날 오후 인사검증동의서를 발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검찰 고위직 인사 발표에 이어 곧장 후속 인사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통상 공모 1, 2주 후에 인사가 이뤄졌던 점을 고려할 때 이달 내 차장·부장검사 인사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법조계에선 후속 인사에서 디올백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김승호 형사1부장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최재훈 반부패수사2부장 등 주요 부장검사까지 교체된다면 이 총장의 거취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 지휘부가 모두 교체된 상황에서 실제 수사를 맡고 있는 부장검사까지 교체하는 것은 이 총장에게 사실상 사퇴하라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이날 출근길에 차장·부장검사 등 후속 인사에 대해선 “제가 알 수 없는 문제”라고만 답했다.
다만 검찰 내부에선 김 부장검사와 최 부장검사가 유임되고, 기존 수사 인력들도 변동이 없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수사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면 부장검사와 수사 검사를 모두 바꿔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 이원석-이창수 정면충돌 가능성도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이어받을 김 여사 수사 방향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 지검장이 ‘친윤(친윤석열 검사)’으로 분류되는 데다 지휘부가 전부 교체된 만큼, 김 여사 대면조사 방침이 백지화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단 이 총장은 14일 취재진이 ‘김 여사 수사 방침에 향후 제동이 걸린 것 아니냐’고 묻자 “어느 검사장이 오더라도 수사팀과 뜻을 모아서 일체의 다른 고려 없이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원칙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저는 우리 검사들을, 수사팀을 믿는다”며 “인사는 인사이고, 수사는 수사”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검찰총장으로서 주어진 소명과 책무를 다하겠다”며 사퇴할 뜻이 없음도 분명히 했다. 이 총장의 이런 발언은 김 여사에 대한 대면조사 방침은 유지돼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도 “인사 시계와 수사 일정은 별개”라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 인사와 수사 진행은 상관관계가 없는 만큼 기존 방침대로 수사를 계속 진행하겠다는 기류가 강하다고 한다. 검찰은 이달 중 김 여사에게 디올백 관련 출석을 통보하고, 다음 달 조사가 이뤄지면 도이치모터스 사건도 함께 조사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지검장이 출석 조사가 필요 없다며 이 계획을 뒤집을 경우 이 총장과 이 지검장이 정면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디올백 사건의 경우 이 총장에게 수사 지휘권이 있지만,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문재인 정부 당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면서 서울중앙지검장이 지휘권을 갖고 있다.
이 지검장이 전주지검에서 지휘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 전 사위의 타이이스타젯 특혜 채용 의혹 수사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