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정하 장로 묘소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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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기억하는 사람과 잊는 사람”.
요즘 저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죠. 아쉬울 때는 그렇게 도와달라고 하고 살려달라고 하다가, 나중에 일이 끝나고 나면 확 돌아버리는 사람을 볼 때 말이죠.
저는 원래 빚을 한 번 지면 10배로 갚는 사람이고 절대 받은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그렇게 자기를 키워주고 은혜를 베풀어준 스승을 나 몰라라 하고 배은망덕한 일도 보지 않습니까? 그런 일을 겪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고 박정하 장로 묘소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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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총회와 교계를 섬기면서 제게 힘이 있을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생매장이 되어갈 사람들이 와서 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얼마나 통사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면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도와 드렸지요.
그런데 그런 일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돌아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세월이 흘러 교권을 가진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옛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참 마음이 씁쓸합니다. 하긴 제 자신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총회 기간 중에 저를 총회장으로 만들고 천국에 가신 고 박정하 장로님 묘소를 한 번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한동안 우리 총회가 너무 어수선할 때 저는 교단을 옮겨버릴까도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랬는데 그때 그분이 나서서 교단법을 고쳐서 57세에 저를 부총회장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57세에 부총회장이 되고 만 58세에 총회장이 되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가셨습니다.
▲고 문정남 장로 묘소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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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러번 그분이 잠들어 있는 묘소를 찾아가 꽃다발을 헌화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묘소를 한 번 찾아갈까 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제가 아쉬워하자 옆에 있는 분들이 “그러지 말고 차라리 그 분 기일 때 찾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은 잊지 않았지만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똑같은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언젠가는 한 번 꽃다발을 들고 묘소에 찾아가려고 합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기억을 해야 합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할 뿐 아니라 잘못을 기억하고 뉘우쳐야 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가면 유대인들보다 독일인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지난 과거를 잊지 않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고 문정남 장로 묘소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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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대통령께서 추석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이걸 저는 먼저 김현숙 권사님께 보내 드렸습니다. 저를 그렇게 사랑해 주신 고 문정남 장로님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대전에 갔을 때 대전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문 장로님 묘소라도 찾아갔어야 되는데 가지를 못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한 번은 날을 잡아서 문 장로님 묘소도 찾아가고 박정하 장로님 묘소도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저다운 삶이고 소 목사다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고, 힘을 가질수록 목에 힘을 빼고 더 겸손하고 더 많이 안고 품겠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베푼 사람을 끝까지 기억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108회 총회에서 소강석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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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