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서 불법 입양 알선 활개
‘도움이 필요한 미혼모를 돕습니다.’
23일 오전 한 메신저의 오픈채팅방 제목이었다. 채팅방에 들어가자 개설자는 “도움이 필요한 미혼모와 함께한다”며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본보 기자가 미혼모를 가장해 “생후 10개월 된 딸이 있다”고 하자 금세 본색을 드러냈다. 개설자는 “별도 기관을 통하지 않고 입양을 원하는 가정과 직접 연계해 입양을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현행법상 지정된 기관을 통하지 않고 입양을 알선하는 건 명백한 불법이다. 이어 “출생신고가 돼 있느냐”고 물었다. “안 돼 있다”고 하자 “아동 단독으로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고 후견인이 되는 방식으로 입양을 진행할 수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안했다.
● “미혼모 돕고 싶다” 접근 입양 브로커 활개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안 된 영유아가 2015∼2022년 2236명 발견된 가운데 온라인에서 손쉽게 신생아 불법 거래가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미혼모는 ‘입양 보내고 싶어요’라는 제목이 달린 오픈채팅방에서 불법 입양을 시도하고 있었다. ‘난임·불임이신 분’ ‘성별 여야’ ‘6월 출산 예정’이란 해시태그도 달렸다. 말을 걸자 “27일 출산 예정인데 출산 직후 아이를 넘겨줄 수 있다”고 했다. 또 “사례금으로 100만 원 정도를 원한다”고도 했다. 경제적 대가가 오가는 개인 입양의 경우 아동복지법상 아동매매로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불법 입양 수요를 가늠하기 위해 기자가 미혼모를 가장해 오픈채팅방을 개설하자 1분 만에 “아이를 데려가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자신을 30대 난임 부부라고 밝힌 채팅방 참가자는 “다섯 살짜리 아들이 있어 딸이어야 한다”며 아이 성별을 확인한 후 “출생신고가 안 된 게 맞으면 내가 출생신고를 하겠다”고 했다. 처음부터 자신이 낳은 것처럼 출생신고를 하고 키우겠다는 것이다. 다른 참여자는 “미신고 아이를 가정에 데려오려면 500만 원 정도 내야 하는 것으로 안다”며 “그만큼 사례금을 지급할 테니 대신 아이 관련 연락을 일절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도 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 관계자는 “2015∼2022년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동 중 친모가 출생신고를 안 한 경우는 1045명”이라며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2236명 중 수백 명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상에서 불법으로 입양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수원 냉장고 영아 친모 구속
한편 경기 수원시 자택 냉장고에 자신이 출산한 두 아이를 4, 5년 동안 보관했던 30대 여성 고모 씨는 23일 영장실질심사 출석을 포기한 후 구속됐다. 수원지법 차진석 영장전담부장판사는 “피의자의 범죄 혐의가 소명됐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출산 사실을 몰랐다”고 했던 고 씨의 남편이 범행에 가담했는지도 수사 중이다. 본보 취재에 따르면 고 씨가 2018년 넷째 딸과 2019년 다섯째 아들을 낳은 후 아내의 퇴원서에 남편이 서명한 정황이 확인됐다.
이날 수원에서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 2명이 추가로 확인됐다. 수원시 등에 따르면 이 중 한 명은 베이비박스를 거쳐 아동시설에서 자라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은 친모인 외국인 여성과 함께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수원=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수원=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