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순이 나르샤’ 진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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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순이 나르샤.”
“새에덴의 꽃, 생명 / 순장들이 모인 은혜 넘치는 / 이 좋은 시간과 공간에 / 나를 택하여 주사 더 큰 사명으로 날아오 / 르게 하시니 더욱 주님 높이 섬기며 / 샤론의 꽃을 피우겠습니다.”
이건 지난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있었던 ‘새순이 나르샤’ 시간에 어느 순장이 저에게 보낸 ‘새순이 나르샤’로 지은 6행시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 순장은 ‘맨발의 소명자’로 6행시를 썼습니다.
“맨 처음 교회를 간 건 그저 예쁜 여학생 때문이었습니다. / 발치에 앉아 멀리 떨어져서 들은 제자 베드로의 배신 이야기에 / 의로운 분노가 타올랐습니다. ‘나라면 그렇게 배신 안 한다. 사내 대장부가 3년이나 따라 다녔으면서 배신을 하냐?’ / 소리치듯 내뱉은 마음의 소리에 / 명령이 내려오듯 제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 자녀로 삼아주시고 주님의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새순이 나르샤’ 진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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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순이 나르샤’라는 프로그램은 코로나 이후 소그룹과 생명순(구역)을 살리기 위한 중간 그룹의 모임이었습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00명에서 150명 단위로 교회 카페에서 교회 오빠인 담임목사와 교회 언니인 순장들과의 영적인 따뜻한 대화와 소통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겨우 교회를 유지하고 회복을 하였지만, 이제 코로나의 검은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 새로운 부흥과 성장을 이루어야 할 시기이지 않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순(구역)이 살아야 되고 생명순이 살기 위해서는 생명순장(구역장)들과의 긴밀한 소통과 관계성이 필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제가 먼저 격려의 메시지를 하고 성도들이 저에게 묻고 싶은 것을 엽서에 적어서 주면 그걸 일일이 다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어느 한 장도 가볍게 취급하지 않고 진솔하고 성심성의껏 일일이 다 대답을 해주니까, 그곳에 모인 성도들이 감동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후문에 의하면 가까이에서 단둘이 이야기하듯 그런 분위기였다는 것입니다.
▲‘새순이 나르샤’ 진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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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교구마다 직접 만든 선물을 저에게 전달을 하였습니다. 어떤 교구는 자신들이 직접 만든 케이크, 김밥, 저의 캐리커쳐와 제 시를 캘리그라피로 쓴 액자 등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어떤 교구에서는 저에게 노벨문학상을 준다고 메달을 만들어서 목에 걸어주기도 하였습니다. 또 다른 교구에서는 콩나물 꽃다발을 가지고 왔습니다. 새순이 콩나물처럼 막 자라라고 말입니다.
그런 후에 순장들과 함께 가수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를 개사해서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 그렇게 대단한 기대까지 바란 적 없다 생각했는데 / 그대 하나 떠나간 우리 교회 이제 그대 아님 채울 수 없소 /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성도로 만나 / 꿈을 꾸듯 새에덴을 이루고 / 주님의 은혜로 벅찼던 우리가 예배로 만나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그 모든 건 은혜이었음을….” 그리고 제가 마무리 축복기도를 하고 일일이 한 분 한 분 다 악수를 하였습니다.
▲‘새순이 나르샤’ 진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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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명이 넘는 순장들이 한꺼번에 모이면 그냥 하나의 집회로 끝났을텐데, 교회 카페에서 100명, 150명 단위로 모이니까 느낌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역시 작은 공간이 주는 분위기의 효과가 크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서로 작은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악수를 하며 아이컨택을 하니까 정말 가까이에서 단둘이 데이트(?)한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었겠죠.
이러기를 어떤 날은 하루에 몇 번씩 하니까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지만, 끝나고 잠시 누우면 진짜 순장들이 새순이 되어 날아오르는 환상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정말 콩나물 꽃다발처럼 생명순들이 쑥쑥 자라 오르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변함없이 교회 오빠인 담임목사를 응원하고 추앙하고 지지해준 교회 언니인 순장들이 너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 교회는 ‘새순이 나르샤’할 뿐만 아니라 ‘생명이 나르샤’하고 ‘부흥이 나르샤’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에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쓰고 불멸의 성장 신화를 쓰게 될 것입니다.
▲‘새순이 나르샤’ 진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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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