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체포동의안 부결 후 불거진 당 대표직 사퇴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가운데 친명(친이재명)계도 “이재명 사퇴 불가”를 주장하며 힘을 싣고 나섰다. 이날 친명계 강경파에선 이 대표 사퇴 여부를 ‘당 중앙위원회를 열거나 전(全) 당원 투표로 결정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개딸’ 등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를 빌려 비명(비이재명)계의 사퇴 요구를 저지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비명계는 “당 대표 본인도 참여하는 중앙위에서 자신의 사퇴를 논한다는 건 ‘꼼수’”라며 “또 ‘셀프 구제’ 논란을 일으킬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 친명계 “당의 중심은 의원 아닌 당원”
친명계 5선 중진 안민석 의원은 1일 CBS 라디오에서 “앞으로 이 대표 사퇴 요구가 더 거세세질 것”이라며 “당원들이 뽑은 당 대표이니 사퇴 여부는 당원들에게 물어보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 사퇴 요구와 또 다른 체포영장 청구가 왔을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런 문제는 이미 의원들이 결정하기에는 너무 위기 상황”이라며 “(의원) 개개인의 의견보다는 신속하게 중앙위를 소집해(하고) 당원 전원 투표로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했다. 중앙위 소집이나 당원투표를 통해 이 대표의 사퇴 여부 및 추가 체포동의안 요구에 대한 당론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
중앙위는 당의 대의기관이다. 당 대표를 포함해 원내대표, 최고위원, 사무총장 등 지도부 와 상임고문 및 전국위원회 위원장 등 800명 이내로 구성된다. 앞서 민주당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문제를 의원들만 참여하는 의원총회에서 논의해왔다. 의총에서 총의를 모으고도 예상보다 많은 이탈표가 나온만큼 이제 논의 주체가 중앙위가 돼야 한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전 당원 투표는 권리당원 전원을 대상으로 한 투표로, 권리당원이 직접 청구할 수 있다. 민주당은 앞서 지난 총선 때도 전 당원 투표를 활용해 비례 위성정당을 창당했고, 4·7 재·보궐선거 땐 서울·부산시장 후보 무공천 결정을 뒤집었다.
안 의원은 “의원들이 ‘당의 중심이 의원’이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당의 중심은 당원”이라며 “당 지도부가 의원들끼리만 이야기해 풀려고 해서는 위기 상황을 탈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 체포동의안 표결 땐 당론으로 ‘부결’을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주민 의원은 BBS라디오에서 “이번 표결 결과에 당황하는 분들이 많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해 논의하는 분위기”라며 “(부결을) 당론으로 정할 필요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 비명계 “꼼수에 꼼수로 당 ‘폭망’”
비명계 중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익명을 전제로 “결국 지지자들을 동원해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쳐내려는 것”이라며 “친명계가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고 당의 다양한 의견을 듣지 않다가 결국 이번 투표 결과도 예상과 크게 다르게 나온 건데, 그렇게 꼼수에 꼼수에 꼼수만 더하면 당이 ‘폭망’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당직자는 “중앙위 구성 자체가 당 대표 본인을 비롯해 원내대표단과 지도부 등 친명 일색인데, 여기서 대표의 거취를 논한다는 생각 자체가 코미디”라며 “이 대표가 기소될 경우 ‘당헌 80조’ 논란이 다시 불거질 것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중앙위와 전당원투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또 한 번 ‘셀프 구제’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한 비명계 의원은 통화에서 “그 동안 당이 전 당원 투표를 해서 제대로 된 결정이 나온 적이 있나”라고 했다. 그는 “왜 대표의 거취를 전 당원이 결정하느냐”라며 “본인이 결정하면 될 일”이라고 꼬집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