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줄 알았던 노숙자 인생, 위대한 장애인 사역 빚어내다 < 목회현장 < 목회 < 기사본문



정읍선교교회 성도들과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해외선교 사역을 펼치는 모습.
정읍선교교회 성도들과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해외선교 사역을 펼치는 모습.


시련이 그를 노숙자로 만들었다. IMF사태를 만나 사업이 크게 실패한 후 돌아갈 데를 찾지 못한 인생은 거리에 몸을 맡겨야 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질문은 많았지만 답은 없었다.


인천에서 처절한 좌절을 맛본 후 겨우겨우 자신을 추스르고 고향 정읍으로 내려왔다. 신앙의 길을 붙잡고 매일 같이 울며 기도하는 시간이 반년 넘게 이어졌다. 상한 속을 다 토해내고, 대신 믿음으로 채워나가자 다시 무언가 해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이고 의욕이 생겼다.


그런데 자꾸만 눈에 밟히는 존재들이 있었다. IMF사태는 고향에도 많은 노숙자들을 만들어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이었지만 도저히 거울 속 자신과도 같은 그들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커다란 실패를 딛고 일어서 23년 동안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사역을 펼쳐온 문성하 목사.
커다란 실패를 딛고 일어서 23년 동안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사역을 펼쳐온 문성하 목사.


문성하 목사는 그렇게 노숙자들을 섬기는 일로 인생을 재개했다. 정읍시 신정동에 작은 쉼터를 만들어 ‘나눔의집’ 간판을 올린 후, 노숙자들을 먹이고 입히며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재활하도록 도왔다.


그 일이 5년 가까이 지속되는 사이 국가는 IMF 위기로부터 벗어났고, 많은 노숙자들이 하나 둘씩 일상으로 복귀했다. 센터를 찾는 이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문 목사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여전히 갈 곳 없는 장애인들이었다.


문성하 목사가 노숙자 쉼터로 시작한 정읍 나눔의집이 지금은 수많은 장애인들이 몸담는 공동체로 자라났다.
문성하 목사가 노숙자 쉼터로 시작한 정읍 나눔의집이 지금은 수많은 장애인들이 몸담는 공동체로 자라났다.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해, ‘나눔의집’은 장애인 시설로 전환됐다. 섬길 대상이 특화되니, 사역의 방향이 명확해졌다. 돌봐야 할 인원이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할 일은 많아졌다. 시설을 갖추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후원회를 결성하는 일 등. 무엇 하나 쉽게 해결되지 않았어도 문 목사의 마음은 즐거웠다. 꿈 때문이었다.


“나눔의집 초창기부터 분명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장애인들을 복음으로 인도하는 공동체, 더 이상 집안이나 시설에 갇혀있는 존재가 아니라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세워주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었죠.”


재가 장애인들을 그리스도의 품으로 인도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장애인여름성경학교.
재가 장애인들을 그리스도의 품으로 인도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장애인여름성경학교.


비전을 현실화하는 실마리가 되어준 것은 찬양이었다. 노숙자 사역을 하던 시절 초청을 받아 방문한 교회에서 열린 찬양집회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인지를 경험한 바 있었다. 그 놀라운 일을 나눔의집 가족들 힘으로 해보자며 도전에 나섰다.


비장애인들처럼 자유롭지 않은 심신으로 악기를 배우는 것,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지독히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다들 열심히 가르치고, 열심히 배웠다. 드디어 밴드가 만들어졌고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중증장애인들이 이루어내는 엄청난 에너지와 하모니에 객석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속적인 육성사업을 통해 나눔의집에서는 장애인 성악가, 장애인 소리꾼, 장애인 피아니스트, 장애인 기타리스트, 장애인 난타팀 등이 잇달아 배출됐다. 이들의 재능을 모아 2004년부터 ‘장애인과 함께 하는 열린음악회’가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됐고, 국내외를 순회하며 소외계층들의 가슴에 희망을 불어넣는 연주활동이 90회 넘게 이어졌다.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은 찬양사역과 문화사역을 통해 장애인들의 복음화와 재활에 큰 열매를 거두어왔다.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은 찬양사역과 문화사역을 통해 장애인들의 복음화와 재활에 큰 열매를 거두어왔다.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이루어낸 성과들은 나눔의집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장애인들 전체에 엄청난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장애아동재활치료기관, 장애인샘골야학교 등의 개설을 성사시켰다.


더 나아가 장애인UCC아카데미,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 같은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장애청소년 인디밴드도 결성됐다. 갈수록 늘어가는 인재들과 문화장르 그리고 후원그룹을 바탕으로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은 사단법인을 결성하고 안정된 사역 궤도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나눔의집 가족들도 점점 독립된 생활이 가능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취업이나 결혼 등으로 시설을 떠나 자립하는 사례가 계속해서 늘어났다.


신앙공동체의 비전은 정읍선교교회 설립으로 현실화됐다. 당초 ‘정읍선교교회’는 인천에서 큰 상처를 입고 내려온 문성하 목사를 회복시켜 세상으로 돌려보내준 교회의 이름이었다. 그 고마운 기억을 잊지 않았던 문 목사는 어느 날 교회명칭을 개명했다는 소식에, 직접 담임목사를 찾아가 허락을 받고 이름을 물려받았다.


정읍선교교회는 나눔의집 출신의 역대 가족들과,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을 통해 유입된 이들을 중심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예배와 찬양사역은 물론이고, 매년 개최하는 여름성경학교를 통해 장애인 복음화에 최선을 다한다.


조직교회로 발돋움한 정읍선교교회는 문성하 목사가 올해 정읍기독교연합회 회장과 전북서노회 부노회장을 맡으며 지역교계와 이웃교회들을 돌보는 역할까지 감당하는 중이다. 이것이 지난 23년 동안 온갖 희노애락이 교차한 시간들을 요약한 기록이다.


시련이 그를 목회자로 만들었다. 실패한 줄 알았던 인생은 세상을 치유하고 희망을 불어넣는 존재로 거듭났다. 문성하 목사와 그의 동역자들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스토리는 이 시간에도 흥미진진하게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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