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혐의 등으로 국방부 검찰단에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국방부 중앙지역군사법원은 1일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고, 지금까지의 수사 진행 경과, 피의자가 향후 군 수사 절차 내에서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다짐하는 점, 피의자의 방어권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현 단계에선 증거 인멸 내지 도망의 염려 및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군사법원은 이날 앞서 오후 1시 반부터 박 대령에 대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진행했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인 만큼 구속영장 발부 여부가 이날 밤늦게 결정될 것이란 관측도 나왔지만 군사법원은 5시간여 만인 오후 6시 45분 기각 결정을 내렸다. 박 대령은 구속영장 기각 직후 군사법원에서 나와 “감사하다. 수사와 재판에 성실히 임해 내 억울함을 규명하겠다. 특히 채 상병에게 억울함이 없도록 수사가 잘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전날 박 대령이 계속 수사를 거부하고 있는 데다 사안이 중대하고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지난달 30일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軍법원 “박정훈 항명혐의 방어권 보장 필요”
前 해병대 수사단장 영장기각
軍법원 “증거인멸-도주 우려 없어”
軍검찰 당혹… “법-원칙따라 수사”
중앙지역군사법원 앞에서 군 검찰로부터 강제 구인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이날 오전 9시 40분쯤 박 대령이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국방부 후문 인근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해도 군 내부에선 구속영장 발부가 유력하다고 보는 분위기였다. 당초 국방부 검찰단이 증거 인멸 등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박 대령이 이날 영장실질심사에 늦게 출석하면서 도주 우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 것.
이날 박 대령에 대한 구속영장실질심사는 오전 10시부터 국방부 영내 군사법원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박 대령은 군사법원 출입 방법을 둘러싸고 국방부 검찰단과 실랑이 끝에 낮 12시가 넘어 강제 구인됐다. 박 대령 측이 국방부 영내를 거쳐 법원에 들어가지 않고 국방부 외부에서 법원으로 바로 연결되는 ‘영외 출입문’을 이용하겠다고 하면서 마찰이 빚어진 것. 이에 결국 박 대령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오후 1시 반에야 시작됐다.
오후 6시 45분, 예상과 달리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국방부 검찰단과 국방부에선 당황한 기색이 감지됐다. 군 내부에선 “박 대령이 구속될 경우 박 대령에 대한 지지세가 확장되고 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현 정부에 대한 여론이 더 악화될 것을 우려한 결정이지 않겠느냐”는 해석도 나왔다. 일각에선 “군사법원이 정치적 부담을 떠안지 않으려는 것”이란 의견이 나왔다.
국방부 검찰단은 입장문을 내고 “군사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피의자(박 대령)가 성실하게 수사받겠다고 한 만큼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령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에 대한 항명 혐의 외에도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 대한 상관 명예훼손 혐의도 받고 있다. 이날 구속영장 기각으로 이 장관과 김 사령관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