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70년, 한국선교 140년 속 미국의 역할 : 목회/신학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한국기독교한림원

▲주요 회원들의 기념촬영 모습. ⓒ이대웅 기자

한국기독교한림원(이사장 조용목 목사, 원장 정상운 박사) 제4차 학술대회가 ‘한국교회와 한미동맹 70주년’을 주제로 11월 17일 오후 안양 은혜와진리교회(담임 조용목 목사)에서 개최됐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이광희 명예교수(평택대)를 좌장으로 이승구 교수(합동신대)의 기도와 정상운 원장의 개회사 및 신입회원 소개, 조용목 이사장의 위촉장 수여 및 축하패 전달, 한국신학대학총장협의회 회장 최대해 총장(대신대)의 축사(대독) 등이 진행됐다.

이후 박응규 교수(아신대)가 ‘개항 이후 초기 한미관계와 선교사의 역할: 알렌과 헐버트를 중심으로’, 박명수 명예교수(서울신대)가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 대립인가 묵인인가?’, 이은선 명예교수(안양대)가 ‘1970년대 한미 갈등과 기독교’를 각각 발표했다. 종합논평은 이상규 석좌교수(백석대), 폐회기도는 오덕교 총장(횃불트리니티대)이 맡았다.

◈초기 미국 선교사 알렌과 헐버트
알렌, 선교 금지 시기 토대 조성해
헐버트, 한글 연구 등 극진한 사랑

박응규 교수는 “알렌과 헐버트는 어려운 상황에서 개항 이후 초기 한미관계와 한국 선교역사에서 개척자 역할을 잘 감당해낸 선구자들”이라며 “두 인물은 선교 초기 개척자로서 선교의 문을 열었고, 한국 의료와 교육 분야에서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뿐만 아니라 개항 이후 초기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고 미국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만들며,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한국이 자주권과 독립을 실현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는 면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며 “이러한 토대로 한미관계가 더욱 발전하고 대한민국을 건국할 뿐 아니라 세계 속의 한국으로 나아가는 데 초석을 닦는 매우 중요한 과업을 가장 어려운 시기에 수행한 공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알렌은 심혈을 기울여 민영익을 치료했고, 고종과 명성황후 후원으로 한국 최초 근대적 의료기관이자 교육기관인 제중원을 선교부와 한국 정부가 공동 참여하는 관민 합작 기관으로 설립했다”며 “선교를 금지하던 시기 의료와 교육 분야에서 선교를 시행할 터를 조성한 면에서 공로가 지대했다”고 평가했다.

박응규 교수는 “알렌은 왕실과 조선 정부 관리들에게 기독교와 미국에 대한 호의적 이미지를 심어, 향후 선교와 한미관계의 우호적 발전 토대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며 “후에는 외교관으로 변신해 한국 자주외교를 위해 노력하고, 반일적 자세를 견지하며 서기관과 공사로서 직무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에 대한 깊은 사랑과 헌신의 정신을 유지했다”고 했다.

박 교수는 “헐버트도 외국인으로서 평생 한국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23세에 고종의 영어 교사로 초빙됐다. 학생용 교재인 역사지리서 <사민필지>를 저술했고, 한글의 우수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다”며 “1905년 고종의 비밀특사로 워싱턴을 방문해 일본의 보호국화가 강제였음을 알렸고, 1907년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한국 국권회복 운동을 벌였으며,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서 한국 독립운동을 벌였다”고 전했다.

그는 “헐버트는 귀국해서도 순회 강연과 신문 기고를 통해 일본의 부당성을 고발하고 미국인들의 지원을 호소했다. 그는 사후 한국에 묻히기를 소원할 정도로 극진한 한국 사랑을 보여 줬다”며 “무엇보다 그는 ‘한국의 탄생’에 기여했고, 한국인들이 현재 문제뿐 아니라 미래에 직면할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을 배양하는 데 도움을 줬으며, 한국을 ‘국제 정의(justice)’ 진영에 서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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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자들 모습. 박명수 교수(가운데)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반공포로 석방, 대립 or 묵인?
美, 반공포로 자유송환 원칙 공유
독자 반공포로 석방 의도, 美 묵인
전시작전권 차원 상당한 도전 이해

박명수 교수는 “많은 사람들은 6.25 전쟁 중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이 미국의 정전협정에 반대하고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 전략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최근 일부 학자들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반공포로 석방과 별도로 진행되고 있었고,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이 한미 관계를 악화시켰을 뿐 실질적 소득이 없었다고 주장한다”고 운을 뗐다.

박 교수는 “그러나 미국과 이승만은 자유송환 원칙을 공유하고 있었고, 미국은 적절한 시점에 반공포로 석방을 계획 중이었으며, 이는 한국 정부와의 협조 가운데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며 “이에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은 이런 미국의 의도를 잘 알고 있는 이승만이 독자적으로 반공포로 석방 계획을 세우고 실천했으며, 미국이 이를 묵인한 것이라고 본다. 이런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은 미국과 국내 반공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탈린 사망 이후 중립국위원회를 통한 포로 교환이 논의되고 있었음에도 이승만은 여전히 반공포로 석방계획을 추진 중이었고, 미국은 이를 알았음에도 아무런 반대를 하지 않았으며, 실제 석방 중에도 적극 막지 않았다”며 “그러므로 반공포로 석방이 한미 간 갈등 요소가 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명수 교수는 “정작 미국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전시작전권 문제였다. 이승만이 미국의 지시를 넘어 한국군을 임의대로 움직였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고, 이는 미국의 권위에 대한 상당한 도전으로 이해됐다”며 “당시 포로수용소는 유엔군 산하에 있었고, 유엔 사령관 지휘 하에 있었다. 그럼에도 이승만은 헌병사령관 원용덕에게 반공포로 석방을 지시했고, 원용덕은 유엔 사령관에게 통보 없이 석방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박 교수는 “이승만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이 미국의 권위를 넘어 행동할 수 있고, 한국의 요구를 무시하고는 정전협정이 성립되기 어려움을 보여주면서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려 했다”며 “동시에 이는 미국의 전시작전권에 대한 도전이 아니고, 미국과 자유세계가 추구하는 민주주의 실천이므로 반미적 행동이 아니며, 한국 헌병은 유엔군이 아니라 한국 국방부 지휘체계 안에 있음을 강조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은 자유송환이라는 미국과의 공동 가치를 위한 것이면서, 대한민국 주권이 대한민국에 있음을 보여줬다”며 “하지만 반공포로 석방 과정에서 나타난 군사작전권 문제는 반공포로 사건보다 중용한 것으로,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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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1970년대 한미, 갈등 관계였나
독재정치로 인권탄압, 미국은 우려
한국교회 복음화운동, 비판 무마돼
독재정권 비판 못한 것은 반성해야

이은선 교수는 “1972년 10월 유신 이후 독재 정치가 실시되면서, 미국은 인권 탄압을 이유로 한국에 대한 원조를 제한하고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을 보였다”며 “1970년대 한미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미군철수와 북한군의 군사력 증강에 따른 안보불안과 그에 따라 성립된 유신체제 하에서의 인권탄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같은 기간 한국교회는 민족복음화운동을 추구했다. 당시 한국교회는 유신 체제가 강조했던 국가안보 위기 속에서 반공정신 강화와 함께, 민주화와 관련해 진보 교회들에 의해 형성된 국제적 비판 여론을 무마하는 활동을 함께했다”며 “복음주의 교회들은 정부의 편의 제공 속 대형집회를 열면서 성장을 도모했고, 동시에 신앙의 자유가 있음을 지지하고 국제적으로 선전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미국 내에서 인권 탄압에 의한 반한 여론이 조성됐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반한 감정을 잠재우고 미군 철수를 유보시킨 인물들이 김장환 목사와 CBMC 회장 김인득 장로, 유정회 의원 김인준 장로 등이었다”며 “이러한 가운데 1976년 한국 지원 예산을 감축하려던 프레이저 의원의 계획이 무산되고, 더윈스키 수정안이 통과됐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활동에 대해 진보 역사가들은 ‘교회와 정치의 유착’이라고 비판하지만, 우리는 1970년대 시대 상황 가운데 국가안보와 한미동맹을 굳건히 해서 교회와 국가 발전을 위해 일정하게 기여한 것을 평가해야 한다”며 “동시에 미흡한 점은 극복해 가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은선 교수는 “박정희 정권이 끝내 민주화로 이행하지 못하고 비극적 종말을 맞을 때까지, 한국 보수 교회들이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 역할을 거의 감당하지 못한 것은 반성해야 한다”며 “그와 함께 한국교회는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면서, 앞으로 한미동맹 체제를 견고히 하는 가운데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발전시키는 가운데 평화로운 남북통일을 이루고 민족·세계 복음화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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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좌장 이광희 박사, 발표 박응규·박명수·이은선 박사, 논평 이상규 박사. ⓒ이대웅 기자

◈종합논평

종합논평에서 이상규 교수는 “한국과 미국 간의 군사적 동맹관계를 약속한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지 70주년을 맞아 학술대회를 개최한 것은 뜻깊은 일”이라며 “이런 기회를 통해 한국교회가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면서, 앞으로 한미동맹 체제를 더욱 견고히 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발전시키고, 평화로운 복음통일을 이루며, 민족·세계 복음화 사명을 잘 감당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상규 교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북한의 도발을 막고 대한민국의 자유·평화·번영의 토대가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미동맹은 여러 분야에 영향을 줬지만,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됐다”며 “1960년대까지 미국이 제공한 군사원조는 매년 3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한국 국방비의 87%에 달했다. 결국 한국은 국방비에 쓸 돈으로 경제개발에 매진, 폐허였던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 경제·군사 강국으로 성장했다. 이런 점을 봐도 한미동맹은 특별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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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정상운 박사가 개회사를 전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앞선 개회예배는 임성택 전 총장(강서대) 사회로 목창균 전 총장(서울신대)의 기도, 안명준 명예교수(평택대)의 성경봉독, 김민성 교수(한일장신대)의 특별찬양 후 원장 정상운 박사(성결대 전 총장)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막 8:14-21)?’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정상운 박사는 “우리나라는 정치와 외교와 안보를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드시고 보호해 주셨기에 6.25의 불구덩이와 극심한 가난을 이기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애국가 가사처럼 1953년 휴전과 한미 상호방위조약 이후 70년간 하나님의 각별하신 은혜로 차고 넘치는 복을 주셨기에,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으나 오늘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가 이어져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이동주 전 교수(아신대)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길원평 석좌교수(한동대)가 ‘한국교회와 동성애 확산 저지를 위해’, 이억주 전 교수(칼빈대)가 ‘한국기독교한림원과 은혜와진리교회를 위해’ 각각 대표기도했으며, 조용목 목사가 축도했다.

이와 함께 신입 회원이 된 한국기독교학회 신임 회장인 황덕형 총장(서울신대)에게 위촉장을, 횃불트리니티대 총장에 취임한 오덕교 박사에게 축하패를 각각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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