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기습, 최악의 유대인 학살
급진 이슬람, 당연 악마적 존재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위해 기도
건강한 기독교 시온주의 칭찬하나
맹목적 짝사랑, 하나님 뜻 불일치
가자지구 2백만 명도 사랑하신다
이스라엘만 편드는 것 옳지 않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손 잡고
평화 노래하는 날 기대하며 기도
▲가자지구 병원 포격 관련 보도 화면. ⓒ채널A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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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 테러공격의 규모와 고통은 전례 없는 수준이다. 홀로코스트 사건 이후 유대인에 대한 최악의 학살이다. 어린 자녀가 보는 앞에서 부모를 죽이고, 노인들에게 총격을 가하기도 한다. 세계 도처의 급진적인 무슬림들은 이를 기뻐하고 있으리라.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할 때이다. 팔레스타인과 가자 지구 주민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때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오랫동안 원수 관계로 과도한 저항과 보복을 지속해 왔다. 이스라엘의 과잉 진압이 잦았다. 팔레스타인 종족 자체를 말살하려 한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무고한 팔레스타인 어린이 학살을 기뻐할 자들은 사악한 시온주의자들뿐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하마스의 야만적인 행동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변명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편 121:4).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라.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공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4:17).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8).
어찌하여 하나님은 홀로코스트와 하마스의 공격에 졸고 주무시고 계셨는가? 위 성경의 예언들은 과연 75년의 역사를 지닌 현대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것인가? 이스라엘은 의로운 나라인가? 유대인이 오늘날 이스라엘 국가를 형성하고 있음은 그들의 의로움 때문인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독립 국가를 세운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자비와 일반은총 덕분 아닌가?
급진 이슬람은 의심할 바 없는 악마적 존재들이다. 수백만 명의 무슬림은 하마스의 행동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이 자신들의 믿음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무슬림을 악마의 화신으로 여기지 않고도, 급진 이슬람이 얼마나 악마적인지 알 수 있다.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을 우상으로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을 향한 기독교인의 짝사랑을 폄하할 까닭이 없다. 그 사랑은 수 세기에 걸친 ‘기독교 반유대주의’를 일소하는 데 이바지했다. 신생국 이스라엘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사랑은 유대 민족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있다. 건강한 기독교 시온주의는 칭찬할 일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특히 가자지구 다수 시민들은 단순 희생자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그 지역 사람들은 참으로 빈곤하다. 그들이 결정적인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자기의 지도자를 잘못 선택하는 오판이었다. 한 차례 주어진 선거(2006)에서 유대 국가를 인정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지도자 대신 악마적인 하마스를 선출했다.
이스라엘은 가지지구를 봉쇄하고 고립시키고 있다. 물, 전기, 식량, 생활필수품을 차단하고 있다. 가자지구 인구 200만 명은 독 안에 든 쥐와 다르지 않은 신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들을 모조리 없애버리는 것을 기뻐할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수억 달러의 외부 지원이 빈곤 퇴치를 돕는 대신 무기와 군사용 터널 건설에 사용된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알고서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대한 반격을 가할 때, 유대인들에 대한 그들의 증오심은 더욱 고조되었을 것이다.
대량 학살은 답이 아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하마스의 공포정치 아래에서 고통받는 무고한 자들이다. 그들 가운데 기독교인들도 있을 것이고, 이스라엘에게 복을 빌어주는 신앙인들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가자 지구에 있는 2백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이스라엘 시민들만큼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현대 이스라엘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의 짝사랑은 하나님의 뜻에 불일치한다. 영적 전쟁은 실제적이다. 75년의 역사를 가진 이스라엘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맹목적인 짝사랑을 중단시키는 것은 일종의 영적 전쟁이다.
하나님은 잿더미에서도 아름다움을 이끌어내신다. 홀로코스트의 화장터에서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탄생시킨 것처럼, 고뇌, 비명, 공포, 피, 고통 속에서 아름다운 것을 가져오실 수 있다. 평화를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자비와 신속한 개입을 기도하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손에 손잡고 평화를 노래하는 날을 기대하자.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자.
예수 그리스도 시대까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사와 직결돼 있다. 그 이스라엘이 없는 하나님의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독교인이 이스라엘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것에는 잘못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이 이스라엘만 편드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 모두를 사랑하신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미국인을 사랑하듯,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 모두를 사랑하신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최덕성 박사. ⓒ크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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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