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늘만큼 감사합니다.” (2005년 두 간호사가 소록도를 떠나며 쓴 편지)
‘소록도 천사’로 불리며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약 39년 동안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던 마르가리타(마가렛) 피사레크(한국명 백수선·사진) 간호사가 선종했다. 향년 88세.
2일 천주교광주대교구와 고흥군 등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달 29일 오후 3시 15분(현지 시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한 병원에서 대퇴골 골절수술을 받던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2005년 11월 오스트리아로 귀국한 그는 요양원에서 지내던 중 지난달 27일 넘어지면서 부상을 입어 수술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폴란드 태생으로 오스트리아 국적을 가진 고인은 1955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간호학교를 졸업한 뒤 1966년 구호단체 다미안재단을 통해 소록도에 파견됐다. 그는 1962년부터 소록도 봉사를 시작한 마리아네(마리안느) 스퇴거 간호사(한국명 고지선·89)와 함께 헌신적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다.
한국인 의사들도 한센인과의 접촉을 꺼리던 시절 고인은 환자들을 직접 소독하고 고름을 닦아내며 치료를 도왔다. 환자들은 감사와 존경의 뜻을 담아 ‘마가렛’ 또는 ‘수녀님’이라고 불렀지만 고인은 ‘작은 할매’라는 애칭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고인은 나이가 들고 건강이 악화되자 ‘소록도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취지의 편지를 남기고 ‘큰 할매’ 로 불렸던 스퇴거 간호사와 함께 2005년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고인은 귀국 후 단기 치매 증상을 겪었지만 소록도에서의 삶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또렷하게 기억했다고 한다. 스퇴거 간호사 역시 몸이 좋지 않아 현재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두 간호사에게 1972년 국민훈장, 1983년 대통령표창,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여했다. 국립소록도병원은 그들이 살던 집을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집’으로 명명하며 보존하고 있다.
고인의 선종 소식에 소록도 사람들은 슬픔에 잠겼다. 소록도 성당 신자 약 110명은 이달 말까지 매일 추모기도회를 갖기로 했다. 박형석 소록도 자치회장은 “한센인은 일반인보다 용기와 강건함이 두 배 이상 많아야 한다는 간호사님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고 회상했다. 각계의 추모 메시지도 발표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1일 페이스북을 통해 “가장 낮은 곳에서 봉사하는 삶을 사셨던 고인의 삶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고인의 장례식은 7일(현지 시간) 인스브루크의 한 성당에서 열린다. 시신은 고인의 뜻에 따라 인스브루크 의대에 기증된다.
고흥=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