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대규모 수로 발판 삼아… 인구 100만 명의 대도시로 성장
‘물길’ 없어지자 허무하게 무너져… 미국, 대규모 수입 통해 달러 유출
기축통화 유지 위해 무역적자 감내… ‘돈길’ 관리해 경제적 안정 찾아야
퐁뒤가르 수도교는 프랑스 소도시 님에 있는 고대 로마시대 다리입니다. 총 길이 270m, 높이 49m인데 3개 층의 아치로 지어졌습니다. 1층은 자동차도 다닐 정도로 넓지만 다리의 주목적은 3층에 있습니다. 3층에는 물이 지나가는 길이 있는데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설계됐습니다.
수도교의 경우 다리의 시작 부분은 높고 끝부분이 낮아야 물이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경사가 너무 가파르면 물을 멀리 보낼 수 없고 다리의 내구성에도 문제가 생기기 쉽습니다. 반대로 경사가 너무 완만하면 물은 흐르지 않고 고여 썩게 됩니다. 이 다리 양쪽 끝의 고도차를 측정해 보면 차이가 1.3cm에 불과하다니 그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원지에서 님의 저수장까지 오로지 중력의 원리만으로 물을 옮기는 수도의 길이가 50km에 달합니다. 높이 차이는 17m로 평균 경사도는 0.034%입니다. 일부 구간은 경사도를 0.007%까지 낮췄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 도시에는 같은 원리로 운영되던 수도가 11개가 있었고 그중 긴 것은 91km에 이릅니다. 이 중 비르고 수도는 기원전 19년경 당시 통치자 아그리파에 의해 건설됐는데 오늘날까지 로마 도심에 계속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로마 트레비 분수가 이 물로 운영됩니다.
이쯤에서 오늘의 주제인 경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로마의 수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은 중력 때문입니다. 물을 돈이라고 보면 중력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자, 즉 금리입니다. 다만 물은 고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돈은 이자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릅니다.
돈에 대한 수요가 많지만 공급이 적은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금리가 오릅니다. 금리가 높아지면 조금이라도 많은 이자를 받기 위해 돈이 몰리게 됩니다. 그렇게 돈이 모이고 공급이 늘면 다시 금리가 낮아집니다. 이런 원리로 돈이 풍부한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르게 되는 걸 자본 유출 또는 유입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물이 흐르려면 ‘물길’이 있어야 하듯 돈도 ‘길’이 있어야 흐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가는 돈이 흐르는 길을 통제합니다. 나라마다 통화가 다르기 때문에 외환 시장에서 환율에 따른 환전 절차를 거쳐야 국가 간에 돈이 오갈 수 있습니다. 때로는 불편해 보일지 모르지만 각국의 통화 제도는 일종의 방파제이자 안전망이면서 경제 주권의 관문 역할을 합니다. 한 나라의 경제 위기가 다른 나라로 파급되는 것을 완화해 주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미국은 대규모 수도를 보유한 고대 로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수요가 많기 때문에 전 세계의 돈이 모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달러가 기축통화로 널리 사용되기 위해선 미국 밖으로 많이 나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많이 나올까요? 미국이 수출을 많이 해 돈을 벌어들이기보다 수입을 많이 해 다른 나라의 상품들을 많이 소비해 주면 됩니다. 이는 기축통화국의 특권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왕관의 무게에 비유되는 책무이기도 합니다. 결국 미국은 기축통화 보유국으로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감내해 온 것입니다.
고대 로마는 대수로를 발판으로 인구 100만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로 성장했고, 3000명이 동시에 목욕할 수 있는 대중목욕탕과 가상의 해상 전투까지 구현할 수 있는 콜로세움을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물의 도시’라는 명성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번영의 견인차였던 대수로가 게르만족에 의해 파괴되면서 로마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지게 됩니다. 대수로가 아킬레스건이었던 겁니다.
미국 통화 당국이 이 같은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고 경제적 안정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지 지금도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축 통화 보유가 마냥 좋아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그 자리에 오르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도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철욱 광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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