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 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 유명 언론인과 인터뷰한 것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푸틴 대통령이 서방 언론인과 독대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요. 2시간여 진행된 인터뷰 내용에는 노골적인 거짓말과 왜곡, 선전 발언이 혼합돼 있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VOA의 ‘사실 확인(polygraph.info)’을 통해, 푸틴 대통령 발언의 진위를 짚어보겠습니다.
“인터뷰 배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터커 칼슨 전 ‘Fox News’ 진행자와의 단독 인터뷰는 지난 2월 6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진행됐습니다. 칼슨 씨는 미국의 유명한 보수적인 언론인이자 현재는 개인 뉴스 사이트를 운영하는 인물입니다.
칼슨 씨는 6일 소셜미디어 X에, 이런 인터뷰를 하는 데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여러 달 동안 면밀히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국민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인터뷰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8일, 칼슨 씨는 푸틴 대통령과 사전 녹음된 2시간짜리 인터뷰를 대중에 공개하면서, 러시아 지도자의 ‘진실된 관점(sincere point of view)’이라고 소개했습니다.
VOA는 푸틴 대통령의 답변을 검토한 결과, 허위 내용과 유해한 반미∙반우크라이나 선전, 허위 정보가 혼재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인터뷰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역사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관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고 있는데요. 여러 오류와 허위 주장 가운데 몇 개만 추려보겠습니다.
“우크라이나인 정체성에 관한 주장”
푸틴 대통령은 인터뷰 서두에 매우 긴 시간을 할애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오랜 역사를 설명했습니다. 9세기경, 지금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를 아우르는 광대한 땅에 출현한 ‘루스(Rus)’라는 나라가 러시아의 시작이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는 처음부터 없었고 러시아의 일부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과 소련 시기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국가 형태가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인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러시아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예로 푸틴 대통령은 지금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하나를 소개했는데요. 러시아군에 포위된 우크라이나 병사들에게 투항을 명령하자, 그들은 분명한 러시아 말로 “러시아인에게 항복이란 없다”고 말하고 모두 사망했다는 겁니다.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이 사건이 실제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말한, 많은 우크라이나인이 자신들을 러시아인으로 여긴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푸틴 대통령 주장대로 우크라이나인들이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소련 해체 후 1991년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90% 이상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찬성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또한 그간 우크라이나에서 실시된 많은 여론 조사를 보면, 대다수 우크라이나인이 러시아인을 전혀 다른 민족 집단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체성은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러시아명 크림반도) 강제 병합에 이어,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더 견고해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지금은 내전 중이라는 주장”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한 나라라는 맥락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게 ‘내전(civil war)’의 일부라고 주장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내전’으로 묘사한 것은 거짓입니다. 침공 전에도 푸틴 대통령은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주권을 부인하는 주장을 했는데요.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구소련 해체 후 국제 사회가 인정한 주권 독립 국가입니다.
우크라이나가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일부라고 한 푸틴 대통령의 주장은 맞는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오늘날 존재하는 여러 신생 국가의 탄생 역시 부정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식민국이었던 많은 나라가 독립했는데요. 푸틴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식민지였던 나라나, 식민 지배를 했던 나라나, 저마다 역사적∙지리적 근거 등을 들어 국경 변화에 만족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푸틴 대통령의 주장은 곧 국제법과 국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발언입니다.
“2014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가 미 CIA 작품이라는 주장”
푸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쿠데타는 우크라이나 야권이 미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을 받아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역시 명백한 허위 주장입니다.
우선 푸틴 대통령이 말한 바와 같이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쿠데타’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2013년 11월 우크라이나에서는 유럽연합(EU) 가입과 서방과의 경제협력을 촉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일명 유로마이단)가 일어났는데요. 시위가 격화하자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대통령은 러시아로 도피했습니다. 친러시아 정권이 실각하고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는 급격한 정권 교체가 이뤄졌지만 이 과정에서 당시 군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는 줄곧 시위 배후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개입했다고 주장해 왔는데요. 하지만 이들 시위대가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간첩’이라는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칼슨 씨와의 이번 인터뷰에서도, CIA는 늘 러시아의 적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시작했다는 주장”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민스크협정’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요. 민스크협정은 2014년 9월과 2015년 2월, 두 번에 걸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돈바스 지역의 두 친러 세력 간에 체결한 휴전 협정입니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광활한 지역인 돈바스에 있는 친러 세력은 러시아 편입을 요구하며 반군 활동을 벌여왔는데요. 푸틴 대통령은 만일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민스크협정 이행 의지를 보이고 돈바스 주민들을 설득하려 했다면, 상처는 점차 치유되고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민스크협정을 이행할 의지가 없었고, 모든 당사자는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길 원했으며, 러시아로서는 이를 허용할 수 없었다는 게 푸틴 대통령의 주장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그러면서 러시아가 2022년에 전쟁을 시작한 게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2014년에 전쟁을 시작한 거라면서 러시아의 목표는 이를 막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이 주장도 거짓입니다.
러시아는 민스크협정을 체결하기도 전인 2014년 2월에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름반도(러시아명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습니다.
러시아는 이후 비밀 부대를 파견해 돈바스 정부 건물을 점령하고 도네츠크와 루한시크 지역의 권력을 사실상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합병을 반대하는 크림타타르인들을 극단주의자들로 규정해 탄압했습니다. 이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에 대응해 이른바 ‘반테러 작전’을 전개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또한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까지도 국제 사회에 거짓말을 했습니다. 당시 미국과 정보기관은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누차 경고했는데요.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발작적인 공포증이라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끝내 육해공 전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새 병합지 인정 주장”
러시아는 2022년 전쟁 중,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에서 러시아 편입을 묻는 소위 주민 투표를 실시했습니다. 당시 친러 지역 관리들은 주민들이 러시아 편입에 거의 전적으로 지지 의사를 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6일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칼슨 씨는 점령지와 관련해, 지금 시점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러시아의 영토 장악을 인정하는 것이 수치스럽겠느냐고 물었는데요.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의지만 있다면 나토는 품위 있게 행동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나토가 새 점령지들을 러시아 땅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건데요. 하지만 이는 억지 요구입니다.
유엔 총회는 바로 그다음 달(2022년 10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강제 합병은 국제법상 옳지 않은 불법 행위라고 규정했습니다. 전 세계 140여 개국이 러시아가 국제 사회가 인정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경 내 지역에서 실시한 소위 주민투표와 불법 합병을 한목소리로 규탄한 건데요. 나토는 국제 사회 결정을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미국 언론인 간첩 행위 주장”
푸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현재 러시아에 억류돼 있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모스크바 지국 소속 이반 게르시코비치 기자에 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게르시코비치 기자는 지난해 3월 러시아 동부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취재 임무를 수행하던 중, 모스크바 당국에 체포됐습니다.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은 게르시코비치 기자가 군사 기밀 정보를 수집했다고 주장했지만, 뒷받침할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법원은 유죄 판결을 내리고 그의 항소도 기각했습니다.
6일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은 게르시코비치 기자의 석방 가능성을 묻는 칼슨 씨 질문에, 게르시코비치 기자는 간첩 행위를 했으며 러시아는 그동안 선의의 행동을 너무 많이 했다면서 이제는 그런 선의가 고갈됐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선의에 비슷하게 부응하는 나라도 없다고 주장했는데요.
하지만 언론인을 부당하게 체포하고 구금하는 것은 선의의 행동이 아닙니다.
러시아 정부는 또한 게르시코비치 기자가 러시아에서 어떠한 언론 활동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VOA는 게르시코비치 기자가 수 년간 러시아 현지에서 보내온 보도들을 확인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게르시코비치 기자가 ‘인질’로 부당하게 억류돼 있다며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지난해 11월 모스크바 법원은 게르시코비치 기자의 구금 기간을 더 연장했고, 게르시코비치 기자는 지금 1년 가까이 수감 중입니다.
“인터뷰 논란”
푸틴 대통령과 터커 칼슨 씨의 인터뷰 내용뿐만 아니라 인터뷰 자체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칼슨 씨는 러시아의 진실에 대한 미국민의 알 권리를 언급했지만, 푸틴 대통령이 거짓말과 왜곡, 허위 정보를 나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뿐이라는 비판입니다.
또한 인터뷰 질문도 날카롭지 않았으며, 인터뷰 내내 푸틴 대통령에게 끌려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같은 지적은 푸틴 대통령으로부터도 나왔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주,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칼슨 씨가 좀 더 공격적으로 질문할 것을 기대했다면서 날카로운 질문이 부족해 놀랐다고 말했는데요. 칼슨 씨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래 푸틴 대통령의 첫 서방과의 인터뷰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서방과 러시아 양쪽 모두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터커 칼슨 미국 언론인 간 대화 내용의 진위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