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욕심내며 살지 말고 하루하루 즐기면서 살 걸 그랬어요.”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 암 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고 죽음을 마주한 환자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욕심은 딱 하나다. 남은 시간 어떻게 더 가족들과 최선을 다해 사랑할 것인가.
지난 2019년,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고 이관희 집사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 <교회오빠>로 관객들의 가슴을 울렸던 이호경 감독이 또다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작품으로 돌아왔다.
이 감독의 후속작 <울지마 엄마>는 죽음을 앞둔 4기 암 엄마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위암 4기 판정을 받는 감독의 친누나 이야기로 시작한다. 누나와 함께 암 환자들이 건강 정보를 교류하며 교제하는 커뮤니티를 찾아간 감독은 그곳에서 어린 자녀를 둔 말기 암 엄마들을 만나 그들의 삶으로 들어간다.
고 김정화 씨는 대장암 4기 진단을 받고 오로지 남편과 하나뿐인 아들과 하루라도 더 함께 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은 두 딸의 엄마 고 김현정 씨는 딸들에게 누워있는 모습이 아닌 교단에 선 엄마로 기억되고 싶어 온몸에 암이 퍼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복직 결정을 하며 마지막까지 일상을 지키려 힘쓴다. 그리고 자신도 위암 4기의 환자이면서 암 환자 커뮤니티에서 무료 상담을 한 고 정우철 씨 역시 어린 아들을 둔 아버지였다.
세 사람의 이름 앞에 고인이라는 수식이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기적을 그리지 않는다. 카메라는 오랜 기간 이들의 모습을 따라가며 특별한 장치 없이 말기 암 환자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기적은 없지만 절망뿐이던 삶에는 조금씩 소망이 찾아온다. 암 4기 진단을 받은 직후 “하나님, 아이들이 클 때까지만 제발 시간을 좀 더 주세요”라며 기적을 바라던 이들의 기도제목은 시간이 지날수록 “새 학기까지만이라도 아이들 곁에 있고 싶어요”는 작은 바람으로, 마지막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족들과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는 소망으로 점차 바뀌어 간다. 처음에는 “왜 하필 내가 이런 암에 걸렸지?”라며 현실을 부정하던 마음도 자신의 죽음을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남은 가족들을 향한 기대로 채워진다.
<울지마 엄마>에서 암으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은 모두 기독교인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가족들의 마음을 지켜줄 것을 기도하며 신앙 안에서 용기와 사랑을 찾는다.
한편, 이별의 슬픔과 어둠으로 끝난 것 같던 영화는 남은 가족들이 슬픔을 딛고 일상으로 돌아가 빈자리를 채워가는 모습으로 다시 소망을 비춘다.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리며 엄마가 읽어주던 동화책에 동생과 함께 귀기울이던 언니는 이제 엄마를 대신해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는 어엿한 초등학생이 됐다. 아내가 떠난 뒤 홀로 아들을 키우게 된 아버지는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마주하며 미소를 되찾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전하는 가족의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 가정의 달의 끝에서 다시 한번 가족들을 향한 고마움을 전하는 기회를 마련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