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교회가 어려움에 빠지는 시기 중 하나가 오랜 시간 담임하던 목회자가 정년을 마치고 떠날 때이다. 대부분 교회가 은퇴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지 않다 보니 떠나는 목사뿐 아니라 남아있는 교회 전체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나마 규모가 있는 교회라면 전별금, 위로금, 퇴직금 등의 명목으로 많은 사례비를 준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목회자의 은퇴 준비에 개인과 교회뿐만 아니라 교단 역시 공교회적 관점으로 접근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해 목회자 은퇴를 연구하고 그 현황을 발표한 바 있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신뢰운동본부(본부장:신동식 목사)가 진행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교회 목회자 은퇴 시스템에 대안을 제시하는 매뉴얼을 제작해 눈길을 끈다. 매뉴얼에는 은퇴를 준비하는 목회자와 교회가 신앙과 심리, 주거와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한국교회 목회자 은퇴 매뉴얼> 출판에 맞춰 11월 24일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기념회에서는 집필자들이 ‘신앙과 심리’와 ‘경제’ 두 부분으로 나눠 목회자 은퇴와 관련한 제언을 내놓았다.
먼저 ‘은퇴 목회자와 심리상담’을 발제한 기윤실 청년상담센터 WITH 공동소장 곽은진 교수(아신대 상담학)는 “은퇴는 철저하게 경제적 영역과 맞닿아 있으며 개인 능력이나 자원의 영역은 아니”라며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심리적 측면의 은퇴는 없다”고 단호히 천명했다. 경제적 측면의 은퇴는 있지만 한 개인의 소명이나 가치의 심리적 은퇴 영역은 별개로써, 목회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정체성을 이어갈 수 있으며 즉 영혼 구원 사역에 은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다만 심리적 관점에서 목회자들이 은퇴 후 겪는 힘든 부분으로 자기 내면을 다룰 줄 모르는 인식 부족을 우려한 곽 소장은 이외에도 △가족 돌봄의 부재와 인식 부족 △경계가 약한 타인 중심(성도 중심)의 삶 △관계나 일 중독적 성향 △주도적 결정권과 통제적 리더 역할에 익숙한 패턴으로 인한 관계 소통의 어려움 △의존적 성향의 성도들로 인한 높은 동반적 관계 의존성 △종교와 현실적 문제의 경계 혼란 △심리 상담에 대한 접근의 부재 등을 한국교회 은퇴 목회자의 특징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목회자에게 은퇴는 어쩌면 일반 은퇴자의 그것보다 더 힘들고 어려울 수 있다. 일반 직장인은 조직의 구성원 중 하나라는 의식이 있지만, 목회자에게 교회와 공동체는 가족과 나를 희생하면서 헌신한 곳으로서 곧 ‘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일반인들보다도 더욱 철저히 은퇴를 준비하는 태도가 요구되는 것이다. 곽 소장은 목회자와 교회를 향해 현실적인 대안이나 개념 변화의 필요성을 당부하는 한편, ‘은퇴를 앞둔 예비 목회자를 위한 예방적 차원 교육과 지원 프로그램’, ‘심리적 지원 프로그램 제공과 담당 심리 전문 상담사 배치’, ‘은퇴 목회자를 중심으로 동료 상담사 역할 전환을 위한 심리 교육 제공’, ‘정서적 심리적 의식의 변화를 위한 집단 상담이나 교육’, ‘은퇴자가 편히 예배를 보거나 교제할 수 있는 장 마련’ 등 교단 차원의 대안과 대책도 촉구했다.
이어 경제적 차원에서 목회자 은퇴 준비를 안내한 기윤실 상임집행위원 김상덕 박사(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실장)은 한국교회 절반가량이 미자립교회이고 다수의 교회가 교인 수 100명 미만의 소형교회인 현실 속에 경제적 어려움과 불평등, 구조적인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목회자의 노후를 개인과 개교회가 스스로 해결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은퇴 목회자는 당분간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인 만큼 이를 방치할 경우, 계속해서 목회자의 노후는 고통스럽고 교회와의 갈등이 생길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목회직을 사고파는 형태의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위원은 “따라서 공교회성이 필요하다. 국가가 소상공인을 우대하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듯 교회는 작고 평범한 교회를 도와야 한다”라며 그 도움으로 목회자 은퇴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재정, 주거, 의료, 심리적 서비스와 함께 목회자 은퇴 보수와 관련한 인식 개선 교육 등 포괄적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돈이나 은퇴 후의 생계를 준비하는 것이 마치 믿음이 없는 것처럼 여기지 말아야 한다”라고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면서 “오히려 현실의 필요가 중요하며 이를 사전에 준비함으로써 목회자 개인 및 가정과 교회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일종의 ‘헤어질 결심’을 하도록 준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