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인공지능과 인공신앙의 총회? < 논단 < 오피니언 < 기사본문



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
윤희원 목사​​​​​​​

​​​​​​​(전주효성교회)


제108회 총회를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에서 총회가 최고의 의결기관이고 치리회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를 묻고 싶다. 김수영 시인은 <거대한 뿌리>라는 시에서 “전통이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시어처럼 제107회의 총회는 제106회 이전의 총회를 그리워하게 한다. 제발 우리는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세상이 아무리 인공지능(知能)화 되어도 교회만큼은, 우리의 신앙만큼은 인공신앙(信仰)화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불길한 조짐이 107회기에 두드러지고 있다.


총회의 총대 파송은 전적으로 그 노회에 있다. 그리고 정 노회원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면 천서위원은 총대로 천서해야 한다. 그런데 노회가 총대로 파송해도 세례교인헌금을 총회에 납부하지 않은 교회의 목사, 장로를 수년 전부터 천서 제한하더니, 아예 올해는 연금을 가입하지 않은 목사 총대, 또 기금을 내지 아니한 교회의 장로 총대를 천서 제한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총회가 결의(?)했다는 이유로 노회의 파송 총대 문제에 대해 헌법을 어기는 파행을 한다. 총회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빠르게 디지털화 되어 가고 있다.


더욱더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일을 했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가상의 이야기지만 내가 사는 전북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금번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에서 어느 자동차학원이 그 학원의 선전을 위해서 경찰청장 명의와 도로교통공단 이사장과 학원장의 이름으로 면허시험 수석, 차석, 차차석, 그리고 코스 시험과 주행시험의 최우수자를 선정해 시상했다. 이런 학원이 있다고 자랑해야 할까, 아니면 수치스럽고 부끄럽게 여겨야 할까?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그리고 참 잘했다고 칭찬을 듣는다면 그것은 완전히 비정상이다. 왜냐하면 운전면허 시험은 자격취득의 시험이지, 합격자를 성적순으로 몇 등까지 합격시키는 시험이 아니다. 그런데 등수를 매겨서 수석, 차석을 가려 놓았으니 이게 정상적인 일은 아니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가? 우리와 총회가 너무나 빠르게 디지털화 되어 가기에 생기는 일이다. 아날로그적인 생각은 없고 디지털화된 정보만 가지고 일을 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적인 생각은 지식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지식은 지혜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디지털화 된 정보는 지식이 아닌 정보이기에 지식이나 지혜가 없어도 쉽게 처리해 버린다. 


사라지는 것은 정보이지 지식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우울하다. 디지털 사회에서 아날로그적인 우울함이 무슨 필요가 있냐고 물어도 김수영 시인의 말처럼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 우울한 시대가 파라다이스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김수영 시인의 ‘풀’이라는 유명한 시가 있다. 개작하여 몇 구절 써보면 “총회보다 늦게 가도/ 총회보다 먼저 가고// 총회보다 늦게 울어도/ 총회보다 먼저 웃는다”고 해야 한다. 그래야 목사인 것 같다. 


그런데 인공지능이나, 신앙으로는 이 우울함을 알 수 없다. 사실상 인공지능은 철학적으로 의미 지평이라는 세계에서 빅데이터로 절대적인 앎인 듯한 인상을 풍기지만, 그 절대적인 앎으로 가장된 정보는 아주 쉽게 도구화되거나 아니면 소멸된다. 마찬가지로 인공신앙이 빅데이터로 구축하고 바꾸려 하는 틀은 기분의 교체나 감정의 교체로 개연성은 있으나 필연성은 없다.


그런데 수차례 총회의 결의를 보면 개연성의 결의만 하지 인공신앙의 작태를 버리고 필연적이고 성경적 개혁신앙의 결의를 하지 못하는 것을 봤다. 인공신앙은 보아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하고 사는 것을 미덕이라고 한다. 사도가 말한 ‘믿음에 덕’은 이런 미덕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데이터와 정보가 된 인공지능 속에는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역시 인공신앙 속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의 근본으로서 지혜는 없다.


제108회 총회가 인공지능과 인공신앙으로 디지털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총회는 상식과 지식을 철저히 무시하고 정보처리의 기능만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총대로서 총회의 결의에 따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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