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8월 8일은 내겐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처음 만난 날이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 없이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탕자처럼 돌아온 나를 예수님은 구원해 주셨고 영생을 주셨다. 그 구원의 감격을 이기지 못해 신학을 시작했지만 말씀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하루 종일 성경만 읽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신대원 선배의 강권으로 가게 된 중국 연길의 한 허름한 아파트. 하나님께선 그곳에서 내 목회 인생을 송두리째 걸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다.
그 아파트 안에는 여섯 명의 탈북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빛에 살기가 가득한 한 형제가 자신을 소개했다. 후일에 순교의 길을 걷게 된 북한의 특수부대원 출신 주광호 형제였다. 다른 형제들도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마른 체구였지만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 살기 뒤에 숨겨진 두려움과 외로움을 함께 생활하면서 알게 됐다.
후원하는 교회도 없이 마태복음 10장 9절 말씀만 의지한 채 수중에 있던 한국 돈 4만원만 가지고 무작정 중국으로 들어갔다. 거처를 마련할 수 없었던 나는 하루 종일 작은 아파트에서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성경을 읽었다. 그들은 다른 선교사들과 달리 24시간 함께 지내자 처음에는 나를 대놓고 경계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일까. 난 그들이 마치 고향 후배들 같았다. 시골 깡촌 출신이라 그런지 그들이 남한 사람들보다 더 정겨웠다. 그러자 그들도 조금씩 내게 마음을 열었고 성경에 흥미를 갖고 통독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모(母)교회 목사님의 목회철학 때문이었다. 목사님께선 성도들이 목회자 집안의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숨기지 말고 신뢰를 줘야 한다는 말씀을 종종하셨다.
화려한 언변도 풍부한 재정도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탈북자들과 삶을 함께 살았을 때 놀라운 은혜를 주셨다. 거처를 마련할 재정이 없어 함께 살아갔을 뿐이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탈북자들이 나를 깊이 신뢰하게 된 이유가 된 것이다.
흔히들 북한선교는 특수한 사람들의 전문 목회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 역시 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북한선교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은 달랐고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보다 높았다.(사 55:8~9) 그분이 인도하시는 길은 항상 선하고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