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차별 없는 세상 위해 꼭 필요한 것 < 논단 < 오피니언 < 기사본문



조정희 목사(신부산교회)
조정희 목사(신부산교회)


모든 사람이 차별 없는 세상을 진심으로 원할까? 내가 차별받아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싫지만, 남달리 특혜를 받으면 은근히 즐기게 되는 것이 인간의 심리가 아닐까? 타인의 권리를 지켜주겠다는 마음으로 차별금지를 외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자기 권리를 지키는데 익숙한 죄인들이다. 요즘 세상은 이런저런 차별을 없애기 위한 법을 제정해 공평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여겨지면 한쪽을 제재하거나 벌주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이기적인 자기 사랑에 익숙한 죄인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시행함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오죽하면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라는 말을 하겠는가?


차별받고 싶지 않다는 것은 결국 똑같이 대우받고 똑같이 사랑받고 싶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받지 못하고 차별을 당해서 서러워하는 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강력한 법 집행이 아니라 긍휼한 마음이다. 차별 없는 세상은 ‘공평과 정의’를 외치는 자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평과 정의가 시행되도록 하기 위해 긍휼을 베푸는 자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긍휼’의 마음 없이 공평과 정의만 외치는 것은 아무 효력이 없다.


정의 시행의 목적은 사랑받지 못하는 자가 없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성경은 ‘공평과 정의 시행’의 관점이 아니라 ‘긍휼 시행’의 관점에서 차별하지 말라고 말한다. 구약 선지자들은 ‘정의를 시행하라’는 말씀과 함께 ‘이방인 나그네를 환대하고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라’고 하셨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있다거나, 건강의 문제로, 신체적 조건이나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소위 실력이 부족하거나 기능이 부족한 사람은 힘겹게 살아도 된다고 하지 않으신다. 사회적 약자에게 긍휼을 베풀어줌으로 정의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누구나 함께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의 시행의 목표는 능력만큼 대우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평화와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능력이 부족해 자기 생계를 꾸리기 힘들 만큼 부족한 이웃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소득이 있는 자들이 긍휼의 마음으로 그들의 부족을 채워주는 것이 ‘이웃들 사이에서 정의를 시행’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아침 일찍부터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한 데나리온을 주셨고, 오전 9시부터 일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하게 주리라’고 하신 후 한 데나리온을 주셨고, 정오 12시 오후 3시 심지어 오후 5시부터 1시간가량만 일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을 주셨다. 하루 종일 일했던 품꾼이 “왜 하루 종일 고생한 우리를 한 시간 일 한사람과 똑같이 취급하느냐”(마 20:12)고 불평했지만 주인은 “이렇게 하는 것이 내 뜻이다 내가 선하게 한 것을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 20:14~15)고 도리어 나무라셨다. 주인은 아무에게도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도 특혜를 주지 않았다.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일 한만큼 보상받는 은혜, 일한 만큼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 받는 은혜를 받은 것이다. 이것이 주님이 말씀하시는 정의요, 사랑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정의는 이웃의 권리를 찾아주려는 사랑에서 출발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도 개인의 필요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이다. 이웃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동참하겠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한 대가로 내가 받은 보상을 공동체와 함께 나누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함께 평화를 누리려 한다. 내 권리를 지키거나 내가 손해 보지 않으려는 생각보다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약자의 권익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이웃들 사이에서 정의를 시행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빚어가는 방법은 비판하고 지적하고 교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긍휼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겠지만, 긍휼은 심판을 이긴다”(약 2:13) 교회 공동체 안에, 우리 사회 안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뿐 아니라 긍휼이 흘러넘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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