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출한 ‘2000명 근거’, 보도자료·성명서가 3분의 2였다|동아일보


이달 3일 휴진 단체행동에 나선 의사들이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의대 증원 정책 철회를 촉구하는 피켓시위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달 3일 휴진 단체행동에 나선 의사들이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의대 증원 정책 철회를 촉구하는 피켓시위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10일 법원에 제출한 의대 2000명 증원 및 배정 관련 자료 3건 중 2건이 보도자료나 성명서, 언론 기사 등 기존에 공개된 자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단체에선 “2000명이란 증원 규모가 결정된 과학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며 이번 주 예정된 의대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에서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재판부가 요청한 자료를 충실히 제출했다”며 기각을 기대하고 있다.

● 정부 “내겠다”던 배정위 명단 안 내

정부는 10일 집행정지 항고심을 심리 중인 서울고법에 총 55건의 자료를 제출했다. 이 중 37건(67.3%)은 이미 공개된 자료였다. 종류별로 보면 보건복지부의 의대 증원 보도자료를 포함해 보도자료·보도참고자료가 14건으로 가장 많았다. 의대 증원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의 성명서 등 성명·브리핑이 9건으로 뒤를 이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 쓰러져 사망한 간호사를 다룬 기사를 포함해 기사 6건도 제출됐다.

의대 증원 및 배정을 논의한 4개 회의체 관련 자료는 5건 제출됐는데 회의록이 제출된 건 법적으로 작성 의무가 있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록 뿐이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10일 브리핑에서 “전문위 회의록도 제출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제출된 건 ‘전문위 회의 결과’ 문서였다.

대학별 정원 배정을 논의한 의대 학생 정원 배정위원회(배정위)와 관련해서도 의사단체 등에서 요구한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다. 박 차관은 10일 브리핑에서 “배정위 명단 실명공개는 안 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도 “익명 처리를 하되 의대 교수인지 부처 공무원인지 등은 알 수 있도록 표기해 제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제출된 ‘2025학년도 의대 학생 정원·모집인원 배정 결과’와 ‘정원배정 및 이후 조치 관련 참고자료’를 열람한 의사단체 관계자는 “배정위원 명단도 없고 구체적인 회의 내용도 없었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자 교육부는 “위원들 개인정보 사항은 비공개한다는 기존 입장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달 3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의사들이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환자. 뉴시스

이달 3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의사들이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환자. 뉴시스

● 의사단체 “과학적 근거 없는 재탕 자료 대부분”

정부는 2000명 증원의 근거로 기존에 알려진 보고서 3개 외에 보건의료인력 및 의사 수 수급 추계 자료, 통계청 고령자 통계 등을 정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정부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의사단체 관계자는 “2000명의 과학적 근거가 될 만한 내용은 없었다. 또 대부분은 정부나 시민단체가 기존에 발표한 자료”라고 평가절하했다.

정부 제출 자료를 열람한 의사단체 관계자는 “의대별 정원 배분을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고는 했는데 가서 진행한 실태조사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어떤 의대는 현장조사에서 교육과정과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고 했는데 10명도 안 되는 인원이 배정됐고, 어떤 의대는 총장 면담 위주로 하고 70, 80명이 배정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교육여건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주먹구구식으로 배정이 이뤄졌다는 의미다. 김창수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도 “각종 회의체는 이미 정해진 정책에 동의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의교협과 대한의학회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2000명 증원 과정을 검증한 결과를 발표한다. 반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000명 증원을 결정한 건 정책적 판단이며 그 근거와 과정 등 재판부가 요청한 자료를 충분히 제출했다”며 의사단체의 주장을 반박했다.

재판부는 내년도 입시 일정 등을 감안해 13∼17일 중 가처분 인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 내년도 입시에선 의대 증원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반면 기각할 경우 각 의대가 신청한 모집인원대로 내년도 의대 정원이 1489~1509명 늘어나게 된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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