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필로폰)이 그렇게 만든 거죠. 약을 안 먹었더라면 살인사건이 안 일어났을 수도 있었죠.”
상습적으로 마약을 투약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중 또다시 필로폰을 투약한 것도 모자라 약에 취해 살인까지 저지른 50대 남성이 중형에 처해졌다.
의정부지법 제13형사부 박주영 부장판사는 살인,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50대 남성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고 7일 밝혔다. 또 80시간의 약물중독 재활교육 프로그램 이수와 15년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24일 오후 2시30분께 경기 양주시 자택에서 자신의 부동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지인 B씨(55)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3년 전 마약 혐의로 교도소에 있을 때 B씨가 자신의 토지 관련 업무를 대신 처리하는 과정에서 금원 일부를 갈취했다는 얘기를 누군가로부터 듣고 앙심을 품었다. 그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B씨를 불러 추궁하던 중 격분해 신발장 안에 있던 흉기를 꺼내 곧장 B씨에게 다가가 그대로 머리를 수차례 내리찍었다.
범행 직후 A씨는 쓰러진 B씨를 그대로 둔 채 마당으로 나와 경찰에 전화로 자수했다. B씨는 경찰의 신고로 출동한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경찰 조사결과 A씨는 범행 당일 오전 필로폰 0.03g을 커피에 타 마시는 방법으로 투약하고 몇 시간 뒤 B씨를 살해했다. 또 2021년 2~5월 필로폰과 대마를 매수하고 이를 흡연하거나 주사한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중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0년부터 마약류를 투약한 A씨는 동종범죄로 7차례 처벌받고 3차례나 교도소에 수감된 전력이 있는 마약중독자였다.
A씨는 “약(필로폰)이 그렇게(살인을 하게) 만든 거죠. 약을 안 먹었더라면 (살인)사건이 안 일어났을 수 있었죠”라고 수사기관에 진술하며 후회했다. 그러면서도 법정에선 “한동안 정신질환 약물복용을 중단한 데다 필로폰까지 투약한 상태였다”며 형 감경을 위한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법원은 A씨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은 사실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이런 기록이 범행에 이르게 된 데에 영향을 미치긴 어렵다고 봤다.
그 근거로 A씨에 대한 정신감정을 맡은 병원에서 “이 사건 범행 당시 피고인은 심신이 건재한 상태에 있었다. 공황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책임능력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라는 내용의 의견을 낸 점을 들었다.
A씨가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침착하게 범행 경위를 설명한 점, 두 차례 결혼하고 자녀들까지 두며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해온 점도 A씨가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하거나 없었다고 볼 수 없는 근거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수차례 마약 투약도 모자라 끝내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점을 볼 때 A씨가 사회로부터 오래 격리돼야 함은 물론 전자장치 부착을 통해 상당 기간 추적 관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A씨 스스로도 마약으로 인해 살인까지 나아간 점을 인정한 데다 A씨의 성인 재범위험성평가척도(KORAS-G) 점수도 21점으로 ‘높음’ 수준을 보였기 때문에 출소 이후에도 또다시 강력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박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경우 마약류 범죄가 갖고 있는 위험성이 가장 극단적으로 발현됐다. 마약투약 후 저지른 살인죄는 인간의 생명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침해하고 어떠한 방법으로도 피해를 회복할 수 없는 중대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 B씨는 머리뼈가 산산조각 난 것으로 나타났다. B씨는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임이 분명하다”며 “그럼에도 A씨는 ‘재산 갈취를 항의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억울함만을 호소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피해자나 유족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했다거나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한 점도 보이지 않는다”며 “오히려 피고인의 주장으로 유족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유족들은 그런 피고인에게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정부=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