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우리 곁을 떠난 소중한 이들이 많습니다. 전주 초청교회를 개척해 사역하며, 총회고시부장과 전북신학교 이사장으로 헌신하던 중 별세한 고 이기봉 목사도 그 중 하나입니다. 고인의 1주기를 맞이해 아들 이강열 목사(더초청교회)가 추모의 마음 가득 담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리운 이들을 떠올리며, 서로 사랑과 위로를 나눌 수 있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아빠, 천국에서 행복하시죠?
아빠를 먼저 하나님 품으로 보낸 지 벌써 1년이 다 되가네요. 하루는 눈물로, 하루는 기도로, 하루는 슬픔으로, 하루는 감사로 그렇게 보내다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어요. 시간이 흐르면 아빠의 흔적이 점차 지워질 줄 알았는데, 하루하루 더 깊게 새겨지니 마음이 저며 와요. 목회를 할수록, 가정을 세워갈수록, 아빠의 빈자리가 어찌나 크게 느껴지는지…. 그럴 때마다 사무치게 보고 싶어요.
아빠, 그때 기억나요? 과로로 쓰러지셨다가 몸을 추스른 지 6개월도 되지 않아서 또 다시 이전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사역하셨잖아요. 그때 제가 너무 걱정돼서 따지듯 물었었죠. “아빠 죽으려고 사역해요? 그러다가 또 쓰러지면 사역 하고 싶어도 못하잖아요.” 그때 아빠가 “강열아, 이전에 폐병 걸려 죽을 인생 하나님께서 살려주셨잖아. 생명 주셨을 때, 죽도록 사명 감당해야지”라고 말씀하셨죠. 어린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화를 냈었죠.
코로나 감염으로 중환자실에서 수면치료 중인 아빠의 의식이 정상인지 체크하려고 잠시 깨웠을 때, 펜으로 아빠는 “초청교회로 보내주세요”라고 적었잖아요. 저라면 가족을 보게 해달라고 적었을 텐데, 가족을 찾기보다 교회를 먼저 찾던 아빠가 솔직히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가족과 성도 중 동시에 죽음이 오고가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 마음은 가족에게 가지만 몸은 성도에게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던 아빠말씀이 떠올랐어요. 그만큼 아빠가 성도들과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에 그저 눈물만 흘렸네요.
저도 아빠처럼, 예수님처럼 성도들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몸이 불편하신 중에도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성도가 귀하다며 그분 호떡집에 매일 출근하시고, 교인이 운영하는 식당과 가게만 가시려고 하셨죠. 성도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 대신 빚을 지시고, 곰팡이 난 반지하 사택을 보고 마음 아파하던 할아버지가 사주신 아파트는 하루도 살아보지 못하고 다른 성도를 위해 내어주기도 하셨죠. 성도들이 고생하며 낸 헌금은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아껴야 선교하고 교회 짓고 이웃도 섬길 수 있다고, 전등 끄고 다니시며 한 겨울에도 사택 보일러를 켜지 않으셨잖아요. “추우면 잠바 입고, 양말 신어라” 하시던 아빠가 참 지독하게 여겨졌는데, 이제야 그 마음을 조금 알겠어요.
제가 목회자가 되겠다고 말씀드렸던 날, 아빠가 저에게 조언해주셨잖아요. “아빠는 강열이가 목사님과 교회를 잘 섬기는 장로님 되면 좋겠는데, 진짜 이 길을 갈 거야? 갈 거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뒤돌아보면 안 돼! 아빠는 달란트도 능력도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행복하게 목회하네. 아빠는 강열이 믿어. 항상 기도하고 겸손하게 잘해봐.”
목사라서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아빠가 부러웠고, 자랑스러웠어요. 어쩌면 그래서 저도 이 길을 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아빠를 통해 믿음으로 걸어가는 길을 봐버렸거든요. 억울하다며 제가 분노할 때면 “강열아 기도해, 목사는 기도로 승부하는 거야” 하시던 아빠가 너무 그리워요. 고향 전주로 내려와 다음세대 위한 교회를 개척하면 좋겠다는 권면을 듣자마자, 제가 딱 잘라 거절하며 안 되는 이유를 말씀드렸었죠. 그때도 아빠는 “목사가 기도도 안하고 바로 말하니. 아빠도 기도하고 말하는 건데. 너도 먼저 기도해봐”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우리 가족의 영원한 봉, 하나님의 봉, 성도의 봉, 이기봉으로 살아 주셔서 감사해요. 아빠가 우리 아빠여서 하나님께 정말 감사해요. 은퇴 이후에야 여유를 누리겠다던 아빠의 뜻대로 되진 않았지만, 더 좋은 영원한 안식을 천국에서 누리고 계시죠? 저도 주신 사명 잘 감당하고 곧 갈게요. 우리 만나면, 아빠가 제일 좋아하시던 라면 같이 먹어요. 사랑해요, 내 사랑 기봉씨.
이강열 목사(더초청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