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한 시대일수록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은 더욱 소중합니다”
교단의 역사와 정통성을 계승해 나가는 데 있어 사료는 매우 중요하다. 정성구 목사(한국칼빈주의연구원 원장)는 일찍이 역사 자료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모으는 일에 전념했다. 지난 3월 1일 정 목사는 소중한 자료 가운데 50여 종 수백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총신대학교(총장:박성규 목사)에 기증했다. 또 자서전 <은혜 위의 은혜>(킹덤북스)를 발간했다. 기증의 의미와 자서전 발간의 소회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한국칼빈주의연구원과 칼빈박물관 설립 목적과 사역에 관해 설명해 주십시오.
=먼저 한국칼빈주의연구원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칼빈주의연구원은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과 그 후학들이 이룩한 칼빈주의사상을 연구 발전시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공헌하기 위해 1985년 7월 10일 설립한 순수한 학문연구 기관입니다. 본 연구원은 네덜란드의 Vrije University의 부속 기관인 ‘프로테스탄트 자료 센터’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으며, 기타 미국의 칼빈대학 부속 기관인 ‘칼빈주의 연구를 위한 헨리미터 센터’, 남아공의 ‘칼빈주의 연구회’와 상호 교류 관계를 맺고 자료 교환을 하고 있습니다. 본 연구원은 전 세계 칼빈학자 수백 명이 방문했고, 전 세계 석학 강의, 그리고 아시아 각국 학자들의 연구 활동이 이곳에서 있었습니다.
▲칼빈박물관에 있는 사료들을 대략 설명해 주신다면?
=본 연구원 및 칼빈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은 1만여 점이 훨씬 넘습니다.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16세기 인쇄된 초대 교부들의 원전(폴리갑에서 어거스틴), 16~19세기의 희귀 칼빈 자료들, 칼빈 및 칼빈주의 사상 자료 책, 칼빈 및 칼빈주의 사상 연구 논문 2000여 종, 칼빈주의 신학자 및 사상가의 강연 녹음테이프 수백여 종, 아브라함 카이퍼의 자료 200여 종, 종교개혁 시대의 각종 자료와 마이크로필름 1000여 종, 많은 한국교회 사료가 있습니다.
▲왜 사료 수집에 관심을 가지셨습니까? 또 사료를 모으시는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신다면?
=저는 1962년에 총신에 입학했고 박형룡 박윤선 박사 아래서 교육받았습니다. 그분들의 강의에 감명을 느꼈고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을 지키고 바통터치 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학문 전승은 자료 전쟁을 수반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대부터 사료를 모으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중요한 개혁주의 자료가 있다고 하면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경매 장소에도 가고, 고서점에도 찾아다녔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사료에 관심이 크다는 소식이 알려져 사료 보관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이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연락을 줄 지경이 됐습니다. 귀한 자료가 나왔으나 살 돈이 없는 경우에 잘 아는 고서점 주인에게 외상으로 달라고 요청한 뒤 나중에 매달 갚았습니다. 칼빈박물관에 있는 자료 중 칼빈의 전신 그림이 있는데 이것은 서점을 운영했던 네덜란드 톤 볼란트라는 학자에게 10년간 요청해서 받은 것입니다. 또 사료를 사버리는 바람에 온종일 바게트 하나로 지낸 적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1만달러짜리 사료를 가지고 집에 왔더니 아내가 가격을 묻길래 아내에게 미안해서 한화로 1만원을 줬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사료 수집에 미쳤었죠.
▲정성을 다해 모은 칼빈박물관 사료들을 총신대에 기증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지난 3월 1일 저는 총신대학교에서 칼빈박물관 사료 기증식 및 자서전 출판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총신에 드린 이유는 명확합니다. 저는 죽었다가 깨어나더라도 총신맨입니다. 총신은 나의 오늘이 있게 한 토양입니다. 총신에 학생으로 입학했다가 교수가 됐고 교목, 학생처장, 대학원장, 총장, 명예 교수까지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자료를 총신에 당연히 기증해야 합니다.
또 총신대학교가 칼빈주의와 관련된 자료들을 가장 잘 보존, 관리, 전시, 홍보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총신은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기초 아래 세워진 교단 신학교입니다. 칼빈주의 자료들을 총신만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귀하게 사용할 기관은 없을 것입니다.
▲사료 기증이 총신대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시나?
=총신대가 교단과 한국교회를 넘어 아시아와 세계교회에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의 정통성을 가진 학교로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총신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위상이 많이 추락했습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른 신학과 신앙으로 재무장하는 데 있습니다. 총신에서 이러한 믿음의 용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배출한다면 교회가 회복될 것입니다. 지금도 총신대에 외국인 학생들이 들어와 신학 공부를 하고 있고 세계적인 교회 지도자들이 총신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칼빈박물관 자료들이 전시되면 총신의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해지고 교단의 신학이 세계교회에 널리 알려지는 데 이바지할 것입니다.
▲또 이번에 <은혜 위에 은혜>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내셨는데 집필하시게 된 계기는 어떻습니까?
=제목 그대로 지금까지 인생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되새기고자 했습니다. 모든 역사는 기록되어야 합니다. 이 책은 제 개인의 회고록이기도 하지만 제 인생이 교단과 총신과 떼려야 뗄 수 없기에 총신의 역사이기도 하고 교단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또 제가 거쳐온 대신대와 칼빈대의 여정도 엿보게 되실 것입니다.
저는 평소에 기록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어느 모임이든 가면 포스터와 순서지를 2장씩 챙겨 옵니다. 제가 평생 쓴 설교 원고를 모아 뒀습니다. 원고뿐만 아니라 설교 음성이나 영상도 보관했습니다. 그때그때 자료를 모으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때문에 자료를 모으는 일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또 저는 날마다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꾸준히 쓰고 남겨 두기에 이것이 나중에 자료가 되고 책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의 내용과 책을 통해 교단과 교회에 전하고자 하신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개혁주의의 가치와 소중함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교단의 목회자들이 개혁주의 신학을 확고히 가지고 복음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사회는 실용주의적 가치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실용성만 있다면 고민하지 않고 채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이 시대는 포스트모던 시대입니다. 포스트모던은 표준이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목회자들은 성경을 해석할 때 개혁주의 전통에 관심을 두고 선배 개혁자들의 성경해석을 연구하고 습득해야 합니다. 신학적 전통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칼빈박물관 사료 기증식이 열린 총신대 백남조홀의 넓은 공간을 수많은 지인이 채운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료 기증식에 많은 분이 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거쳐왔던 교회의 장로님들, 성도분들, 강의했던 학교, 공부했던 학교의 동창들, 설교와 연구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지인들로 총신대학교 백남조홀이 가득 찼습니다. 여러분들의 사랑에 힘입어 오늘의 제가 있는 것입니다. 다만 인간관계의 비결을 묻는다면 저로서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목회는 인간 관리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의 마음을 알아줘야 합니다. 저는 목회를 할 때 성도들의 생일 카드를 손수 써서 주곤 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드린 생일 카드를 가지고 계신 분이 있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제가 기관을 떠난 후라도 일하던 이들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적은 일에도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일전에 어떤 목사가 저에게 자신이 쓴 책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책을 받고 곧 전화해서 “책을 잘 받았다.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뒤에 책을 쓴 목사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책을 보냈지만, 목사님처럼 감사 전화한 분이 없었다”면서 “직접 뵙고 감사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왔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사료 기증식이 끝난 뒤에도 함께 해 주신 분들에게 연락했습니다.
▲앞으로 계획을 알려주십시오.
=가까이는 유럽 순방이 있습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출판 기념회를 갖고, 집회와 강의를 통해 칼빈주의 사상을 전할 것입니다. 또 꾸준히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바 조만간 아브라함 카이퍼 어록집이 세상에 나올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연구하고 집필하고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계속해서 하고 싶습니다.
진행=노충헌 국장 mission@kidok.com
사진=권남덕 부장 photo@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