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구출과 정착, 인권신장을 위해 지금까지 도와주신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리고 싶다. 탈북민 사역에 힘쓰는 길이 통일을 위한 지름길이라는 생각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한별 인권위원의 말이다. 탈북민 출신인 이 위원은 2002년 남한에 입국한 이래 북한인권 회복과 탈북민 구제 사역에 힘쓰고 있다.
이 위원에게는 직책이 몇 가지 더 있다. 북한인권증진센터 대표, 총회세계선교회(GMS) 선교사가 그것이다. 함경남도 출생인 이 위원은 1999년 경제적인 문제와 가정사로 인해 어머니와 함께 탈북을 감행했다. 중국에 거주하는 동안 친척이 있어 끼니를 해결할 수는 있었으나 신분이 보장되지 않기에 미래를 향한 꿈을 꿀 수 없었다. 이 위원은 남한에 가서 대학을 진학하여 법조인이 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다시 한번 모험을 감행했다. 당시 19세의 어린 나이였다.
이 위원은 입국 이듬해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당당히 입학했고 졸업 후 시청에서 탈북민 정착지원 업무에 종사했다. 그러던 중 이 위원의 행보에 변화를 준 사건이 2013년 발생했다. 바로 라오스에서 청소년 탈북자 9명이 강제 북송된 것이다. 북송되면 어떤 고초를 겪는지 잘 아는 이 위원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통일광장기도회에 나가 청소년들의 안녕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거기서 지금의 남편이 된 정 베드로 목사(북한정의연대 대표)를 만났고 사역 일선에 뛰어드는 계기를 갖게 됐다.
“강제 북송을 막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한 자료와 피해사례를 모아 이를 국내외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제 북송이 고난을 겪는 사람들 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인식되어야 해결되리라 판단했다.”
이 위원은 2013년 북한인권증진센터를 설립했다. 또 강제 북송당했거나 북송인 가족이 있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북송과 구금, 그리고 고문 실태를 조사했다. 그는 2016년 유엔에 북한인권침해실태보고서를 제출해 국제사회에 참혹한 탈북민들의 실상을 알렸다.
2017년 임신 6개월 된 탈북 여성의 딱한 사정을 외면하지 못하고 구출한 것을 계기로 지금껏 32명의 탈북 여성과 청소년에게 새 삶을 안겨줬다. 이 위원은 “위기의 순간도 많았다”면서 “때로 공안의 눈을 어둡게 하시고 잡혔다가도 도망하게 하시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이 탈북민들을 외면하지 않으신다고 믿게 됐다”고 감회를 밝혔다.
이 위원은 “탈북민들의 강제 북송은 지난 항저우 아시안 게임 때도 600여 명이 피해를 봤을 뿐만 아니라 최근 일련의 사역으로 러시아 주재 선교사가 체포되는 등 계속되고 있는 이슈”라면서 “강제 북송을 막기 위해 기도와 더불어 국제적인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국내적으로는 북한인권법 제정 정신을 이행해 북한인권재단이 설립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남한에서 교회 생활을 하는 탈북민들을 위해서는 교회가 탈북민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고, 70여 년 분단으로 이질화된 문화 속에서 살아와 다른 점이 많다는 점을 알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한별 위원의 가족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친할머니가 그루터기 신자였고, 아버지가 말없이 몸을 흔들며 기도했던 모습을 이 위원은 기억하고 있다. 북에 있을 때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해 그에게 누가 말해주지는 않아 확실히 몰랐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저절로 절대자를 향해 두 손이 모아졌다고 한다. 이 위원이 북한을 탈출해 오늘날 남한에서 국내외에 영향을 주는 귀한 사역을 하는 것은 대대로 내려온 신앙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위원은 자신이 하는 북한 인권 증진 사역이 때로 더디 진행되는 것 같지만 그의 조모와 부친의 기도처럼 탈북민의 안녕과 신앙 성숙으로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으로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