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쓰임 받는 한 사람의 힘은 대단하다. 세계선교 역사에는 그런 일꾼들이 많았고, 지금도 그 한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있다. 아이티에서 사역하고 있는 정광 선교사(GMS)도 그중 하나다.
미국 이민 1.5세인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꽤 잘나가는 건축회사 사장이었다. 2010년 아이티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 도울 일이 있을 거란 지인의 권유로 처음 아이티를 찾았다. 그 후 수년간 미국과 아이티를 오가며 건축 선교를 하는 가운데, 오지인 모이 지역을 알게 됐다. 문명과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주민이 4만명이나 살고 있었는데, 우연찮게도 그곳은 아이티에서 부두교 집단 거주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 그만 두고 미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였어요. 마지막으로 일주일 여행한다는 생각으로 시골로 차를 몰고 가다가 모이 지역까지 가게 된 거죠.”
높은 산과 계곡이 있는 그곳은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주민들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헐벗은 아이들은 고사리손으로 돌 깨는 일을 했고, 병원 한번 가지 못하고 죽는 아이들이 즐비했다. 어른이라고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남자들은 마약에 중독되고 술에 찌들어 삶에 희망이 없었다. 거기에 더해 영적으로는 부두교 주술사들에 매여 있었다.
그 후로 정 선교사는 모이 지역을 지속적으로 방문하게 됐고, 이내 그곳에서 살기로 다짐했다. 무엇보다 가난 속에 학대받는 아이들의 눈에 걸렸고, 부두교에 얽매여 살아가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기도 끝에 캘리포니아에 있는 사업체를 정리하고, 집도 아이티와 가까운 플로리다로 이사했다. 자비를 들여 3에이커의 땅을 사고 예배당 겸 학교로 사용할 커뮤니티센터를 짓기 시작했다. 처음 담장을 쌓을 때 홀홀단신 센터 터 위에 텐트를 치고 숙식을 해결했다. 얼마 후에 현지인들이 사는 집에 거처를 구했는데, 거처라고 해야 바닥은 흙바닥이고, 비와 햇빛만 겨우 피할 수 있는 한 평 남짓의 토굴집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1년 가까이를 살았다.
“센터를 짓기 전에 먼저 주민들을 위해 산꼭대기에 작은 댐을 만들고, 그 물이 아래로 흘러오게 수로도 지었어요. 그동안은 물이 없어 농사를 못 지었거든요. 수로를 지은 후에 센터를 짓기 시작했죠.”
지금도 후원 개발에 별다른 재능이 없는 정 선교사는 댐과 수로 공사, 그리고 센터 공사비를 거의 대부분 자비량으로 감당했다. 이 때문에 아내는 결혼 후 처음으로 일자리를 구해야 했고, 의대에 다니던 딸은 학비가 부족해 중도에 공부를 그만둬야 했다.
“선교를 시작할 때 자꾸만 성경 속 부자 청년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선교를 못 한다 생각했죠. 그래서 아내에게 ‘우리 한번 거지가 되자’고 말했고, 그렇게 선교를 시작했어요.”
부두교 주술사들의 수많은 저주와 위협 가운데 센터를 완공한 이야기며, 센터 지붕에 십자가를 세우던 날 주술사들이 제물 피를 뿌리던 고목이 쪼개져 주술사들이 깊은 산속으로 쫓겨난 이야기며, 현지 갱들에게 납치당했던 이야기며 정 선교사의 지난 10여 년은 곳곳이 눈물겹고 감동이다.
“우리 초등학교에 155명이 다니는데, 점심 한 끼 먹으려고 산 넘고 물 건너 오는 아이들이 많아요. 전액 무료인데, 아이들이 너무 많이 와서 지금 2층으로 건물을 올리고 있어요.”
최근 한국을 찾은 정 선교사는 한국교회에 아이티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를 요청했다. “대지진에 이어 최근 발생한 내란으로 주민들이 눈물 마를 날이 없어요. 정세가 빨리 안정되고, 또 하나님을 아는 리더들이 많이 세워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답이 없는 나라예요. 아이티를 기억해주시고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