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크리스천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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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상임대표 김영한 박사, 이하 샬롬나비)이 어린이날 논평을 통해 “어린이에 대한 소중한 선물은 자연환경을 통한 생명교육과 예수님을 통한 영적생명교육”이라고 했다.
샬롬나비는 3일 “다음 세대인 자녀들로부터 미래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에 5월은 ‘자연과 신앙’에 대해 우리를 지혜롭게 해 준다. 유독 어린이날이 그렇다”며 “어린이 교육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관계 그리고 소망’은 어린이의 미래를 향한 새 출발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여생을 바라보는 사고의 틀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샬롬나비는 “어린이날만은 어린이나 부모 어른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긴장하게 한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국가사회나 지구촌 환경이 온통 허점투성이라는 좌표가 찍혀 있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깊은 묵상과 함께 어린이날, 어린이에게 주어야 할 최고의 선물이 무엇이어야 할까? 단순히 먹고 마시고 싶어 하는 것들을 사주거나, 원하는 스마트폰을 바꿔주는 정도의 선물 고르기에서 벗어나 먼 장래를 고심하며 긴급한 선물이어야 한다”고 했다.
샬롬나비는 “오늘날 어린이들의 교육환경은 스마트폰, 마약, 학폭, 성 범죄 등으로 오염된 환경”이라며 “어린이나 청소년, 어른 할 것 없이 온라인 세계 속에 범람하는 온갖 정보들을 폭식하며 심각한 영혼의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만일 어린이들의 불평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오염된 작금의 환경을 방치하고 간과한다면 죄악의 뿌리는 우후죽순처럼 자라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부모 어른들은 자기 욕심과 자기 기준, 자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듯 어린이를 자기 뜻에 맞게 미래 설계를 대신해주려 억지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린이에게 물질적, 지식적이며 즉흥적인 정보들을 많이 충족시켜 주어야만 칭찬받는 부모, 자랑스러운 선생, 자상한 어른이라고 착각하며 그것이 잘하는 교육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어른들 기준 아닌 어린아이에 맞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어린이들이 과연 참자유와 행복을 만끽할 만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가? 혹시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해 소영웅주의에 편승한 나머지 획일화와 추종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며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래에는 고통의 뿌리가 될 수 있는 선물들이 주변에 너무나 많다. 획일화와 추종화 아닌 어린이들의 인생 존중과 순수함 가운데 자라나게 함이 요청된다”고 했다.
또 “인간 자신에게 있어서는 본래적 속성인 인간성 파괴와 비인간화나 비도덕화의 아미노적 현상, 그리고 자연 생태계 훼손과 파괴, 그 대가로 인한 인간 실존의 터전과 가치를 위협하는 상황이 우리 앞에 직면해 있다”며 “생존하는 삶의 환경 개혁과 함께 지성, 덕성, 경건을 배양할 교육의 내용은 물론 지식의 형성 과정인 인식론, 자연의 원리와 과학적 방법에 근거한 것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린이들을 중독성에 젖게 하는 요인은 없는가를 총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샬롬나비는 “자연은 마음을 살린다. 어린이에게 자연환경을 통한 생명 교육, 인성 교육을 하자”고 했으며 “어린이에게 줄 수 있고 반드시 주어야 하는 최고의 선물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생명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말씀으로 양육될 수 있다면 참다운 행복과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
어린이에 대한 소중한 선물은 자연환경을 통한 생명교육과 예수님을 통한 영적생명교육이다.
부모 세대는 어린이들이 소비중심사회의 스마트기기 환경에 중독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자연적으로 보면 신록이 짙어가는 5월은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달이다. 누구나가 새롭게 변화될 것을 기대하며 푸르름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인 자녀들로부터 미래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에 5월은 ‘자연과 신앙’에 대해 우리를 지혜롭게 해 준다. 유독 어린이날이 그렇다. 어린이 교육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관계 그리고 소망’은 어린이의 미래를 향한 새 출발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여생을 바라보는 사고의 틀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 때문이다. 이 소중한 절기에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에게 주어야 할 가장 크고 유익한 선물은 무엇일까? 연중 많은 절기와 기념일들이 줄줄이 이어지지만, 어린이날만은 어린이나 부모 어른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긴장하게 한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국가사회나 지구촌 환경이 온통 허점투성이라는 좌표가 찍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깊은 묵상과 함께 어린이날, 어린이에게 주어야 할 최고의 선물이 무엇이어야 할까? 단순히 먹고 마시고 싶어 하는 것들을 사주거나, 원하는 스마트폰을 바꿔주는 정도의 선물 고르기에서 벗어나 먼 장래를 고심하며 긴급한 선물이어야 한다. 101회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샬롬나비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자연환경 교육과 신앙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다음 메시지를 발표하고자 한다.
1. 오늘날 어린이들의 교육환경은 스마트폰, 마약, 학폭, 성 범죄 등으로 오염된 환경이다.
정치가나 교육자나 학부모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는 국제화, 세계화, 정보화의 기치를 내걸고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자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그들의 꿈을 질식시켜 버릴 정도로 심각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린이나 청소년, 어른 할 것 없이 온라인 세계 속에 범람하는 온갖 정보들을 폭식하며 심각한 영혼의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린이들이 스마트폰과 음란물에 노출되어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청소년들에게는 마약, 학폭, 성범죄 등 악마의 손길이 깊숙이 침투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환경은 어린이 성장의 방향과 목적 상실, 불안과 고독의 스트레스 그리고 마침내는 고립화와 무기력 상태에까지 빠지게 만든다. 정보 선택 과잉으로 심신은 약화 되고 스스로는 아무런 결정도 할 수 없는 어린이, 청소년이 될 위험성이 높다. 이것이 생명 경시 사회이며 죽음의 도시 교육환경이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질병 앓음인지를 자각하지 못한다면 결코 어린이들을 현명하게 성장시키지 못한다. 만일 어린이들의 불평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오염된 작금의 환경을 방치하고 간과한다면 죄악의 뿌리는 우후죽순처럼 자라날 것이다. 콘크리트 빌딩과 불순한 광고물로 둘러싸인 도시 환경은 어린이들에게 생명의 싹이 트는 것을 가로막는 구조이다.
2. 어린이는 다음 세대의 주역이다. 어른들 기준 아닌 어린아이에 맞는 교육이 중요하다.
어린이날은 상업적 휴일이 되어 버려서는 안된다. 어린이날은 다른 휴일과는 달리 어린이를 위한 날이 되어야 한다. 심각한 것은 인간의 자정능력에 한계점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한계 없는 자유의 방종과 절제 없는 소비 시대에서 ‘생각을 잃어버린’ 어린이가 양육되고 있다. 부모 어른들은 자기 욕심과 자기 기준, 자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듯 어린이를 자기 뜻에 맞게 미래 설계를 대신해주려 억지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린이에게 물질적, 지식적이며 즉흥적인 정보들을 많이 충족시켜 주어야만 칭찬받는 부모, 자랑스러운 선생, 자상한 어른이라고 착각하며 그것이 잘하는 교육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부모와 기성세대에 맞추는 교육이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필요로 한 교육과 환경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해보아야 한다.
3. 획일화와 추종화 아닌 어린이들의 인생 존중과 순수함 가운데 자라나게 함이 요청된다.
어린이날, 어린이에 관한 많은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지금의 어린이들이 과연 참자유와 행복을 만끽할 만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가? 아이들이 처한 현재 상황이 어둠과 좌절의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해 소영웅주의에 편승한 나머지 획일화와 추종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린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먹게 해주고,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을 갖게 해 주는 욕망의 충족이 행복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린이날이 되면 어른들은 의례적으로 선물을 건네며 격려한다. 그러나 한 번쯤 어린이들에 대한 선물이 과연 순수한 기쁨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래에는 고통의 뿌리가 될 수 있는 선물들이 주변에 너무나 많다. 먼 훗날 어린이 인생 자체를 초라하게 만들 수 있는 중독성 있는 것들이다.
4. 인간성 파괴와 비인간화나 비도덕화의 아미노적 현상에서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오늘의 다원화된 현대사회가 인간의 이성 중심적 주지주의 교육에 힘입어 가시적이며 물질 중심적인 현란한 과학 문명과 기계 기술을 꽃 피워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의 소재인 이성과 기술이 가져온 역기능에 의한 갈등이 초래되고 있음을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인간 자신에게 있어서는 본래적 속성인 인간성 파괴와 비인간화나 비도덕화의 아미노적 현상, 그리고 자연 생태계 훼손과 파괴, 그 대가로 인한 인간 실존의 터전과 가치를 위협하는 상황이 우리 앞에 직면해 있다. 이런 환경과 원인 가운데 이루어지는 물질주의 교육은 당연히 실패할 것이라고 정의할 때, 굴절된 현대인의 의식 구조로부터 도덕성 위기 극복과 새로운 인간성 회복은 가장 절실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몽상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심각하게 자각하는 어른이 그리 많지 않고, 이를 말리거나 대세를 거스를 수 있는 지혜를 구하는 부모도 많지 않다면 그것은 슬픈 일이다. 인간성의 회복과 생명 존중 의식, 나아가서, 생존하는 삶의 환경 개혁과 함께 지성, 덕성, 경건을 배양할 교육의 내용은 물론 지식의 형성 과정인 인식론, 자연의 원리와 과학적 방법에 근거한 것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린이들을 중독성에 젖게 하는 요인은 없는가를 총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5. 올바른 가치관 교육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전부가 궁금증의 연속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마치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생명을 얻고 처음 직면한 자연 세계를 바라보며 느꼈을 그 신비한 아름다움과 호기심으로 마음이 설렜을 것 같은 느낌이다. 어린이들이 인생의 기초와 방향, 목표와 목적이 정립되지 않은 시절에 그와 같은 경험을 가져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린이 시절은 전 인생에서 새로운 감각과 지적 수용 능력이 그 어느 때 보다 왕성하고 민감한 시기이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어린이에게 지금 어떤 선물을 준비할 것인지에 대해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 관점에서 좋은 습관을 만들도록 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악습이 자란 이후에 그걸 스스로 바꾼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며 그것은 교육 현장과 어른 사회에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가장 올바른 좋은 가치관을 쌓게 해 주는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 세상 욕망과 가치관에 물들기 전에, 악습에 익숙해지기 전에, 자정력을 상실하기 전 좋은 선물로 주어져야 한다.
6. 자연은 마음을 살린다. 어린이에게 자연환경을 통한 생명 교육, 인성 교육을 하자.
자연은 어린이 마음을 살린다. 어린이들에게 자유롭고 자연 친화적인 사색의 놀이터가 사라진 지 오래다. 아이들이 디지털 통신기기를 끼고 살다 보니 밖으로 뛰어나가 도전과 모험을 시도해 보려 하지 않는다. 오늘날 디지털 자극이 넘쳐나다 보니 인간의 뇌는 이를 걸러내고 분류하느라 바쁘다. 도시 환경은 우리의 뇌를 실제로 변화시켜 불안, 감정 장애, 정신분열증 등의 발생 가능성을 높여 주고 있다. 이에 반해 자연은 도심의 거리나 컴퓨터 게임을 통해서 얻을 수 없는 새로운 감각들을 제공한다. 자연에서는 정보 선택의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뇌의 주의력 체계는 깊은 사유와 반성 같은 고차원적인 일에 더 매진할 수 있게 한다. 아이들에게 자연은 무한함과 영원함에 대해 접촉하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산과 들의 자연은 꽃과 나무, 곤충과 벌레, 새들에게서 생명의 근원을 찾고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생명이 저절로 혹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 깨달아도 훌륭한 자연 교육이다. 만약 지구와 달, 별을 구성하는 우주를 상상해 보게 한다면 더 없는 축복이 될 것이다. 생명의 신비와 인간의 존재 의미를 어린 시절 순수한 체험으로 갖게 될 때 차원이 다른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현대 기독교 교육의 창시자인 존 아모스 코메니우스는 현대 과학사상이 태동하던 시대적 상황에서 새로운 과학 정신과 자연의 원리들을 토대로 한 인간교육의 새로운 사상을 창안한 바 있다. 자연에 대한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관찰과 이해에 근거하여 자연을 대상화한 지식과 신을 지향하는 신앙을 교육 사상의 형이상학적 기반으로 삼았다. 그는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주지주의 교육과 다른 한편으로는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신본주의 교육을 통합하는 관점 즉, 지성과 신앙의 통합을 추구했다. 특히 코메니우스는 인간 영혼의 본질적 요소로서 세 가지 잠재력, 곧 ‘지성과 의지와 기억’에 초점을 맞춘다. 그중에서도 인간 의지력의 배양과 훈련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한다. 인간의 의지력은 만일 그것이 바르고 선한 것을 지향하여 건전한 즐거움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거짓된 것과 일치하며, 유용한 것 대신에 해로운 것들을 즐기면서 스스로 파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성장이 태어나서부터 환경을 둘레로 삼아 살아가는 삶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활동과 행위의 종합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람마다 독자적인 홀로의 삶도 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공동체적 생활을 피해 갈 수 없다. 인간이란 나날의 삶 속에 펼쳐지는 주관적이며 객관적인 순환의 과정에서 관계적이며 희망적인 성장과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존재다.
인간에게는 성장하고 변화되어 가는 일차적인 환경인 자연에서 교육과 성장의 모든 자원들을 찾을 수 있는 축복이 주어져 있다. 자연의 모든 사물에서 교육의 내용이 되는 다양한 지식을 얻어내고, 자연의 원리인 질서와 조화의 원리에서 그 지식 내용의 전달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특히 자연과 인간 간 유기적 병행 관계에서 자연의 모든 사물이 인간 속에 내면화되어 지식에 이르는 인식 과정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자연계의 순환적 변화원리에서 인간교육의 장인 학교 제도를 발견하고 인간교육의 목적 또한 자연의 숨결인 생명의 신비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이와 함께 자연으로 들어가야 한다.
7. 아이들을 행복도 높은 자연 환경 속에서 자라게 하자
브렛 맥크라켄은 그의 책 『지혜 피라미드』에서 한국에서 시행된 두 가지 연구에서 자연의 진정력(鎭靜力)을 보여주는 실질적인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 중독 어린이를 숲으로 보내 여행하게 한 뒤 검사해 보니 코티솔(cortisol, 급성 스트레스 반응 물질) 수치가 낮아지고, 행복지수가 올라가며, 불안도 낮아졌다는 것이다. 동양은 ‘치유의 숲’을 조성해 미디어와 스크린을 끼고 사는 디지털 유령들이 도시를 떠나 산책하고 산소를 마시며 삶을 추스르도록 돕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는 미국에서도 산림 요법, 의사들의 자연 처방전으로 야외에서 더 머물도록 권한다면서 자연이 이런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진정한 영적 현실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 머무를 때 가장 큰 평안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피조성을 보다 직접 느낄 때, 창조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더 깊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진리이다. 어린이들이 스크린 속 가상 세계에서 시간을 허비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는 곧 자연 결핍 장애아가 되고, 유년 시절 자연과 멀어지는 정도가 정신적, 육체적, 영적으로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야 한다.
8. 어린이에게 최고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어린이에게 줄 수 있고 반드시 주어야 하는 최고의 선물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물적 선물이나 자연적 선물보다는 영적 선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말씀으로 양육될 수 있다면 참다운 행복과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이는 성경이 보증하고 있는 바다. 한편으로는 자연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근원을 깨닫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영적 성장에 필요한 빛을 받게 된다면 어린아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선물이다.
예수께서는 친히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마19:1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막10:15)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예수님 말씀에 의지한다면 누구나 어린아이가 되어야 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는 어린이로, 어른은 다시 어린이로 되돌아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인간은 영적이고 관계적인 안정감을 하나의 교회에 정착해 뿌리내리고 책임을 다할 때 찾을 수 있다.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생의 숱한 변수들을 줄여서 어린이가 뿌리내리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땅의 경계를 구별해 주실 것이다. 어린 시절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고 거기에 집중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유한의 경계를 넘어서는 세계를 향하여 어린이들은 풍성한 창의력과 참자유의 의지를 실현하게 될 것이다.
9. 어린이 영적 성장의 시작점은 미래 아닌 지금 당장 어린이 시절이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어린이는 ‘미래 세대’ 또는 ‘다음 세대’라고 말한다. 어린이들은 기성세대들의 유산을 창조적으로 지탱해나갈 주역들이다. 우리에게 오늘은 하나님의 은혜로 씨를 뿌릴 수 있을 뿐이고, 미래는 오직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열매가 맺힐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나 어른 모두 어린이들과 함께 영원한 오늘의 세대이다. 현재의 주인공인 어린이들 마음에 진리의 씨를 뿌려주어야 한다. 오염된 세상과의 접촉점을 최소화하며 새로운 발광체를 제공해 주며 좋아하고 사랑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강제나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자각의 기회를 어린이 시절부터 갖게 하는 것만큼 교육에서 강조되어야 할 바는 없다. 천국 선물은 어린이 순수성을 지켜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2023년 5월 3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